Sunday, September 8, 2013

고린도전서 성경공부

                                                         고린도전서 성경공부


고린도전서 1:1-31       교회내의 분당
1. 개요
    1:1-9        인사와 감사의 말
    1:10-17    사람 높힘을 금함
    1:18-25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정의함
    1:26-31    모든 영광(=자랑)을 주님께 돌림


2. 전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지적하기에 앞서, 그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1-3절).
또, 그들 가운데 있는 좋은 것들--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함, 은사에 부족함이 없음,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을 칭찬하고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4-9절).
그런 다음, 바울은 그들 가운데 있는 문제에 대해서 지적합니다. 곧, 고린도 교회내에 분당이 있고, 그로 인한 분열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들의 취향과 선택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바울에게, 또 어떤 사람들은 아볼로에게, 게바에게, 또는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고 말하나 이러한 갈림이 헛되다고 합니다(10-17절).

교회 내에 있는 세상적인 지혜와 이해는 갈림을 가져오고 결국 멸망을 초래하며 이로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헤인데, 이를 가질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깨달을 수 있고 섬길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전할 수 있습니다. 이때 교회 내에는 분쟁이 없을 것입니다(18-25절).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것들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 가운데 분당을 짓게 하기 위함이 아니시고, 세상의 지혜있고 강하고 귀하고 있는 것들을 부끄럽게 하고 폐하려고 하심입니다. 즉, 하나님의 택하심의 원리는 교회내에서 우리로 세상 것들을 자랑하고 나뉘게 하기 위함이 아니시고 모든 자랑(=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기 위함입니다(26-31절).


3. 본문 연구
1절:  바울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는지 말해보세요.

11-12절:  고린도 교회 내의 분쟁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함은 무엇입니까?

14절: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라”고 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함은 무슨 뜻입니까?

21절: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했는데, ‘전도의 미련한 것’이란 의미는 무엇입니까?

25절: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말씀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26절:  하나님께서는 왜 “지혜 있는 자와 능한 자와 문벌 좋은 자들”은 많이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31절: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함은 무엇을 어떻게 자랑하라는 말씀입니까?

                                                   

고린도전서 2:1-16       하나님의 비밀의 계시
1. 개요
    2:1-5        바울의 복음증거 내용과 방법
    2:6-9        바울의 복음증거 메시지
    2:10-16    하나님의 지혜의 이해


2. 전개
교회 내에 분당(分黨)이 있음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지혜 있음을 자랑하는 것으로는 복음의 비밀(=하나님의 지혜)을 꺠달아 알 수 없고, 오직 쓸 데 없는 자랑을 일삼거나 믿음은 없이 당짓는 일이나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에 2장에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을 설명하고 이를 앎은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증거함에 있어서 인간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 것으로도 아니하고 지혜의 권하는 말로도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가 증거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1-5절).

그러나 바울이 증거한 간단한 복음의 내용을 세상의 지혜로서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는 복음이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요,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고 이를 아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6-9절).

사람의 속사정을 사람의 영으로만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속사정 곧 그 비밀은 하나님의 영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신령한 자--만이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을 그 속에 있는 성령의 지혜와 도움으로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성령의 일을 받는 것을 미련스럽게 여기는 육에 속한 자나 성령의 일을 세상에 근심으로 밝히 깨달아 알지 못하는 육신에 속한 자와 다릅니다(10-16절).


3. 본문 연구
1절: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의 뜻은 무엇입니까?(참고: 행전 17장)

2절:  “예수 그리스도와 ...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의 의미는?

3절: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는 무슨 의미입니까?

7절:  “비밀” ... 하나님의 감추어진 진리인데 오직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만 알려집니다.
      “하나님의 지혜”란 무슨 뜻입니까?

12절:  “세상의 영”이란 무슨 뜻으로 사용되었습니까?

14-16절:  “육에 속한 자”(푸스키코스: ψυχικός), “육신에 속한 자”(사르키코스: σαρκικός)와 “신령한 자”(프뉴마티코스:    πνευματικός)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16절: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고린도전서 3:1-23       하나님의 종들의 일체

1. 개요
    3:1-9        한 밭
    3:10-15    한 건물
    3:16-17    한 성전
    3:18-23    한 그리스도


2. 전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1장에서 처음 언급한 교회 내의 분당의 문제를 다시 제기합니다. 그는 여러 가지의 비유를 듦으로서 고린도 교회 내의 믿는 사람들이 왜 함께 일하여야 하는가 설명합니다.

믿는 사람들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음은 그들이 아직 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고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란 반증(反證)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들일 때 그들은 믿는 사람들이 단결하여 일하여야 함을 압니다. 바울이나 아볼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그들은 단지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로되  밭에 있는 식물을 자라나게 하는 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밭의 식물을 자라나게 하십니다(1-9절).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란 터 위에 집을 짓는 건축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건물을 세우고 어떤 사람들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건물을 세웁니다. 마지막 때에, 각 사람이 세운 공력이 어떠한가, 시험 받을 것인데(=공력심판), 이때 각 사람의 공력에 따라 상을 받든지 해를 받든지 할 것입니다. 공력이 불탄 사람은 구원을 얻기는 하되 부끄러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10-15절).

믿는 사람들은 외적 표현인 공력을 잘 세워야 할 뿐아니라, 내적인 모습도 성결하게 보존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 몸은 하나님(의 영)이 계신 성전(헬라어: 나오스[ναός]...성소)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보존해야 합니다(16-17절).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에 속하였다고 할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까닭입니다(18-23절).


3. 본문 연구
1절:  “육신에 속한 자, ...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 말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6절: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란 무슨 의미입니까?

9절: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라”에서 밭과 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0절: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란 무엇을 하였다는 뜻입니까?

12절: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이나”에서 이들은 무엇입니까?

15절: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란?
       “불 가운데서 얻는 것 같다”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23절: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 함은?


                                                   
고린도전서 4:1-21       바울 자신의 사역에 대한 변론
1. 개요
    4:1-5        그리스도의 일군인 우리와 판단자이신 하나님
    4:6-13      바울과 고린도 교인 비교: 그리스도 안에서 어리석은 자와 지혜있는 자
    4:14-21    겸손에 대한 권면
        4:14-17    바울의 부모로서의 사랑과 본
        4:18-21    결론


2. 전개
앞에서, 분당과 분파가 인간들의 ‘지혜있다’고 하는 교만한 마음에서 나왔음을 지적한 바울은 4장에서 교만과 분당, 남을 판단하는 것을 버리고 사랑과 화합의 마음을 가질 것을 권면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충성을 다하여야 할 것인데, 이때 그는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혹 판단받는다 하더라도 그 판단을 중한 것으로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판단이나 나 자신의 판단은 때로 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판단만이 참되며 온전하며 최종적인 것입니다(1-5절).

이어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잘못된 자세를 풍자적으로 지적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배부르고 부요하며 왕노릇하는 자요, 지혜롭고 강하고 존귀한 자인데, 바울과 아볼로는 미련하고 약하고 비천한 자인 까닭에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고 정처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바울과 아볼로)은 미련하여서 친히 일하는 수고를 하며, 후욕을 주는 상대방을 오히려 축복하며, 핍박을 당해도 참고, 비방하는 사람을 권면하는 삶을 삽니다(6-13절).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과 겸손의 삶이란 사실입니다. 하기에 바울은 그들에게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삶을 살고 있나 아닌가는 우리의 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복음 증거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능력)에 달려 있습니다(14-21절).


3. 본문 연구
1절:  “일군”(헬라어: 후페-레테-스[ὑπηρέτης])의 의미를 설명하세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헬라어: 오이코노모스[οίκονόμος])란 어떤 사람입니까?

2절: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헬라어: 피스토스[πιστός]”에서 ‘충성’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 피스토스 (πιστός)는 ‘신뢰할 만함’ 혹은 ‘신실함’의 뜻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왜 충성(혹은 신뢰할 만함)이 필요합니까?

7절: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함은 무슨 뜻입니까?

9절:  “하나님의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란 의미는?

15절: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니라”고 함은 무엇입니까?

16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함은 바울의 무엇을 본받는 자 되라는 것입니까?

17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20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능력’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5:1-13  교회내의 세 가지 도덕적 혼란(1): 음행(근친상간)
1. 개요
    5:1-2         악: 교회 안의 음행과 이를 방관함
    5:3-8         악의 제거: 내어 버리라
    5:9-11       악을 피함: 사귀지 말라
    5:12-13     악에 대한 처방(반복): 내어 쫓으라


2. 전개
4장까지에서 교회 내의 분당의 문제를 다룬 바울은 5장과 6장에서 교회 내에서 시끄러운 세 가지 도덕적 혼란을 다룹니다. 곧, 근친상간(近親相姦)의 음행(5:1-13), 소송(6:1-11)과 방종(6:12-20)의 문제가 그것들입니다.

근친상간의 죄는 구약시대부터 수 차례에 거쳐서  언급되어왔습니다(창 35:22, 49:4; 레 18:8; 신 22:30; 대상 5:1;   삼하 16:22). 성적(性的)으로 문란했던 도시 고린도에 이러한 불륜(不倫)이 있었던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교회 안에 이와같은 부도덕한 일이 행해지고 있음이 문제입니다(5:1).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죄 범함을 방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5:2). 바울은 ‘근친상간’과 ‘이를 통한(痛恨)히 여기지 않음’이 죄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음행은 누룩과도 같이 온 덩이에 퍼지므로, 이와같은 묵거나 괴악한 누룩은, 빵 덩어리를 순전하고 진실되게 보전하기 위하여, 제하여 버림이 좋다고 권면합니다. 즉, 누룩과도 같은 음행하는 자를 사단의 권세하에 놓여있는 세상으로 내어쫓음이 마땅한데, 이로서 그의 육신은 고통 가운데 처하게 되나, 영은 그가 혹 회개하여 마지막 때에 구원을 얻게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5:5).

근본적으로 음행하는 자와는 사귀지도 말아야 할 것인데, 이는 그들과 사귐으로 죄의 누룩이 번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과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과 사귀지 않음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자들과는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5:9-11).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실 문제이나, 교회 안에서 잘못되어지는 일은 우리가 판단하여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5:12-13).


3. 본문 연구
1-2절:  본절에서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죄는 무엇입니까?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의 구체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3절: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느니라”의 뜻은?

5절: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의 뜻은?(참조: 딤전 1:20)

7절: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었느니라”는 본문에서 무슨 역할을 합니까?

8절: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에서 이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11절: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하는데, 여러분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12절: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참조: 고전 6:1-4) 예수님께서는 “비판(=판단)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치 말라”(마태 7:1)고 하시고, 바울도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롬 14:13; 참조: 고전 4:5) 하였는데, 12절에서는 ‘판단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를 어떻게 해석합니까?

                                                 

고린도전서 6:1-20  교회 내의 세 가지 도덕적 혼란(2): 소송과 방종

1. 개요
    6:1-11       성도간에 소송의 문제
    6:12-20     음란(방종)의 문제


2. 전개
5장에서 첫 번째 도덕적 문제인 근친상간을 언급한 바울은 6장에서 성도간의 소송과 방종에서 기인하는 음란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천사들과 세상을 판단할 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그들 중에 있는 사소한 문제를 해결받으려고 그들이 복음, 곧 하나님의 법을 가르쳐주어야 할 세상의 판관들에 의하여 재판을 받기 위하여 송사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란 것입니다. 이는 마치 어른들의 문제를 가지고 어린아이들에게 그 판단을 의뢰하는 것과 같습니다(1-4절).
만일 성도간에 판단을 받을만한 일이 있거든 교회 안에서 이를 판단할만한 지혜있는 자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성도간에 서로 송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교회 밖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세상의 지혜로 그들의 문제를 판단해줄 것을 의뢰함은 더욱 없어야 합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손해를 당함이 나을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송사하는 사람이 그들의 형제이기 때문입니다(5-8절).
그들(=고린도 교인들)은 원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할 불의한 자들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죄씻음을 받았고,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이미 거룩하여지고 의롭다 함을 얻은 그들이 아직 죄 가운데 있는 불의한 판관들에게 판단을 받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9-11절).

고린도 교인들 중에 얼마가 음란의 죄를 범하는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방종과 혼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자이므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12절)라고 상투어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의 자유에는 한계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로는, 유익하거나 도움이 되는 행동이어야 할 것이며, 둘째로는 아무에게도 제재를 받지 않는 행동이어야 합니다(12절).

고린도인들은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한다’는 논리로서, ‘몸은 음란을 위하고 음란은 몸을 위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몸은 생활의 한 방편으로서 식물을 소화시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배와는 달리, 우리 의 인격과 품성과 자아를 포함하는 우리의 전부입니다. 몸은 단순한 물질적인 부분일 뿐아니라, 우리의 인격이요 자아로서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13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몸을 허락하시고 우리가 이 몸을 중히 여겨야 할 이유를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주를 위하여 주셨고(13절 후반), 둘째로 우리 몸은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다시 살리실 몸이고(14절), 셋째로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며(15-18절), 넷째로 우리 몸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령의 전입니다(19절).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소중히 다루어야 할 뿐아니라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할 것입니다.


3. 본문 연구
4절: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이라고 함은 어떤 의미에서 입니까?

12절: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의 뜻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16-17절: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둘이 한 육체가 된다’ ...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한 말씀의 의미를 풀어서 해섯해 보십시오.

18절: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범죄하느니라”의 뜻은?
                                                   


고린도전서 7:1-40   결혼에 관하여

1. 개요
    7:1-7        성도의 결혼생활 (독신이 좋으나, 결혼도 괜찮음)
    7:8-11      갈리지 말아야 함
    7:12-16    불평등한 멍애를 진 자들
    7:17-24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함
    7:25-31    임박한 환난에 대처
    7:32-35    주님께 헌신과 봉사함
    7:36-38    처녀 딸을 둔 부모가 알아야 할 것 (결혼하는 것도 잘하는 일이나, 독신이 더 잘하는 것임)
    7:39-40    과부의 재혼 (그냥 지내는 것이 복됨)


2. 전개
6장에서 몸므로 짓는 죄, 음란(淫亂)과 음행(淫行)의 문제를 다룬 바울은 7장에서 이러한 죄를 피하는 방법인 결혼(結婚)에 관해 언급합니다. 즉, 성도들의 삶으로는 독신이 좋지만, 음란의 생각으로 인하여 범죄할 것같은 사람들은 결혼하는 것도 무방합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각자의 의무를 잘 지켜야 할 터인데, 이는 사단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함입니다(1-7절).

아직 혼인(婚姻)하지 않은 자들과 혼자된 과부(寡婦)들은 현재처럼 혼자 지내는 것이 좋으나, 정욕이 일어 절제할 수 없을 때에는 음행의 죄를 범치 않기 위하여 결혼하는 것도 무방합니다. 혼인한 사람들은 서로 갈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8-11절).

믿지 않는 자들과 결혼한 사람들은 그 아내가 또는 그 남편이 함께 살기를 원하거든 같이 살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 믿지 않는 아내 혹은 남편으로 주를 믿게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함이지 믿지 않는 아내 혹은 남편을 따라 세상적인 생활을 해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믿지 않는 아내나 남편이 갈리기를 원할 때는 갈라져도 무방합니다. 이는 그들이 지고있는 멍애와 우리의 멍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12-16절).

결혼을 하는 것도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함입니다(17-24절). 그러나, 바울이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함은 임박한 환난을 인함입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환난 날에 남편과 아내와 자식들에 매여서 그 고난이 크고 주의 뜻에 따라 환난을 잘 견디기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25-31절). 결혼을 한 사람이라도 주님을 먼저 생각하고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32-35절).

처녀 딸을 둔 부모는, 이같은 상황에서, 그를 시집보내는 것도 잘하는 일이나, 보내지 아니하는 것이 더 잘하는 것입니다(36-38절). 과부의 경우도 시집갈 수 있으나, 그냥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39-40절). 이는 환난의 때가 가까운 까닭입니다.


3. 본문 연구
1절: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14절: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의 의미는?

26절: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에서 이 환난은 무엇을 뜻합니까?

현대를 사는 여러분은 결혼과 독신중 어떤 편을 택하는 것이 주님의 뜻에 가깝다고 생각합니까?
또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결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고린도전서 8:1-13   우상의 제물
1. 개요
    8:1-3      지식과 사랑
    8:4-13    우상의 제물


2. 전개
로마서 14:20-23에서와 같이, 바울은 본장에서 우상에게 제물로 드려졌던 식물(=food)을 먹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되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말하기 전에, 바울은 지식과 사랑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지식이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반면에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함은 우상의 제물에 관해서도 우리의 아는 지식으로 할 것이 아니라 형제를 사랑함으로 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1-3절).

바울 당시 고린도 지방은 희랍의 많은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일이 성행하였습니다. 신들에게 바쳐진 제물은 시장에 내다가 팔렸는데, 이 고기와 우상에 바쳐지지 않은 고기가 섞여서 팔렸기 때문에 시장에서 고기를 사먹는 사람들은 그들이 사먹는 고기가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인가 아닌가로 고민하였습니다. 이는 고린도 지방의 사람들에게,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일이란 왠지 우상과 관계를 갖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꺼리는 마음이지만 사먹고, 또 어떤 사람들은 꺼림직하기에 사먹지 않았습니다.
이에 바울은 세상에 신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으며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설명합니다(4절). 그러므로,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곧, 음식으로 인하여 우리가 죄짓는 것이 아닙니다(8절).

어떤 사람은 세상에 우상은 없는 고로 꺼림직한 마음없이 시장에서 파는 식물--우상에게 바쳐진 것이든 아니든--을 사먹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사람에게 이는 하나의 시험꺼리가 됩니다. 한편으로는, 믿음과 지식이 있는 이 사람의 행동이 그로 하여금 시장에서 파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사먹게 합니다(10절). 그러나, 연약한 믿음의 사람은 우상에 대한 생각으로 인하여 꺼리고 상한 양심으로 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까닭에 망하게 됩니다(11절). 이러할 때, 지식의 사람은, 자신은 꺼림이 없어 먹는 음식으로 죄를 범함이 없었지만, 그를 따라 상(傷)한 양심으로 우상의 제물을 먹은 형제를 실족케 한 까닭에 결국은 그리스도께 죄를 범한 것입니다(12절).

우상은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닌 고로, 거리낌 없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죄 짓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을 본받은 믿음이 약한 사람이 거리낌으로 우상의 제물을 먹을 때, 그는 그리스도께 죄를 범하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도 형제를 실족시키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의 지식으로 죄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사랑은 형제를 실족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 자신은 거리낌이 없지만)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을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13절). 곧, 지식은 우리로 교만하게 하여 형제를 실족시키는 죄를 짓게 하지만, 사랑은 형제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 덕을 세웁니다(1절).


3. 본문 연구
1절: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란 무슨 뜻입니까?

2절:  “만일 누구든지...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라고 말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7절: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에서 이 지식이란?
       이 지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9절:  “그러나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지 않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는데, 우리의 자유함이 우리 주위의 약한 자들에게 거침이 된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9:1-27   바울의 사도권과 자유의 사용

1. 개요
    9:1-14      사도의 권리
    9:15-18    복음전파의 자세
    9:19-23    바울의 전도방법
    9:24-27    그리스도인의 경주와 싸움


2. 전개
바울은 8장 1절-11장 1절에서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의 문제를 가지고 크리스찬의 자유의 한계를 설명합니다.
크리스찬의 자유와 방종은 5장에서부터 언급되어있는 것인데, 5장에서는 음란(근친상간)의 문제로, 6장에서는 소송과 음행의 문제로, 7장에서는 결혼의 문제로, 8장에서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의 문제로 제기됩니다.

9장에서는 바울의 사도권과 복음전파의 자세의 예로 이를 설명합니다. 자유와 방종의 구분은 크리스찬이 행하는 어떤 행동이 유익한가 혹은 아무에게나 제재를 받지 아니하는가(6:12)로 알 수 있습니다. 또는 그가 하는 것이 교만하게 하는 지식으로 행하는 것인가, 덕을 세우는 사랑으로 행하는 것인가로(8:1)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자는 형제나 자매를 실족시키지 않습니다(8:13). 바울은 10장에서 크리스찬의 자유의 한계를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즉, 유익한 것이어야 하고, 덕을 세우는 것이어야 합니다(10:23).

9장 서두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리와 그 자유를 설명합니다. 사도로서 그는 다른 사도들과 같이 먹고 마시는 권이 있으며, 결혼하여 아내를 데리고 다닐 자유가 있으며,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물질적인 것을 거둘 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가 이 권리와 자유를 사용하지 않음은 복음을 증거함에 장애를 받지 않고 오히려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1-14절).

복음 증거자로서 바울은 장막을 깁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고 그의 복음 증거의 일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의 일이 부득불 할 일(=의무)이기 때문이며, 이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바울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자나 종이 된 것처럼 봉사하고 충성하였습니다(15-18절).

바울의 전도방법은 유연합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으로서,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와 같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한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한 자와 같이,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대합니다. 이로써 더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오게 합니다. 즉, 그는 전도자의 자유를 덕을 세우는 일에 사용합니다(19-23절).

그러나, 자신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율법을 지킴에는 철저합니다. 경주자로서 목표를 향하여 상을 바라보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달려가며, 이기기를 원하는 권투선수와 같이 사단을 대적하여 싸우되 허공을 치지 않고 상대방의 정곡을 치려고 합니다. 이는 그 자신의 결국의 목표도 이를 이루고자 함이기 때문입니다(24-27절).


3. 본문 연구
2절: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란 무슨 뜻입니까?

7절:  “누가 자비량(自備糧)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9절: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뜻은 무엇이며, 왜 이 구약성경의 말씀을 인용했습니까?

11절: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의 의미는?

24-27절에서 경주자와 권투선수의 비유를 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0:1-11:1   방종·우상숭배에 대한 경고와 그리스도인의 자유

1. 개요
    10:1-13       방종에 대한 경고
        10:1-4        구약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
        10:5-10      구약 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징벌
        10:11-13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권면
    10:14-22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
    10:23-11:1  그리스도인의 자유


2. 전개
바울은 10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한계를 반복·요약하여 강조합니다. 즉, 유익한 것이어야 하고, 덕을 세우는 것이어야 하고(23절),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31절).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남용으로 인한 우상숭배와 방종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구약 이스라엘의 예를 듭니다. 그리스도인 이전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들이 세례(상징적 의미)를 받고 신령한 식물과 음식을 마셨었습니다(1-4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유를 남용하여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는 자가 되고, 이방 사람들과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시고 멸망시키셨습니다(5-10절).
이 예로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이 구약의 사건을 거울 삼아서 항상 조심하라. 너희가 선 줄로 생각하느냐?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께 의지하고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감당할 시험만을 허락하시고, 시험당할 때에도 피할 길을 주신다”(11-13절).

14절 이하에서 바울은 ‘우상숭배를 피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우상숭배’라고 함은 고린도 교인들이 헬라신전을 드나들면서 그 신들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던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렇게 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축복의 잔과 떡에 참예하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기 때문입니다(16절). 이스라엘이 제물을 먹은 것도 하나님의 예배에 참예하는 일이었습니다(18절). 그러나, 고린도 교인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거리낌으로 인하여) 오히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범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거스려 죄짓는 행위입니다(14-22절).

바울은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은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요, 덕을 세우는 것이어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맏아 그러한 삶을 살고있는 것과 같이 고린도 교인들도 그를 본받는 자 되라’고 권면합니다(10:23-11:1).


3. 본문 연구
2절: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란 무슨 뜻입니까?

5절: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다수를 기뻐하지 아니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6절:  바울이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예하는’ 예를 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18절:  이스라엘이 제물을 먹은 것과 고린도 교인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29절: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를 풀어서 해석해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11:2-34    공중예배(1): 머리에 쓰는 것과 성찬

1. 개요
    11:2-16      공중예배시 머리에 쓰는 것
    11:17-34    성찬에 관한 권면


2. 전개
바울은 1-4장에서 교회 내에서의 분열의 문제를, 5-10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문제(5-7장 음란의 문제; 8-10장 우상숭배의 문제)를 다룬 다음, 11-14장에서 공중예배시의 문제를 언급합니다.
11장에서 머리에 쓰는 것과 성찬에 관하여, 12장에서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13장에서 으뜸 은사인 사랑에 관하여, 14장에서 고린도 교회 내에 논란이 많은 방언과 예언의 은사의 사용에 관하여 다룹니다.

바울은 기능상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남자, 남자와 여자를 하나의 질서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남자는 최초에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만들어졌기에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은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며, 곧 머리이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여자는 남자의 질서 하에 있기에,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행동이 되므로 욕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머리에 쓰는 것은 권세 아래에 있다는 표시로서 마땅히 여자가 해야 할 것입니다. 남자는 짧은 머리(=머리를 드러냄), 여자는 긴 머리(=머리를 가림)가 자연스럽듯이, 공중예배시 여자는 머리에 무엇을 씀이, 남자는 아무 것도 쓰지 않음이 자연스럽다(=하나님의 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바울 당시에, 유대인들은 남자와 여자가 모두 예배시에 무엇을 썼고, 헬라인들의 경우 남자는 아무 것도 쓰지 않고 여자는 무엇을 썼는데, 바울의 본문에서의 논지는 헬라인들의 풍습을 따르는 것입니다.

본장의 두 번째 문제는 성찬에 참예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떡과 잔을 나누기 전에 식사가 행해졌는데 교회에 일찍 오는 사람도 있었고 또 늦게 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교회에 일찍 오는 사람들은 주로 상전(上典)이었고 늦게 오는 사람들은 하인(下人)이었는데, 일찍 온 사람들이 늦게 온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고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심으로 늦게 오는 사람들은 먹고 마실 것이 없었습니다. 이러므로, 이후에 행해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성찬예식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을 권면할 때, ‘서로 기다리라’(33절)고 하며, 정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고 오라’(34절)고 합니다. 이리 할 때, 성찬의 의미가 깨달아지며, 진정한 성찬에 참예하게 됩니다.


3. 본문 연구
3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바울이 말씀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7절: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에서 바울은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말아야 할 것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15절: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에서 긴 머리가 있는 여자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19절: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함은?

22절: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라고 함은 고린도 교인들이 어떻게 하였다는 것입니까?

30절: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의 뜻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2:1-31    공중예배(2): 성령의 은사

1. 개요
    12:1-11      은사의 다양함
    12:12-27    다양한 지체 가운데 일체성
    12:28-31    현재의 은사와 더 큰 은사


2. 전개
11장에서 공중예배시 주의할 사항인 머리에 쓰는 것과 성찬에 관하여 다룬 바울은 본장에서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언급합니다. 이를 말함은 그 당시 고린도 교회 내에서 저마다 자기의 받은 은사를 자랑함으로 갈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울은 4-7절에서 그와 같이 다양한 은사와 그 직임과 역사 가운데 이를 주장하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성령의 은사의 나타남은 주님 안에서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역설합니다(1-11절).

마찬가지로, 우리 몸도 여러 지체로 구성되어 있으나 한 몸을 이루고, 교회도 머리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 지체로 구성되어 있으나 각각 다른 몸이 아니라 교회란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 몸을 이루는 지체의 각 부분은 서로 다른 지체보다 낫다고 자랑할 수 없음은 어느 지체 하나 요긴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는 새끼 발가락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 발가락에 가시라도 박힐라치면 온 몸이 아픈듯하여 제대로 생각할 수도 없고, 일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몸의 각 지체는 다른 지체보다 낫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고, 다른 지체를 무시할 것이 아니라, 서로 위해 주고 서로의 아픔과 기쁨에 동참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몸이신 교회에 소속된 우리 각자도 우리가 다른 교인(=지체)보다 낫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맡은 일을 잘 감당하며, 다른 교인의 고통과 즐거움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12-27절).

교회 중에 어떤 이는 사도로, 어떤 이는 선지자로, 교사로, 또다른 여러 은사를 받았는데 이는 자랑하게 함이 아니라 이들 은사를 잘 활용함으로써 교회에 덕을 세우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일을 더욱 더 잘 감당하기 위하여 더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할 터인데, 이 더 큰 은사는 사랑입니다(28-31절, 13장).


3. 본문 연구
4-6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함은 무엇입니까?

8-10절에 나오는 아홉 가지 은사에 대하여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은사를 받았습니까?

11절: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12-31절은 1-11절과 어떤 관계입니까? 즉, 바울은 왜 성령의 은사를 언급한 다음에 몸의 지체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까?

13절:  “...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의 뜻은?

28절에 바울이 열거한 것은 8-10절의 은사와 다른 은사입니까? 혹은 부연된 설명입니까?

29-31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31절에서 ‘더 큰 은사’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고린도전서 13:1-13   공중예배(3): 사랑

1. 개요
    13:1-3      (사랑의 부재를 통한) 사랑의 가치
    13:4-7      사랑의 성격(혹은 속성)
    13:8-13    믿음, 소망과 사랑의 비교


2. 전개
12장에서 바울은 당시 고린도 교인들이 자랑하고 행하던 여러 가지 은사를 소개하고, 그 모든 은사가 한 성령, 한 주, 한 하나님이신 삼위일체의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강조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은사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바울은 이를 몸의 지체와 관련하여 설명합니다. 은사가 여러 가지인 것과 같이 몸의 지체도 여러 가지인데 한 지체가 다른 지체보다 귀하다고 자랑할 수 없고 한 지체가 아프면 다른 지체도 고통받는 것과 마찬 가지로, 어떤 은사가 다른 은사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으며, 서로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은사는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12장 마지막 절(31)에서 바울은 “더욱 큰 은사들(τὰ χαρίσματα τὰ μείζονα)”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의 마음에 두고있는 더욱 큰 은사들 중에 은사는 바로 사랑입니다.

13장에서 바울은 사랑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세상에 많은 은사들이 있지만 그것들이 사랑과 무관하게 행해지면 그것들은 다만 무익할 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방언은 ‘소리나는 구리요 울리는 꽹과리’일 뿐이요, 사랑이 없는 예언과 믿음도 아무 것도 아니요, 사랑이 없는 구제와 희생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1-3절).

이어서 바울은 사랑의 특성들(characteristics)을 열거합니다. 오래참음, 온유함, 투기하지 않음, 자랑하지 않음, 교만하지 않음, 무례히 행치 않음,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음, 성내지 않음,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음, 불의를 기뻐하지 않음, 진리를 기뻐함,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기다림이 바로 사랑을 갖고있는 그리스도인에게서 볼 수 있는 속성입니다(4-7절).

예언이나 방언이나 기타 다른 은사들은 부분적인 것으로서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때 폐하여질 것들이지만, 사랑은 완전한 것으로서 언제까지나 남아있을 것입니다(8-10절).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지만, 사랑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에서도 영원히 지니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11-13절).


3. 본문 연구
1절: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가리”가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3절:  ‘구제’와 ‘불사르게 내어줌’이 유익이 없다고 함은 어떤 의미에서 그렇습니까?

4-7절에 열거되어있는 사랑의 성격들을 하나 하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8절: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 함은 왜 그렇습니까?

10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은 어떤 때입니까?

11절:  “내가 어렸을 때에는...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12절: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내가 온전히 알리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고린도전서 14:1-40   공중예배(4): 방언과 예언

1. 개요
    14:1-25      방언과 예언의 비교
    14:26-36    공중예배에서의 질서와 절차
    14:37-40    요약


2. 전개
14장에서 바울은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대표적으로 행해지고 자랑되던 두 가지 은사를 예로 들어 비교합니다.
예언의 은사라고 함은 하나님의 뜻이나 계획을 일반으로 하여금 알게 하는 것이고, 방언의 은사라고 함은 각 나라의 말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말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은사입니다.

1-25절에서에서 바울은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비교함으로, 예언의 은사가 방언의 은사보다 우월함을 설명합니다. 즉, 방언을 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나 예언을 하는 자는 교회에 덕을 세웁니다(4절).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22절).  모든 사람이 다 방언을 말하매 무식한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이 미쳤다고 하나, 예언을 말할 때 무식한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책망을 듣고 판단을 받고 그 마음에 숨은 일이 드러나므로 하나님께 엎드리고 경배하게 됩니다.

26-36절에서 바울은 공중예배시 그 질서(=순서)와 절차에 관하여 지시사항을 말합니다. 즉, 공중예배시에 찬송시와 말씀과 계시와 방언과 방언통역함이 있을 것인데, 이를 행함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26절).
방언은 순서를 따라 하고 세 사람 이상은 하지 말고 반드시 통역이 있어야 하며, 통역이 없을 경우에는 잠잠하라고 합니다(27-28절).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 하고 그 진위를 다른 사람에 의하여 판단받아야 합니다(29절).
예언하는 자는 자제하여야 하는데 타인의 계시에 의해서도 절제를 받습니다(30-32절). 공중예배에 이와같은 질서가 있음은 하나님은 어지러움(=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와 화평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여자들에게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권면합니다(34-35절). 이는 여자들 때문에 교회가 시끄럽고 어지럽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7-40절에서 바울은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39절). 바울은 교회의 덕이 되는 예언하기를 적극적으로 권하고, 개인의 덕이 되는 방언함을 소극적으로 권합니다.


3. 본문 연구
1절:  “사랑을 따라 구하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4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는 어째서 그렇습니까?

8절:  “만일 나팔이 ...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는 무슨 뜻입니까?

17절: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의 의미는?

20절: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는 무슨 뜻입니까?

21절: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32절: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의 뜻은?

33절: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의 뜻을 풀어서 설명하세요.
                                                   


고린도전서 15:1-58   부활의 믿음
1. 개요
    15:1-34    부활의 확실성
        1-11      그리스도의 부활
        12-19    죽은 자의 부활
        20-28    성도 부활의 보증이신 그리스도
        29-34    부활신앙의 의미
    15:35-58    부활의 몸
        35-49    부활한 육체의 본질
        50-58    부활의 승리


2. 전개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멸하지 않고 음부(스올)로 내려간다고 생각하였으나 몸이 다시 부활한다고는 여기지 않았습니다(사두개인은 영혼의 부활도 믿지 않고, 바리새인들이나 에센인들은 영혼의 부활은 믿음). 헬라인들은 영혼불멸은 인정하였으나 몸의 부활은 믿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교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교회는 다니지만 부활의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본장에서 그가 전하는 믿음의 진수(眞髓)가 부활에 관한 것임을 피력합니다.

1-11절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을 열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다음 열한 제자와 500여 성도들, 야고보와 바울에게 나타나셨음을 이야기함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신빙성이 없는 헛소문이 아니라 사실임을 역설합니다.

12-19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부활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부활이 없는 믿음은 헛 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의 돌아가심도 헛 것이고, 우리의 믿음도 헛 것이며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 자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이로써 믿는 자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하심입 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같이 우리 믿는 사람들도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부활될 것이므로 우리는 이 생을 사는 동안 당하는 고난을 잘 감당하여야 합니다(20-34절).

35-49절에서 믿는 자의 몸의 부활이 어떠한가에 대하여 바울은 썩지 아니할 것으로, 영광스러운 것으로, 강한 것으로, 그리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고 설명합니다.

50-58절에서 바울은 마지막 때에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그때 살아있던 자들도 홀연히 변화할 것임을 증거합니다. 이에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그때까지 모든 성도들은 견고한 믿음을 지키고 주님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3. 본문 연구
18절: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20절:  “그리스도께서 ...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함은 무엇입니까?

29절: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45절: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50절:  왜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까?
                                                   


고린도전서 16:1-24   그리스도인의 친교

1. 개요
    16:1-4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모금
    16:5-9    바울의 여행 계획
    16:10-24    종결: 권면과 인사


2. 전개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 교회 안의 분열에 대하여(1-4장),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그 한계에 대하여(5-6장: 음행, 송사와 음란의 예; 7장: 결혼의 예; 8-10장: 우상의 제물의 예), 공중예배에 대하여(11-14장),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부활에 대하여(15장) 다루어 왔습니다.

16장에서 바울은 편지를 마치기에 앞서서 그가 오랫동안 기도해오고 생각해온 그의 형제요 동포인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한 모금을 언급합니다. 이는 갈라디아서 2:10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바울이 오랫동안 생각해오고 힘써온 것입니다(16:1-4, 참고: 갈 2:9-10; 고후 8-9장; 롬 15:25-28).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서 바울은 소아시아에 있는 갈라디아 교회에 주일마다 연보중 얼마를 떼어서 구제금을 마련하여 놓으라고 했는데, 고린도 교회에도 이와같이 주일 헌금 중 얼마를 떼어 구제험금을 마련해 놓으라고 당부합니다. 바울은 이 구제금을 명명함에 돈(헬: 아르구리온, ἀργύριον)이라고 하지 않고 은혜(헬: 카리스, χάρις)라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은 주님께로부터 입은 은혜의 반사(reflection)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 반도 남부 아가야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데, 바울은 후에 빌립보, 데살로니가 교회들이 위치한 그리-스 중부 마게도냐 지방을 거쳐 고린도 지방에 들러 과동할 뜻을 비췹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소아시아의 한 지방인 에베소에서 보낸 듯 한데(16:8), 이 편지가 쓰여진 바울의 3차 여행기간(사도행전 18:23-21:26)은 주로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모금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기간 중 바울은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모금을 하였는데 무려 삼년여나 걸렸습니다.

10-24절에서 바울의 자상하고 사랑에 넘치는 마음을 우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그의 동역자에 대하여 언급하며 그들의 소식을 전합니다(참고: 로마서 16장). 로마서를 더디오가 대서한 것 처럼, 고린도전서는 아마도 소스데네가 대서한 것으로 보입니다(고전 1:1). 그러나, 이제 편지를 끝맺음에 바울은 안질의 가시 가운데도 그의 사랑의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친필로 마지막 인사와 축복을 몇 자 적습니다(16:21, 참고: 갈 6:11).


3. 본문 연구
3절: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는 무슨 뜻입니까?

6절:  ‘바울의 갈 곳’은 구체적으로 어디입니까?

9절: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의 의미는무엇입니까?

15절:  “스데바나의 집은 아가야의 첫 열매요”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17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부족한 것이란 무엇입니까?

21절: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의 뜻은?

29절: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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