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성경공부
고린도후서 1:1-2:11 사도 바울과 고린도 교회
1. 개요
1:1-2 서두 인사말
1:3-11 환난 가운데 바울의 감사
1:12-2:4 바울의 고린도 여행 계획과 그 변경
2:5-11 반대자들에 대한 용서
2. 전개
1장 1-2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바울의 사도됨은 개인의 욕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고린도 교인들뿐아니라 아가야 지방에 있는 다른 교회들의 성도들에게도 읽혀지는 회람형식의 편지입니다(1절).
1장 3-11절의 시작인 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환난 가운데 위로하시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참고 4-7절). 고난 가운데도 감사함은 고난 중에 소망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 당하셨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바울은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극한 고난 속에서도 위로를 얻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바울은 그의 고린도 사역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장애요인이 없어야 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의 앞에 장애물이 있음을 봅니다. 바울은 솔직하고 진지한 태도로 그 장애물을 직면합니다. 주 장애요인은 그의 고린도 여행계획의 취소와 변경으로 인한 고린도 교인 중의 바울에 대한 불신입니다. 물론 이 불신이 발생한 것은 그의 반대 세력들의 선동이요 농간으로 야기된 것이지만, 그는 진지하게 이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바울의 사도권에 관해서, 그의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리에 대해서 공격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중상할 때, 바울이 자기가 말한 바 약속(=고린도 지방 여행)도 지키지 못하고 변경하는 변덕스러운 사람이므로 그의 교리도 믿을 바 못된다고 공격합니다(1장 15-17절).
1:23-2:4에서 바울은 여행계획을 왜 변경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지방을 방문한 적이 두 번 있습니다(12:14). 처음은 제2 차 전도여행 중이었고(행전 18:1-18), 두 번째는 고린도전서를 보낸 이후 고린도 교회내의 거짓 교사들로 인하여 야기된 문제들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인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상처만 남기고 돌아왔습니다. 이에 세 번째 방문의 기회를 뒤로 미룬 것입니다.
2장 5-11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내에서 문제를 이르킨 사람들을 어떻게 징계하여야 할 것인지 쓰고 있습니다. 교회내에서 문제를 일으킨 자는 벌받는 것이 마땅한데(2:6) 그 벌은 개인적인 감정으로 다루어져서는 안되고 회개와 연단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그 사람이 회개하였을 때에는 용서로 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3. 본문 연구
1장 5절: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의 의미는?
8절: 바울이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란 무엇입니까?(참고: 행전 19:23)
2장 3절: “내가 이같이 쓴 것은 ...”은 무엇을 말합니까?(참고: 2:4,9, 7:12)
6절: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에서 우리는 교회 내에서 잘못을 범한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10절: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참고: 마 5:12, 14; 막 11:25; 눅 17:4)
11절: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함은 무슨 뜻입니까?(참고: 엡 4:26, 27)
고린도후서 2:12-3:18 바울 사역의 성격
1. 개요
2:12-17 바울 사역의 확신: 그리스도의 향기
3:1-3 바울 사역의 천거: 그리스도의 편지
3:4-18 새 언약의 영광
2. 전개
바울이 드로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 디도를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불편한 심령으로 마게도니아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어려운 형편으로 우리는 염려하고 근심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입니다. 이로써 바울은 위로를 얻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각 처에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냄새를 나타내게 하신다고 합니다(2:14). 곧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의 향과 같은 ‘그리스도의 향기’(2:15)인데, 이 냄새를 맡고도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이 냄새에 이끌리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입니다(2:16).
지금도 그러하지만, 초대교회 당시에도 어떤 일을 감당할 때 천거서(=letter of recommendation)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나 고린도 교인 어느 누구도 먹으로 쓴 천거서가 필요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들에게 잉크로 쓴 천거서보다 더 중요한 천거서가 있는데, 그것은 여느 사람이 써 준 천거서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직접 써 주신 편지(=천거서)요, 세상의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잉크로 쓴 것이요, 눈에 보이는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마음판에 쓴 것입니다(3:1-3).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언약의 일군들입니다. 구약의 일군들은 의문(儀文), 곧 없어질 영광의 직분을 감당하던 사람이었음에 비해, 우리는 영원히 있을 영광의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에 반사된 하나님의 간접적인 영광도 바라보지 못하매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덮어 가리워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봄과 같이, 그들은 수건으로 가리워진 구약을 읽으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바로 깨닫지 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약을 덮고있는 수건이 벗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이신 그리스도와 연결시키지 않고는 구약을 바로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밝히 드러나고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습니다(3:6-18).
3. 본문 연구
2장
14절: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란 무엇입니까?
15절: “그리스도의 향기”를 설명하여 보십시오.
16절: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니”란 뜻은?
3장
1절에서 바울이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절을 풀어서 해석하십시오.
6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18절: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는 무엇을 말합니까?
고린도후서 4:1-18 사역의 특성과 상황
1. 개요
4:1-6 그리스도 복음의 빛
4:7-18 사역의 상황
4:7-12 핍박 속에서도 버린 바 되지 않음
4:13-15 다시 사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이 보장됨
4:16-18 날로 새로와짐
2. 전개
2:18-3:18에서 바울은 모든 형편 가운데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 다음,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향기요, 그리스도의 편지요, 새 언약의 일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증거하는 복음은 인간에 관한 것이나, 인간의 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임입니다(1-6절).
바울은 우리 마음 가운데 비추이는 이 복음을 ‘보배’라고 하였습니다. 곧, 질그릇과도 같이 가치없는 우리의 몸에 그리스도 복음의 보배가 담겨져 있습니다(참고: 삿 7:15-23). 이로써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능력이 큰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옴을 알고, 어떠한 핍박 가운데서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함을 알고 오히려 예수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가 감당함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가 갖고자 함입니다(7-12절). (참고: 로마서 6장 세례의 의미)
예수님의 죽으심과 생명을 우리 가운데 나타내고자 함은 우리가 이를 믿는 믿음이 있어 말함이고,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고 소망으로 우리의 부활할 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13-15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본받아 이와 같은 믿음과 소망을 가짐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고, 따라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돌리는 생활을 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에게 닥치는 환난과 몸의 후패함 속에서도 낙심할 것이 없는 것은 지금 당하는 연약함과 환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원한 영광을 이루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참고: 로마서 8:18-30). 우리 믿는 사람들이 바라보아야 할 것은 지금은 보이나 없어질 이 세상의 일이 아니요, 지금은 안보이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일 것입니다(16-18절).
3. 본문 연구
4절: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함을 쉽게 설명하여 보십시오.
6절: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에서 보배와 질그릇은 무엇에 대한 은유(metaphor)입니까?
10절: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뜻입니까?
12절: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16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참고: 엡 4:15)
17절: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어떻게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룰 수”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5:1-21 사역의 중한 책임
1. 개요
5:1-10 부활의 확신
5:1-5 믿는 사람에게 임할 하늘의 영원한 집
5:6-10 그리스도의 심판
5:11-21 그리스도의 사신(ambassador)
5:11-15 사신의 동기(動機)
5:16-21 사신의 증거(證據)
2. 전개
바울은 4:16-18에서 믿는 사람의 육신(=겉사람 혹은 바깥사람)은 후패하여져도 영혼(=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며, 잠시 세상의 경한 환난은 영원한 영광을 이루기 위함이고,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나 없어질 이 세상의 것이 아니요 현재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영원한 하늘나라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 믿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소망과 삶은 잠시 머물다가 가는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인간의 이별의 슬픔은 있을지언정). 이는 그 때에 우리는 하늘의 영원한 집의 처소로 덧입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탄식함으로 구함은 오직 하늘의 처소로 덧입고자 함인데 이 일을 이루시고 성령으로 알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1-5절).
우리가 주님이 계신 저 하늘나라를 간절히 원하며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행함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리할 때, 그리스도의 심판 날에 우리의 행위에 따라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6-10절).
이러한 일을 하는 나, 바울을 혹 미쳤다고 하는 사람이 여러분 가운데 있는데 내가 미친 것은 하나님께 미친 것이고, 여러분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데는 온전합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함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그로 인하여 우리가 살았을진데,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한 사신이 된 동기입니다(11-15절).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가 이제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 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인데, 이 때 이전에 우리의 모든 죄된 것들은 사라지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이 태어난 새 생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은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되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시기 위한 화목제물이 되심인데, 이 때 우리는 화목의 주체이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16-21절).
3. 본문 연구
1절: “땅에 있는 장막 집”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각각 무엇이며 어떤 의미에서 비교가 가능합니까?
2절: “우리 처소로 덧입는다”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3절: “벗은 자들로 발견되다”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벗은 자들”이란 누구입니까?
6절: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란 뜻은 무엇입니까?
10절: “그리스도의 심판대”란 무엇을 말합니까?
16절: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18절: 바울이 받았다고 하는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란 무엇입니까? 왜 이것이 화목하게 하는 직책입니까?
21절: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란 말을 풀어서 해석하여 보십시오.
고린도후서 6:1-7:1 사신(使臣)의 표적과 교제
1. 개요
6:1-10 사신의 표적(사역의 실행)
6:11-7:1 사신의 교제(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
2. 전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와 화목케 하시기 위하여 은혜 베푸실 계획을 갖고 계시나, 사람들 가운데는 이를 헛되이 가볍게 여기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1-2절).
이를 위해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파하는 사신으로서 여러 가지 수고를 감당하고 사역을 실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신이 된 우리가 감당하여야 할 여러 가지 흔적들을 3절이하에서 열거하고 있는데, 이는 곧,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고, 모든 일에 많이 견디고,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4-5절)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6-7절), 또 우리가 당하는 여러 가지 이중적인 경험들입니다(8-10절).
요약하면, 사신의 흔적은 환난의 어려움을 잘 견디고,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지니는 것과, 우리의 당하는 모든 욕됨과 악함과 무명과 죽는 것과 근심과 가난함과 없음에서 영광과 아름다움과 유명과 살음과 기쁨과 부요함과 가진 자로 발견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이 그들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같이 그들도 마음을 넓히고 열린 마음으로 바울의 권면하는 말을 들으라고 당부합니다(11-13절).
믿는 사람들이 교제함에 믿지 않는 자와 같이 어울리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의와 불법이 같이 할 수 없고, 빛과 어둠이 사귈 수 없고, 그리스도와 벨리알(=사단)이 조화할 수 없고, 하나님의 성전과 우산의 전이 일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14-16절). 믿는 사람들의 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인고로 세상의 우상을 좇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습니다. 이리함으로 우리는 육과 영의 더러운 것을 우리에게서 몰아내고 거룩함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7:1).
3. 본문 연구
1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고 함은 무엇을 말함입니까?
3절: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에서 ‘이 직책’은 무엇이며, 이를 위해서 바울이 어떻게 하였다는 말씀입니까?
8-10절: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함은 무엇입니까?
12절: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라”의 의미는?
14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애를 같이 하지 말라”는 무슨 뜻입니까? ‘믿지 않는 자를 도무지 가까이 하지 말라’는 뜻입니까?
16절: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7:2-16 바울의 기쁨
1. 개요
7:2-11 고린도 교인들의 회개로 인한 바울의 기쁨
7:12-16 먼저 쓴 편지의 목적
2. 전개
7장으로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제1부 ‘그리스도를 위한 사역’ 편을 마감합니다. 바울은 1:3-11에서 환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의 감사와 위로에 대해서 말하였는데 7:2-11에서 다시 환난 가운데서 넘치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감사와 위로와 기쁨은 평안 가운데뿐아니라 오히려 환난과 곤고 가운데 더욱 넘칠 수 있는 역설적(逆說的)인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4절).
바울은 본문에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고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으로 대해 왔고 또 동일한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고있는 그의 진심을 그들이 알아주기를 원하는 바램입니다. 현실에서는 아직도 고린도 교인들이 막힌 마음이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이 아니지만, 바울은 이와같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고 낙관적인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고린도 교회를 방문했던 바울은 문제의 해결은커녕 문제가 더 심각하여져서 낙담을 했었고(2:1-4), 또 디도와도 소식이 끊어져서 마음이 편치 못하였었는데(2:13), 이제 다시 디도를 만나는 반가움을 누렸고 그가 전해준 바에 의하면 고린도 교인들이 통회(痛悔)함과 열심(熱心)을 내고 있다고 하여(7절) 바울의 기쁨은 넘쳐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두 번째로 방문하고 나서 바울은 환난과 애통하는 마음으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고서(2:4) 그들이 회개치 않을 것같아 편지를 보낸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디도 편에 전해 들은 소식--곧, 고린도 교인들이 통회하는 마음으로 열심을 내려고 한다는--은 바울을 넘치는 기쁨에 처하게 합니다. 바울의 기쁨은 고린도 교인들을 근심하게 한 자신의 편지가 잘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함이 있기 때문입니다(9절).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근심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근심으로 이로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 구원에 이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향한 근심인데 이는 우리로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10절).
이에 바울은 자신이 먼저 보낸 편지의 의도를 설명합니다. 곧, 그 편지로서 불의 행한자나 불의 당한 자를 나무라거나 징계하고자 함이 아니요 그들이 하나님 앞에 간절함으로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13절). 16절에서 바울은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고 함으로서 그의 낙관적인 마음을 표현합니다. 이는 그가 세 번째로 고린도 교인들을 방문할 때 모든 일이 원만하게 잘 이루어지고(8-9장에서 말하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헌금 걷는 일을 포함해서) 또 그들의 믿음의 성장을 보고자 함입니다. 바울이 말함은 고린도 교회의 모든 문제가 다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소원(疏遠)해졌던 고린도 교인들과의 관계가 해소되어 그가 세 번째로 그들에게 나아갈 때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다른 문제들도 풀릴 것이라는 희망을 보이는 것입니다.
3. 본문 연구
4절: 바울이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침”은 무슨 까닭입니까?
8절: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는 무슨 뜻입니까?
10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무엇이고, “세상 근심”은 무엇입니까?
11절의 뜻은 무엇입니까?
16절: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고린도후서 8:1-24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위한 모금 (1)
1. 개요
8:1-5 마게도냐 교회들의 모범
8:6-8 고린도 교인들을 위한 자극
8:9 예수 그리스도의 본
8:10-15 모금을 위한 바울의 권면
8:16-24 모금자에 대한 바울의 추천
2. 전개
8장과 9장을 통하여 바울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고린도 교인들이 모금운동에 참여하여야 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면하고 호소합니다.
8장을 시작함에 있어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들(빌립보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 등)의 예를 듭니다. 바울은 그들의 덕(=선물)을 칭찬하고, 그들의 풍성한 선물(2-5절)이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말합니다(1절). 마게도냐 교회들의 풍성한 연보는 매우 귀한 것인데(2절) 이는 그들이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극한 가난 가운데서’ 그들 자신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풍성한 연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를 따른 것으로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드린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로 하여금 고인도 지방에서의 모금을 마감하게 하기 위하여 그를 다시 고린도 교회로 보냅니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의 모금운동에 자극을 주기 위하여 그들의 은사를 열거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강요하려고 하지 않고, 그들의 순전한 마음에 호소하고자 합니다(8절).
바울의 호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로서 그 절정에 이릅니다(9절).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 부요하신 분이셨는데, 우리 인간들을 그 안에서 부요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모든 권한을 포기하시고 가난한 자가 되셨습니다. 바울이 이를 말함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예를 따라 가난한 형제, 자매를 위하여 우리 자신들을 드려야 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이 말하고자 함은 없는 것을 드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할 마음이 있는 대로 드리라고 함이요, 다른 사람의 평안을 위해서 고통받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유여(裕餘)한 것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평균의 삶(=경제)의 원리를 배우라는 것입니다(10-15절).
16-24절에서 바울은 디도를 대표로 하는 세 명의 모금사절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이와같이 적은 수의 사절단을 파견함은 모금을 아무런 불미스런 일 없이 마감짓고자 함입니다. 공적인 모금을 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로서 신앙의 본을 보이는 사람이 감당함이 바람직하고, 이에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을 천거(薦擧)하여 보내며 그들에 대한 추천서도 아울러 보내는 것입니다.
3. 본문 연구
1절: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라고 함은 무엇입니까?
8장에서 바울은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를 어떤 단어들로 표현하고 있습니까?
5절: “저희가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고”는 마게도냐 교인들이 어떻게 하였다는 것입니까?
9절: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함”이 어떻게 우리를 부요케 합니까?
13절: ‘평균의 경제원리’를 설명하여 보십시오.
고린도후서 9:1-15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위한 모금 (2)
1. 개요
9:1-5 모금의 중요성
9:6-11전 풍성한 연보
9:11후-15 하나님께 대한 감사
2. 전개
모금을 정한 때까지 끝마침이 참으로 중요한 일이기에 바울은 8장에 이어 9장에서도 고린도 교인들의 ‘열심’에 호소합니다(2절). 바울은 그와 마게도냐인들이 고린도를 방문하기에 앞서 모금사절단을 파견하는데 이는 그와 고린도 교인들이 혹 예비되지 않았음으로 부끄러움을 당치 않고자 함입니다(4절).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원함은 그들의 ‘(모금)하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readiness)'(2절)가 ‘모금 완료의 준비(=readiness)'(4절)로서 나타남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 위에, 모금한 연보를 갖고 예루살렘의 가난한 동포들을 찾아가는 그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지 않게 함입니다. 그러나,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풍성한 연보를 드릴 것을 권면합니다.
6-11절 전반에서 바울은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잠언 11:24, 22:8-9; 시편 112:9; 이사야 55:10; 호세아 10:12) 풍성하고 너그러운 연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6, 7, 9, 10절). 6절은 잠언 11:24와 22:9을 결합한 것이고, 7절은 잠언 22:8이고, 9절은 시편 112:9(Septuagint[=헬라어역 구약] 시편 111:9)이고(참조: 시편 111:3. 4. 9), 10절은 이사야서 55:10과 호세아서 10:12의 결합입니다. 바울은 이사야서를 인용함으로서 모금한 연보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 마지막 때에 대한 구약의 예언의 성취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어 바울은 너그럽고 풍성한 연보를 드리는 사람들은 이와같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으로 예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풍성한 연보를 함은 중요한 일인데, 이는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로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할뿐아니라 이 연보를 통하여 구제받는 예루살렘의 성도들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풍성한 연보를 함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복종하는 길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13절). 더 나아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과 함께 믿지 않는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의 이와같이 너그럽고 풍성한 연보를 보면 그들도 변화되어서 그리스도께로 돌아올 것을 바울은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에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선물로 공급해주시고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이루려고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림으로서 모금에 관한 그의 권면을 마칩니다.
3. 본문 연구
2절: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고 했는데 고린도 교인들이 원함이 무엇입니까? “1년전부터 예비”한 것은?
3절: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와 “내 말한 것같이 준비함이 헛되지 않고”는 각각 무슨 뜻입니까?
4절: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6절: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뜻을 설명해 보십시오.
12절: “이 봉사의 직무”는 무엇입니까?
13절: “연보를 하는 것”과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일”이 어떻게 연관이 있습니까?
14절: “저희”는 누구이며,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 사모하느니라”는 무슨 뜻입니까?
15절: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는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10:1-18 바울의 사도권 변호
1. 개요
10:1-6 바울 사역의 병기(兵器)
10:7-11 바울 사역의 권세(權勢)
10:12-18 바울 사역의 한계(限界)
2. 전개
10-13장은 고린도후서 전체 구성에 있어서 세 번째 부분으로서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변론’입니다. 바울의 적대자들(거짓교사, 유대주의자)은 바울이 떨어져 편지로는 담대한척 하면서 막상 대면하면 자신의 의사도 제대로 잘 표현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처신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대면할 때 준엄하게 꾸짖는 대신에 부드러움과 관용으로 대한 것은 그리스도의 예를 따른 것이라고 변론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바울도 육체의 연약함으로 그 소욕대로 행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바울은 자신의 처신함이 인간의 생각과 소욕대로 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하여왔음을 말합니다(1-6절).
바울이 편지로 담대하게 고린도 교인들을 질책하고 권면함도 그들을 겁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요 또 그들을 파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그들을 바로 세우고자 함입니다. 그가 몸으로 그들을 대할 때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음은 사실일지라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증거함에 세상의 지식과 논리로 혹은 언변으로 하려 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의 도만을 직설적으로 증거하여 복음의 진리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즉, 편지로 그리고 말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은 별다른 두 사람이 아니라, 두 개의 다른 방법으로 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동일한 사람 바울이라는 것입니다(7-11절).
바울에게 허락되어진 그리스도 복음사역의 한계를 따라 바울은 고린도 지방에 교회를 개척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복음을 증거함에도 바울은, 거짓사도들과는 달리, 남의 공을 가로채거나 남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하지않고 그에게 주어진 한계 안에서 하고자 합니다(참고: 롬 15:18-21). 거짓사도들은 자신의 척량자로써 자신을 칭찬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척량자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칭찬을 소망합니다. 거짓사도들은 주 밖에서 그들의 세상 것을 자랑하지만, 바울은 주 안에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을 자랑합니다(12-18절).
3. 본문 연구
1절: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절: “우리를 육체대로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을 대하여”라 함은 어떤 것을 말합니까?
3절: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는 무슨 뜻입니까?
4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함은?
8절: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라는 뜻을 설명해 보십시오.
12절: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는 무슨 의미입니까?
14절: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는 무슨 뜻입니까?
16절: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地境)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의 뜻은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11:1-33 거짓사도에 대한 경계와 바울의 고난과 자랑
1. 개요
11:1-15 거짓사도에 대한 경계
11:16-33 바울의 고난과 자랑
2. 전개
11장은 고린도후서 전체에 있어서 가장 개인적(個人的)이며 감정적(感情的)인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라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거짓사도의 진상을 밝히고 자신이 전에 그들에게 증거한 복음이 진실하고 우월한 것임을 증며하고자 함입니다.
거짓교사들의 중상과 모략으로 바울은 어리석은 말로 그 자신에 대하여 말하자면, 그들보다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사도된 바울의 책무는 교회와 교인들을 정결한 처녀로 잘 교양하고 보존하여 신랑되신 예수님께 소개하는 중매장이와도 같기 때문에 잘못된 거짓교사의 미혹으로 다른 예수,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틈타는 것을 방치(放置)할 수 없습니다(1-6절).
거짓교사들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요(料: 사례금)를 받지 않은 것도 모함합니다. 그가 만일 참사도라면 교회에서 사례를 받는 것이 당연한데 그렇지 않은 것은 그가 사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비난합니다. 바울이 마게도냐 교인들로부터는 경제적 지원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그들의 돈을 탈취한 것이라고 중상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군이 교회로부터 사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이 보장해주신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바울이 고린도 교회로부터 요(料)를 받지 않은 것은 그가 사도가 아니어서가 아니요, 또 이를 불합리한 것으로 여겨서도 아니고,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고 함’입니다(고전 9:7-12). 또 마게도냐 교인들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받은 것은 그들이 자원하여 바울을 도운 것이지 구걸(求乞)한 적도 없고 강탈(强奪)한 적도 없습니다(참고: 빌립보서 4:16; 고후 8:1-5). 또 바울은 거짓사도들에게 그들의 정당성을 입증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사례를 받아도 될 것이지만 받지 않고 자급전도(tent-making)를 계속하겠다고 밝힙니다(7-12절).
그들이 자기가 거짓사도라고 밝히지 않는 것은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현재는 의의 일군을 가장(假裝)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그들의 거짓행위가 드러날 것입니다(13-15절).
아마도 거짓사도들은 그들의 인간적인 육체적 조건들을 내세워 사도를 자칭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사도가 아니라고 비난하고 중상한 바울은 이에 맞서서, 자신이 그들이 자랑하는 육체적 조건에서 그들보다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인간의 자랑으로 변론합니다. 이는 바울이 원하던 바는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른 복음에서 구분(區分)하고 비호(庇護)하고자 함입니다(16-21절).
바울의 인간조건은 거짓사도들에 비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고, 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한 고난은 어떤 사도나 다른 일군보다 더 큰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 위에 바울의 더욱 극심한 고난과 염려는 혹 그리스도의 교회가 거짓사도들과 거짓 영과 변질된 복음으로 인하여 잘못되지나 않을까 하는 사랑의 염려입니다(22-29절).
이제까지 그리스도가 아닌 것짓사도의 예대로 육체를 따라 부득불(참고: 고후 12:11) 자랑한 바울은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랑으로 돌아옵니다. 곧, 그의 약한 것들을 자랑함으로 그리스도의 강하고 능력있음을 드러나게 함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자랑하여야 할 것입니다(30-33절).
3. 본문 연구
4절: “다른 예수,”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은 어떤 것들입니까?
7절: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고 물음은 무슨 까닭입니까?
13-15절: 사단과 거짓사도들이 하는 일은 어떤 점에서 유사(類似)하고 어떻게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12:1-21 바울의 환상과 계시 및 고린도 교회를 위한 염려
1. 개요
12:1-6 바울의 환상과 계시
12;7-10 바울의 가시
12;11-13 사도의 표시
12:14-21 바울의 고린도 방문계획과 그들을 위한 염려(念慮)
2. 전개
11장에서 어리석은 자랑을 통해서라도 고린도 교인들을 거짓사도를 좇는 위험에서부터 구해내려고 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이 14년 전에 본 환상을 소개함으로 12장을 시작합니다. 이 어떤 ‘한 사람’은 다름아닌 바울 자신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와같은 영적인 자랑거리도 자신의 자랑이 될 것같아 14년동안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었고 지금 언급함에도 그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이러한 영적 경험을 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을 때 이와같은 신령한 것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6절).
바울은 그가 체험한 셋째 하늘에서의 일을 자세히 설명하는 대신에 그의 몸에 있는 가시에 대해, 그의 약함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함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약함을 자랑하는 것이요, 우리의 약함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함과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7-10절).
바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진정한 표는 그의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자랑하여 행하는 그의 오래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11-13절).
이어서 바울은 그의 세 번째 방문계획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알립니다. 이 기회를 빌어 바울은 그의 고린도 지방에서의 사역과 편지 보내는 것과,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모금의 일로 디도와 다른 형제 둘을 보낸 모든 일들이 그 자신의 이(利)를 위하여 함이 아니요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합니다. 편지를 쓰고있는 지금도 하는 염려는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여 그가 고린도를 방문할 때 그의 원치 않는 바 그들 가운데 있는 사단의 역사를 보게 될까 함입니다(14-21절).
3. 본문 연구
1절: “무익하나마”...바울은 왜 그가 하는 ‘주의 환상과 계시에 대한 자랑’을 무익하다고 했습니까?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2절: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왜 자신의 경험이라고 하지 않고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5절: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7절: “내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에서 그가 말하는 ‘육체의 가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생각됩니까?
9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무슨 뜻입니까?
10절에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라”고 한 것과 비교해 보세요. 바울이 세 번 주께 기도한 것은 응답받았습니까?
13절: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에서 ‘공평치 못한 것’이란 무엇입니까?
20절: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고린도후서 13:1-13 고린도 교회에 대한 경고와 축복
1. 개요
13:1-4 바울의 방문계획과 경고
13:5-10 바울의 간구와 권면
13:11-13 축도
2. 전개
12:14 이하에서 바울은 조만간 있을 그의 고린도 방문계획을 알립니다. 그가 세 번째의 고린도 방문을 미루어온 것은(고후 1:23-24) 바울 자신의 개인사정이라기 보다는 아마도 그의 ‘괴로왔던’ 2차 방문 이후에(참고: 고후 2:1-4)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의 사역과 자신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지금 가고자 하나 아직도 그들이 불의한 데서 떠나지 않아 2차 방문 때와 같이 눈물과 근심의 방문이 될까 염려되는 마음입니다(12:20). 그러므로,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합니다: “내가 다시 가면 (그때까지 회개치 않은 자들을) 용서하지 아니하리라”(13:2). 이는 그들을 징계하고자 하는 바울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자 함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로 약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 같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하고자 함입니다(1-4절).
바울은 이제 다시 기회를 얻어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돌아보라고 권면합니다. 이렇게 하라고 함은 바울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고린도 교인들을 위함이니, 곧 그들이 믿음에 바로 서고,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강하고 온전한 자가 되게 하고자 함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사도권을 따라 징계하지 아니하고자 함입니다(5-10절).
이제 바울은 그의 편지를 끝맺습니다. “기뻐하라”로 번역된 헬라어 ‘카이로’(χαίρω)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작별인사 말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는’ 생활을 할 때 그들은 온전하고 위로받는 생활을 할 수 있고 그들 가운데 악이 틈타지 못하고 승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위한 축도로 그의 편지를 마칩니다(11-13절).
3. 본문 연구
1절: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2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 하리라”고 한 것은 무엇을 왜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3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고 말함은 무슨 뜻입니까?
4절: “... 우리도 저희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는 무슨 뜻입니까?
9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 강한 것을 기뻐하고”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10절: “떠나 있을 때에 ...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를 설명하십시오.
11절: “형제들아 기뻐하라”에서 믿는 사람들이 기뻐하여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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