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22, 2013

디도서 성경공부

                                                                       디도서 성경공부



디도서 개관

1. 디도서 저작연대와 장소 (The Written Date and Place of Titus)
디도서는 바울이 그레데(Crete)에서 목회하고 있던 디도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프로스 티톤'이라는 표제어로 되어 있습니다.
저작연대는 66-67년경으로 바울이 2차로 로마의 감옥에 갇혀 그의 생의 마지막을 보내던 중 기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 사이에 기록하였습니다.

2. 저작 목적 (Purposes of the Writing)
본서의 기록목적은 그레데 교회의 질서와 교리, 그리고 경건한 선행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고자 함입니다.
본 서신에서 바울은 건전한 교리를 강조하고 거짓 교리를 경계하며, 선한 행실을 강조하고 교회 내의 여러 부류들이 행할 적절한 행동 지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3. 중심 주제 (Prominent Subjects)
디도서의 주제는   그레데 교회의 질서,   건전하고 바른 교리,   바른 교리의 실천입니다.
중심사상은 '올바른 교회관'입니다.

4. 개요 (Outline)
1:1-16    장로(와 감독)의 자격과 이단자들의 경계
        1:1-4    바울의 인사
        1:5-9    장로의 자격
        1:10-16    이단자들의 경계

2:1-15    성도 양육에 관한 교훈
        2:1-10    바른 교훈을 가르침
        2:11-15    성도를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3:1-15    대인관계에 대한 교훈
        3:1-8    믿는 사람의 대인관계
        3:9-11    이단에 대한 경계
        3:12-15    작별인사와 축도

                                                 

디도서 1:1-16  장로(와 감독)의 자격과 이단자들의 경계

1. 개요
    1:1-4    바울의 인사
    1:5-9    장로와 감독의 자격
    1:10-16    이단자들의 경계


2. 전개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이 믿음과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고 소개한 다음, 디도에게 그에게 영생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전합니다(1-4절).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 섬에 머물게 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즉 그로 하여금 여러 교회에 부족한 것들을 바로 잡고 장로들(감독 포함) 세우는 일을 감당하고자 함입니다(5절).
그런 다음에 바울은 장로의 자격(6절)과 감독의 자격(7-9절)에 대하여 열거합니다. 즉, 장로는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 것이며,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않고, 급히 분내지 않고 술을 즐기지 않고 구타하지 않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고, 나그네를 대접하고 선을 좋아하고 근신하고 의로우며 거룩하고 절제하며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는 자라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신자들로 하여금 이단자들을 경계하되 그들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명령들을 듣지 않게 하라고 당부합니다. 이단자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는 자 같으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입니다(10-16절).


3. 본문 연구
2절: 바울은 영생(永生)을 무엇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까?

4절: "같은 믿음"이란 어떤 믿음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5절: 바울이 디도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무엇입니까?

5-9절: 바울이 디도에게 설명한 장로와 감독의 자격은 무엇입니까?

12-13절: 그레데인은 어떠한 자라고 했습니까?

13절: 바울이 디도에게 그레데 교인들을 엄히 꾸짖으라고 함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14절: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란 무엇입니까?

15절: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를 풀어서 설명하시오.

16절: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라고 함은 어떤 모습을 말함입니까?

                                                   

디도서 2:1-15  성도 양육에 관한 교훈

1. 개요
    2:1-10    바른 교훈을 가르침
    2:11-15    성도를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2. 전개
바울은 디도에게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위한 바른 교훈을 가르치라고 권면합니다.
늙은 남자에게는 절제, 경건, 근신,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관하여 가르치도록 합니다 (2절).
늙은 여자는 행실이 거룩하고, 참소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또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도록 합니다 (3-4절).
젊은 여자들은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잘하며 선하며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교훈합니다 (4-5절).
젊은 남자들은 근신하도록 교훈하고 스스로 본을 보여 가르침과 행함이 일치하도록 권면합니다 (6-8절).
종들은 상전들에게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려 말하지 말고 떼어먹지 말고 선한 충성을 다하도록 교훈하라고 권면합니다 (9-10절).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성도들을 양육하시되 이 세상의 정욕은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게 하시고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깨끗케 하사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11-15절).


3. 본문 연구
2절:  "늙은 남자"에 대한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3-4절: "늙은 여자"에 대한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절제하다" "경건하다" "근신하다"란 단어들을 설명하시오.

4-5절: "젊은 여자"에 대한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6-8절: "젊은 남자"에 대한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9-10절: "종들"에 대한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11-13절: 하나님의 은혜가 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습니까?

14절: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대신하여 자신을 주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15절: "모든 권위로"에서 디도가 갖고 있는 "모든 권위"란 무엇입니까?

                                                 

디도서 3:1-15  대인관계에 대한 교훈

1. 개요
    3:1-8    믿는 사람의 대인관계
    3:9-11    이단에 대한 경계
    3:12-15    작별인사와 축도


2. 전개
바울은 믿는 사람들이 대인관계에서 어떻게 처신할 것을 권고합니다.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라고 합니다(참고: 롬 13:1-7).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함에도 선한 일을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훼방하지 말고,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으로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성도들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어리석고 순종치 않은 자요, 순종치 않고 각색 정욕과 세상 사람들의 악함과 부정함을 그대로 간직하였던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셔 은혜를 입게 하셨으니 이는 믿는 자들로 조심하여 선한 일에 힘쓰게 하기 위함입니다 (1-9절).

바울은 다시 한번 (1:10-16 참조) 이단에 대하여 경계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단에 속 사람은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권고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는다고 말씀합니다 (9-11절).

바울은 개인적인 부탁과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자가 되라는 권면과 문안과 축도로 편지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12-15절).


3. 본문 연구
1절:  믿는 사람들은 정사와 권세 잡은 자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까? (롬 13:1-7)
바울의 이 권면의 말씀에 동의합니까? "정사와 권세 잡은 자"가 악한 자일 때는 어떻게 합니까?

2절: 믿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입니까?

3절: 우리의 믿기 전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5절: 성도는 무엇으로 구원함을 입습니까?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설명하시오.

7절: "의롭다 하심을 얻음"은 어떻게 되어지는 것입니까?

8절: 바울이 디도에게 의로와짐과 구원의 도리에 대하여 말하고 가르치게 함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9절: 바울은 무엇이 무익하고 헛된 것이라고 말씀합니까?

10-11절: 이단(heresy)에 속한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말씀합니까?
바울이 여기서 말씀하는 "이단(heresy)"이란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이단에 속한 사람의 속성은 무엇입니까?

12절: 바울서신에 나오는 "두기고"의 인물됨에 대하여 설명하시오.

14절: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울" 까닭은 무엇입니까?

디모데후서 성경공부

                                                           디모데후서 성경공부


디모데후서 개관

1. 디모데후서 저작연대와 장소 (The Written Date and Place of 2 Timothy)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던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프로스 티모데온 베타’(ΠΡΟΣ ΤΙΜΟΘΕΟΝ Β)‘라는 표제어로 되어 있습니다.
저작연대는 66-67년경으로 바울이 2차로 로마의 감옥에 갇혀 그의 생의 마지막을 보내던 중 기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2. 저작 목적 (Purposes of the Writing)
두 번째 로마의 감옥에 수감된 바울은 재판을 받게 될 겨울이 오기 전에 디모데에게 그가 가보의 집에서 잡힐 때 두고 온 물건들을 가지고 마가와 함께 올 것을 부탁하였으나, 혹 못 올 것을 대비하여, 이단에 대한 경고와 용기와 위로, 그리고 인내를 권면하려는 것이 기록목적입니다.

3. 중심 주제 (Prominent Subjects)
디모데후서의 주제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입니다.
즉, ■ 현재의 고난을 인내하고, ■ 말세의 시련에 대해서 복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중심사상은 인내와 바른 교훈입니다. 즉, 가르치며 전파해야 될 복음을 위해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4. 개요 (Outline)
1:1-18    디모데에 대한 감사
        1:1-5    인사와 격려
        1:6-14    고난에 대한 격려
        1:15-18    배신자와 충성하는 자

2:1-26    디모데에 대한 격려
        2:1-13    그리스도의 충성된 일꾼
        2:14-19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
        2:20-26    귀히 쓰임 받는 일꾼

3:1-17    말세에 대한 경고
        3:1-9    말세의 때와 징조
        3:10-17    핍박에 대한 대비와 성경의 유용성

4:1-22    디모데에 대한 마지막 권고
        4:1-5    말씀전파의 중요성
        4:6-8    믿음의 선한 싸움
        4:9-18    개인적인 부탁
        4:19-22    작별 인사

                                                 

디모데후서 1:1-18  디모데에 대한 감사

1. 개요
    1:1-5    인사와 격려
    1:6-14    고난에 대한 격려
    1:15-18    배신자와 충성하는 자


2. 전개
바울은 디모데후서를 시작함에 먼저 자신의 사도됨을 언급하고 인사와 격려를 합니다. 바울이 얼마나 디모데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여왔는지 말씀합니다. 디모데의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물려받은 순전한 믿음이 바울로 그를 더욱 보기를 원하게 합니다 (1-5절).

디모데의 목회가 그의 연소함으로 때로는 힘든 것인 줄 아는 바울은 그를 격려할 때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디모데에 앞서 바울 자신이 먼저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와 교사로 수고하고 그를 인하여 고난을 받았지만 부끄러워 아니한 것 같이 디모데도 그러하기를 당부합니다 (6-14절).

이어서 바울은 그가 아시아에 있을 때 그를 버린 사람들(부겔로와 허모게네 등)을 언급하고 또한 그를 따르고 섬긴 사람(오네시보로)의 일을 말씀합니다 (15-18절).


3. 본문 연구
3절: 바울은 무엇을 감사합니까?

4절: 바울이 디모데 보기를 원함은 무슨 까닭입니까?

7절: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설명하십시오.

9절: 하나님께서 성도를 부르심은 무엇에 따라 하신 것입니까?

11절: 바울은 무엇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받았습니까?

12절: 바울이 그가 받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무슨 연유입니까?
믿는 사람은 고난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여야 할 것입니까?

14절: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이란 무엇입니까?

15절: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일”이라고 함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어떤 심정임을 알 수 있습니까?

16-18절: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습니까?

                                                

디모데후서 2:1-26  디모데에 대한 격려

1. 개요
    2:1-13    그리스도의 충성된 일꾼
    2:14-19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
    2:20-26    귀히 쓰임 받는 일꾼


2. 전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모습으로 충성된 군사, 경기하는 자, 그리고 수고하는 농부의 예를 사용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는 충성된 군사와 같이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할 것이고, 경기하는 자와 같이 그리스도의 법대로 경기하여야 할 것이고, 수고하는 농부가 그 곡물을 먼저 받듯이 수확에 소망을 가지고 일할 것을 당부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고하고 고난을 참을 때 주님의 약속하심에 따라 주님과 함께 왕노릇 할 것이지만,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임을 말씀합니다 (1-13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이 되라고 당부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망령되고 허탄한 말을 버려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후메네오와 빌레도 같은 사람들은 경건치 아니함으로 행하는 자들이요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믿음까지 무너뜨려 내리는 자들인데, 그들이 저지르는 불의에서 떠날 것을 경계합니다 (14-19절).

하나님의 집에서 귀히 쓰임을 받는 그릇이 되기 위하여 불의한 것에서 깨끗이 할 것이며,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으로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성도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을 것을 당부합니다. 또한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릴 것과 가르치기를 잘하고 참을 것과 거역하는 자는 온유함으로 징계할 것을 권면합니다 (20-26절).


3. 본문 연구
4절: 군사로 다니는 자는 누구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까?

5절: 경기하는 자는 어떠할 때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까?

6절: 곡식은 누가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합니까?

8절: 바울이 “나의 복음”이라고 한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11절: 우리가 주와 함께 죽으면 어떤 일이 우리에게 일어납니까?

14절: 믿는 사람이 말다툼을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6절: 바울은 왜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고 말씀합니까? “망령되고 헛된 말”이란 무엇입니까?

20절: 큰 집(=교회)에는 어떠한 그릇들이 있습니까? 이 각기 다른 그릇들은 무엇입니까?

23절: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릴 이유는 무엇입니까?

24절: 주의 종의 자격은 무엇입니까?

26절: “마귀의 올무”란 무엇입니까?



디모데후서 3:1-17  말세에 대한 경고

1. 개요
    3:1-9    말세의 때와 징조
    3:10-17    핍박에 대한 대비와 성경의 유용성


2. 전개
바울은 말세의 때와 징조에 대하여 열거하되,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또한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고,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1-9절).

말세가 되면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이 핍박을 받을 것이요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고 속일 것이나,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고하되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어려서부터 배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10-17절).


3. 본문 연구
1절:  “말세의 때”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5절:  “경건의 모양”은 무엇이며 “경건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6절: “어리석은 여자”란 어떤 여자입니까?

11절: 바울이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12절: 바울은 어떤 사람들이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까?

14절: 바울이 디모데에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권고하는데, “배우고 확신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16-17절: 성경의 유익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바울이 말씀하는 “성경”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디모데후서 4:1-22  디모데에 대한 마지막 권고

1. 개요
    4:1-5    말씀전파의 중요성
    4:6-8    믿음의 선한 싸움
    4:9-18    개인적인 부탁
    4:19-22    작별 인사


2. 전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할 것을 엄히 명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듣기보다는 그저 가려운 귀를 긁어줄 스승을 두기를 원하고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하되 모든 일에 근신하고,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직무를 다할 것을 말씀합니다 (1-5절).

죽음을 얼마 앞둔 바울은 이어서 그가 이제까지 어떤 믿음의 삶을 살아왔는지 말씀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 이렇게 말함은 그의 믿음을 본받아 전도자의 직무를 온전히 감당하기를 힘쓰는 모든 자들을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6-8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속히 그에게 올 것을 당부합니다. 그가 올 때 바울의 사역의 흔적이 담겨 있는 겉옷과 가죽 종이에 쓴 책을 가져오라고 부탁합니다. 바울은 이제도 주님께서 그를 강건케 하시며 그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실 주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립니다 (9-18절).

바울은 편지를 마침에 있어서 디모데에게 그때 에베소 지방에 머물러 있던 브리스가와 아굴라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할 것을 당부하고, 또한 그와 함께 있는 형제들의 문안을 전합니다 (19-22절).


3. 본문 연구
1절:  “산 자와 죽은 자”는 각각 누구입니까?

3절: “때가 이르리니”에서 “때”는 어떤 때를 말씀합니까?
“자기의 사욕을 스승”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6절: “관제”란 무엇입니까?

8절: “재판장 되신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실 것입니까?

10절: “데마”는 누구입니까? 데마에 대한 바울은 마음은 어떠한 것 같습니까?

13절: “가죽 종이에 쓴 것”은 무엇입니까?

16절: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는 어느 상황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17절: 바울은 주님께서 그를 강건케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디모데전서 성경공부

                                                            디모데전서 성경공부


디모데전서 개관

1. 디모데전서 저작연대와 장소 (The Written Date and Place of 1 Timothy)
디모데전서는 바울의 목회서신(Pastoral Epistles: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 중의 하나입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프로스 티모데온 알파’(ΠΡΟΣ ΤΙΜΟΘΕΟΝ Α)라는 표제어로 되어 있습니다.
저작연대와 장소는 1차 로마 수감에서 풀려난 62-65년경으로 로마에서 기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2. 저작 목적 (Purposes of the Writing)
디모데의 부친은 헬라인, 어머니는 유니게, 외할머니는 로이스입니다(딤후 1:5). 디모데는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전도할 당시에 신앙을 갖게 되었으며 그의 믿음은 헌신자가 될 만큼 진보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고 에베소 교회의 사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성격이 차분하나 다소 소심하였던 디모데에게 격려와 위로 그리고 목회에 관한 지침으로 본 디모데전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즉, ■ 거짓 교훈을 퍼뜨리는 영지주의 이단을 특별히 경계하고, ■ 에베소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할 신앙적 윤리에 관하여 언급하며, ■ 교회 내의 계층간의 인간관계를 올바로 교훈하기 위함입니다.

3. 중심 주제 (Prominent Subjects)
디모데전서의 주제는 젊은 목회자를 위한 건전한 목회 지침입니다.
즉, 거짓교리와 교훈의 위험, 영적 지도자의 자격, 교회내의 질서와 목회자의 경건생활입니다.
중심사상은 ■ 건전 교리의 필요성, ■ 영적 지도자들의 경건, ■ 교회의 권위사상입니다.

4. 개요 (Outline)
1:1-20    교리에 관한 교훈
        1:1-11    거짓 교리에 대한 경고
        1:12-20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2:1-15    공중예배에 관한 교훈
        2:1-7    복음의 보편성
        2:8-15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

3:1-16    교회의 직분자에 대한 교훈
        3:1-7    교회 감독(또는 장로)의 자격
        3:8-13    교회 집사의 자격
        3:14-16    하나님의 교회와 그리스도

4:1-16    거짓 교사에 대한 교훈
        4:1-5    거짓 교사에 대한 교훈
        4:6-11    경건의 우월성
        4:12-16    바울의 목회 지침

5:1-6:2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에 대한 교훈
        5:1-16    과부에 대한 태도
        5:17-25    장로들에 대한 태도
        6:1-2    종들에 대한 태도

6:3-6:21    목회자의 자격과 의무에 대한 교훈
        6:3-10    지족하는 신앙
        6:11-16    디모데에 대한 개인적인 권고
        6:17-21    부자에 대한 경고와 거짓 지식에 대한 경계

                                                   

디모데전서 1:1-20  교리에 관한 교훈
1. 개요
    1:1-11    거짓 교리에 대한 경고
    1:12-20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2. 전개
바울은 디모데에게 먼저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문안하고, 그를 에베소에 머물게 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즉, 에베소 교회 안에서 다른 교훈이나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하여 디모데로 에베소 교회 목회를 담당케 한 것입니다. 거짓 교훈은 멀리 하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는 바른 교훈을 가르치고자 함입니다 (1-11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에게 직분을 맡기심에 감사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로 영생 얻는 자들의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설명하며, 디모데도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므로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삶을 살 것을 당부합니다. 후메네오와 알렉산더는 착한 양심을 버림으로 사단에게 내어준 바 되었음을 상기시킵니다 (12-20절).


3. 본문 연구
1절:  바울은 왜 자신의 ‘사도 됨’을 언급합니까?

2절: 바울의 처음 인사에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등장하는데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서는 어떻습니까?

3절: 바울이 마게도냐로 갈 때에 디모데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고 했다는데 시기적으로 언제입니까?

4절: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라”고 함은 무슨 까닭입니까?

8절: 율법은 어떤 때 선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9-10절:  법은 어떤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까?

13절: 하나님께서는 왜 전에 훼방자요 핍박자였던 바울에게 사도의 직분을 맡기셨습니까?

15절: 바울은 스스로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했는데, 이는 현재의 바울에 관한 표현입니까? 아니면 전에 그랬다는 것입니까?

16절: 바울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까닭은 무엇입니까?

18절: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는 권고는 무엇입니까?

20절: 바울이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에 대하여 “내가 사단에게 (그들을) 내어주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의미는 무엇입니까?

                                                   

디모데전서 2:1-15  공중예배에 관한 교훈

1. 개요
    2:1-7    복음의 보편성
    2:8-15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


2. 전개
바울은 디모데에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감사를 하되 첫째는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라고 당부합니다 (참고: 롬 13:1-7; 딛 3:1-2).
이렇게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감사를 함이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데 이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을 속전으로 주시고 바울은 이 복음 증거를 위하여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1-7절).

남자들은 각 처에서 분노와 다툼이 없이 기도할 것이요, 여자들은 아담한 옷을 입고 염치와 정절로 단장하고 선행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여자들의 역할은 주장하거나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순종하고 조용히 배우는 자이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 받았고 또한 죄악이 먼저 이와를 통하여 들어온 까닭이라고 설명합니다. 해서, 여자는 정절과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8-15절).


3. 본문 연구
2절:  바울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를 하라고 권고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악한 임금이나 정부도 포함하는 것입니까?

4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했는데, 이것은 ‘만인구원설’을 의미합니까?

5절: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의 사역이 무엇입니까?

7절: 바울은 무엇을 위하여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우심을 받았습니까?

9절: 교회에 출석하는 여성의 외모는 어떠해야 합니까? 왜 외모가 중요합니까?

11-12절: 현대 교회에서 여자는 가르치는 일과 대표 기도하는 일을 맡을 수 있습니까?

13-14절: 바울은 여자가 교회에서 조용할 것에 대한 이유를 무엇이라고 설명합니까?

15절: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디모데전서 3:1-16  교회의 직분자에 대한 교훈

1. 개요
    3:1-7        교회 감독(또는 장로)의 자격
    3:8-13      교회 집사의 자격
    3:14-16    하나님의 교회와 그리스도


2. 전개
바울은 3장에서 감독(또는 장로)과 집사의 자격에 대하여 열거하고 있습니다.
감독의 자격은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고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고 관용하고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복종케 하며, 새로 입교한 자가 아니며,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 것입니다(1-7절).

집사의 자격은 단정하고, 일구이언(一口二言)하지 않고, 술에 인박이지 않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고 깨끗한 양심과 믿음을 가진 자라야 할 것입니다 (8-10절).
11절에 “여자들도”라고 했는데, 이 여자에 대하여는 ‘집사의 아내’라는 주장과 ‘여자 집사’ 또는 ‘(여자) 권사’에 관한 규정이란 주장 등이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집--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인 교회에서 어떻게 할 것을 권면하기를 원하였는데, 이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 (14-16절).


3. 본문 연구
1-7절: 감독의 자격은 어떠합니까? 현대 교회의 목회자나 장로는 이러한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들입니까?

6절: “새로 입교한 자”가 감독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은 왜 그렇습니까?

7절: 감독은 외인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8-12절: 집사의 자격은 어떠합니까?

9절: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란 어떤 사람을 가리킵니까?

11절: “여자들도”에서 이들은 누구입니까? 여자로서 집사가 되고자 하는 자입니까? 아니면, 집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아내입니까?

13절: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이 얻는 “아름다운 지위”란 무엇입니까?

15절: “하나님의 집”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진리의 기둥과 터”란 말을 설명하여 보시오.

16절: “경건의 비밀”이란 무엇입니까?
“영(靈)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는 무슨 뜻입니까?

                                                 

디모데전서 4:1-16  거짓 교사에 대한 교훈

1. 개요
    4:1-5    거짓 교사에 대한 교훈
    4:6-11    경건의 우월성
    4:12-16    바울의 목회 지침


2. 전개
어떤 사람들은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또는 마귀)의 가르침을 좇는데 이러한 자들은 양심에 화인(火印) 맞은 거짓 교사들입니다. 이러한 자들 중에 혼인을 폐하고 식물을 폐하는 금욕주의 또는 금욕주의적 영지주의자들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모두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1-5절).

바울은 디모데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신앙의)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는 자들은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께 소망을 두는 자들인데,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는 삶을 가르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6-11절).

바울은 디모데가 연소함으로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말과 행실과 믿음과 정절에 관하여 성도들의 본이 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일에 전심전력함으로 그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라고 권하는데, 이렇게 함은 성도들로 그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들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2-16절).


3. 본문 연구
1절: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이란 각각 무엇입니까?

3절: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누가 이런 주장을 하였습니까?

7-8절: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함은 무엇을 하란 뜻입니까?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함’의 유익은 무엇입니까?

10절: 바울은 무슨 일에 수고하고 진력합니까?

12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떤 일에서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고 권고합니까?

14절: 디모데가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바는 무엇입니까?

15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엇을 사람들에게 나타내라고 말씀합니까?

                                                   

디모데전서 5:1-6:2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에 대한 교훈

1. 개요
    5:1-16    과부에 대한 태도
    5:17-25    장로들에 대한 태도
    6:1-2    종들에 대한 태도


2. 전개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인들 가운데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아비를 대하듯 그렇게 권할 것이고, “젊은이”는 형제를 대하듯 할 것이요, “늙은 여자”는 어미를 대하듯 할 것이요, “젊은 여자”는 자매를 대하듯 하라고 말씀합니다 (1-2절).
교회 내에 있는 참과부를 경외하라고 권고합니다. 과부 중에 자녀나 손자들이 있는 사람은 먼저 그들로 효를 행하게 할 것이고, 또한 나이가 육십이 되지 않은 사람은 과부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참)과부의 명부에 올릴 사람은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합니다.
교회에 과부 명부를 만드는 것은 선한 행실의 사람으로서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 사람을 도와줄 목적이므로 젊은 과부는 제외하고 또한 믿는 친척이 있는 사람들은 될 수 있는 대로 그 사람들이 도와주어 교회의 짐을 덜게 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합니다 (5장 1-16절).

성도들은 장로들--특히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요즘의 목회자들)을 존경할 것이며 그들을 송사함에는 신중함으로 할 것입니다. (교회를 어지럽게 할) 죄를 범한 자가 있으면 사람들 앞에서 꾸짖어 일벌백계(一罰百戒)할 것입니다. 직분자로 안수하는 일에 신중하고 다른 사람의 죄 판단하는 일에 앞장서지 말고 먼저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죄나 선행이나 조만간 밝히 드러나지는 것이니 죄는 짓지 말고 선을 행할 것을 힘쓰라고 당부합니다 (5장 17-25절).

종들에 대한 권면은 상전들을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아야 할 것은 이로써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훼방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상전을 대할 때 다만 형제로 여겨 경홀히 대할 것이 아니라 더 잘 섬길 것을 가르치고 권하라고 말씀합니다 (6장 1-2절; 딛 2:9-10).


3. 본문 연구
1-2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늙은 사람과 젊은 사람을 각각 어떻게 대하라고 말씀합니까?

3-10절: 교회의 과부 명부에 올릴 사람은 어떤 조건을 갖춘 사람입니까? 왜 과부 명부를 만들었습니까?

11-15절: 젊은 과부는 왜 교회의 과부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합니까?

18절: 성경말씀의 인용은 어떤 맥락에서 한 것입니까?

19절: 장로에 대한 송사는 어떤 경우에만 받으라고 말씀합니까?

20절: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라고 함은 예수님의 마태복음 18장 15절 이하의 ‘범죄한 형제’에 대한 가르침과 다른 것 같은데 바울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반한 것입니까?
    마태복음 18:15-17...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22절: (목회자로서) 직분을 위한 안수를 함에 주의할 점이 무엇입니까?
                                                   


디모데전서 6:3-21  목회자의 자격과 의무에 대한 교훈

1. 개요
    6:3-10    지족(知足)하는 신앙
    6:11-16    디모데에 대한 개인적인 권고
    6:17-21    부자에 대한 경고와 거짓 지식에 대한 경계


2. 전개
다른 교훈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하지 않는 사람들은 교만하여지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여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족(知足)하는 마음인데, 곧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니 (空手來空手去),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니 족한 줄 아는 삶이 필요합니다. 부하려 하여 돈을 (지나치게)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됨으로 믿음을 떠나게 될 수도 있고 그로써 멸망에 빠질 수도 있음을 경계합니다 (3-10절).

바울은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며, 크리스천으로서 부정적인 것은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고합니다.
기약이 이르러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성도들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는 삶을 삶으로써 선한 증거를 얻어야 할 것임을 강조합니다 (11-16절).

부한 자들에게 명할 때 마음을 높이지 말고, 소망을 재물에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즐기며 동정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할 때 장래에 참된 생명을 쌓을 수 있음을 권할 것입니다 (17-19절).
바울은 다시 한 번 디모데를 권할 때 그가 당부한 모든 것들을 지키고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고 당부합니다 (20-21절).


3. 본문 연구
3-5절: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주의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6절: “지족하는 마음”이란 무엇이며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10절: “돈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1절: “하나님의 사람”이 좇을 일은 무엇입니까?

12절: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무엇입니까?

15절: “기약이 이르면”에서 ‘기약’은 무슨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17절: 믿는 사람은 그의 소망을 어디에 둘 것입니까?

18절: 믿는 사람은 어떤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까?

20절: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이란 무엇입니까?


목회서신 강의

                                                               목회서신 강의


      목회서신(Pastoral Epistles)이란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와 디도서--세 권의 바울서신(Pauline Epistles)을 가리키는 것으로 바울의 협력자요 동역자이었던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개인서신들로서 목회에 관한 권면과 조언을 기록한 책들을 지칭한다.

(1) 디모데전서
      최초의 신약 정경을 편찬한 마르시온(Marcion)은 디모데전서를 비롯하여 디모데후서와 디도서, 세 권의 목회서신을 그의 (바울) 사도서(Apostolikon) 부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디모데전서가 바울이 직접 기록한 서신이라면, 이 서신은 바울이 로마 가택연금의 상태에서 풀려나 잠깐 활동하던 시기인 62-63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로마 가택연금 다음의 활동에 대해서는 확실한 자료가 없다. 사도행전에도, 바울의 서신들에도 그가 로마의 가택연금 상태에서 벗어났는지, 벗어났으면 그가 어디에서 어떤 활동을 더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붙잡히고 어떤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기록이 없다. 다만 불확실한 전승과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비평주의 성경학자들뿐 아니라 중도적 성경학자들의 많은 사람들이 디모데전서를 포함한 세 목회서신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서신의 스타일, 어휘뿐 아니라 신학도 다른 바울 서신과는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 감독의 제도가 바울 당시의 것으로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이들에 따르면, 디모데전서는 1세기 말기쯤에 바울의 정신을 이어받은 제자에 의하여 기록되어졌다고 한다 (진보적 신학자들 중에는 2세기 중엽까지 저작연도를 보는 사람도 있음).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개인서신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다른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교회 내에서 회람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디모데전서는 교회 문제와 교회 내의 다양한 지도자들의 자격요건과 그들이 해야 할 의무 등을 다루고 있다.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하여 목회자로서의 디모데를 권면하고, 감독과 집사의 자격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다.


(2) 디모데후서
      바울이 직접 쓴 서신이라고 한다면, 바울이 그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쓴 최후의 유언과도 같은 서신일 것이다. 그가 두 번째 체포된 이후 사형선고를 받고 옥중생활을 하던 중인 67년경에 썼을 것이다. 그러나, 비평주의 신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성경학자들이 바울 저작설을 부인한다. 디모데전서에서 설명하였듯이, 문체, 어휘, 신학사상 등에서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는 상이한(inconsistent) 것들이 많이 있다.

      디모데후서는 죽음을 목전에 둔 바울이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영의 아버지로서 마지막 당부를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제 얼마 후면 육신의 무거운 짐을 벗게 될 때가 올 것을 예감하는 바울은(4:6) 박해 중에서도 에베소에서 신실한 목회를 감당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그들의 변론에 휘말리지 말고 확고한 진리의 말씀 위에 거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라고 권면한다.


(3) 디도서
      바울이 직접 쓴 서신이라고 한다면, 바울이 로마의 가택 연금의 상태에서 풀려나서 자유로운 몸으로 디모데전서와 비슷한 시기인 62-63년경에 그레데(Crete) 섬에서 목회하고 있던 디도에게 편지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비평주의 신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신학자들이 바울 저작설을 부인한다. 디모데전서에서 설명하였듯이, 문체, 어휘, 신학사상 등에서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는 상이한(inconsistent) 것들이 많이 있다.

      디도서는 건전한 교리를 강조하는 한편 진리를 왜곡하는 자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선한 행실을 강조하고 교회 내의 여러 집단이 행할 적절한 행동 지침도 가르치고 있다. 디도서는 또한 직분을 맡을 자의 자격 요건을 언급하고, 직분자를 포함하여 모든 믿는 자는 일상생활에서 구원에 합당한 행실을 실제로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골로새서 성경공부

                                                                골로새서 성경공부


골로새서 개관

1.    골로새서 저작연대와 장소 (The Written Date and Place of Colossians)
본 서신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연금의 옥중생활을 할 무렵(61-62년, 참고: 사도행전 28:30-31), 골로새 교인들에게 두기고와 오네시모 편에 보낸 편지입니다.

2.    기록목적 (Purposes of the Writing)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개척하고 사역한 교회는 아니었지만, 그가 사역한 에베소 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또한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동안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를 도운 에바브라가 사역하는 곳이라 관심이 많았습니다.
로마를 방문한 에바브라 편에 골로새 교회에서 잘못된 가르침과 이단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1:7-8) 바울은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 편지를 씁니다. 이단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2:8-23에서 이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지적하고 경고합니다. 이를 살펴보면, 유대주의적 율법주의(2:11, 2:14, 2:16, 3:11), 철저한 금욕주의(2:16, 2:20-23), 천사 숭배(2:18), 세상 학문(철학)을 숭배함(2:8) 등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이단 사상들을 반박하고 경고함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사역의 우월성을 상대적 진리(counter- truths)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3.    주제(Themes)
골로새서에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모두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창조주로서 신성이 충만하신 분이며, 또한 교회의 머리요, 사람과 하나님의 화해자요, 그의 인격 가운데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닫당하신 분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에베소서가 교회론적인 입장에서 쓰여졌다면, 본 골로새서는 기독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본서에서 철학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물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이단 사상들이 부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십자가 상의 그의 죽음의 효력, 그의 절대 주권성, 그의 계속적인 중보 등이 바울의 교리적 메시지의 중심입니다(1:15-22, 2:9, 3:11).

4.    개요 (Outline)
1:1-14    서론

1:15-29    그리스도의 우월성

2:1-23    그리스도 사역의 우월성 (이단에 대한 경고)
        2:1-7    바울의 염려와 권고
        2:8-10    세상의 철학이나 초등학문보다 우월
        2:11-17    유대주의적 율법주의보다 우월
        2:18-19    신비주의(천사숭배)보다 우월
        2:20-23    금욕주의보다 우월

3:1-4:6    부르심의 우월성 (성도의 실천강령)
        3:1-17    성도의 삶의 원리
        3:18-4:1    성화(聖化)에 이르는 성도의 의무
            (3:18-19    부부관계/3:20-21    부모-자식 관계/3:22-4:1  주종관계)
        4:2-6    성도의 신앙생활

4:7-18    성도의 교제와 마지막 인사
                                                   

골로새서 1:1-29     그리스도의 우월성

1. 개요
    1:1-14    서론
    1:15-29    그리스도의 우월성
        1:15-23    그리스도의 성품
        1:24-29    바울에게 맡겨진 사명


2. 전개
바울은 1-2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됨이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임을 밝히고 간단한 문안인사를 합니다(1-2절). 그 다음에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대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그의 기도 가운데 늘 감사함을 그들에게 알립니다. 이렇게 함은 바울의 편지를 대할 골로새 교인들의 마음을 열게 함으로 그의 사랑의 권고를 듣게 하려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복음 진리의 말씀을 에바브라를 통하여 듣고 그들의 믿음이 어느 정도 자라서 열매를 맺기도 하였습니다(3-8절).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 교회에 잘못된 진리와 이단사상이 만연해가고 있다는 것을 들은 바울이지만, 그들을 바로 나무라는 대신에 먼저 그들을 위해 뜨겁게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간구의 내용인즉, 그들에게 신령과 지혜와 총명이 더하여져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 맺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 가운데서 건져내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구속(救贖), 곧 죄사함을 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9-14절).

이어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심을 설명함으로 그들에게 바른 신앙을 가질 것을 권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形像: image)이라고 했습니다. 구체화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 알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창조물 이전에 계신 분으로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15-17절). 그리스도는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모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고전 15:20) 만물의 으뜸이 되시고, 그 안에 모든 충만이 있습니다(18-19절). 그리스도는 그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는데,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 화목을 이루고, 따라서 하나님 앞에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의로운 자로 서게 하셨습니다(20-22절). 그리스도는 이러한 분이신데 이러한 것이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믿음의 터 위에 굳게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23절).

바울이 교회(그리스도)의 일군이 된 것은 하나님의 때가 찬 비밀의 경륜을 알게 하고자 부르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 모든 성도들에게 알게 하고자 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유대인뿐아니라 모든 이방인까지--을 구언하고자 하는 계획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바울은 그의 힘을 다하여 수고할 것을 다짐합니다. 바울이 이를 말함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복음의 진리에 바로 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하고자 함입니다(24-29절).


3. 본문 연구
1:9-14에 나오는 바울의 골로새 교인들을 위한 간구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5절:  “그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의 뜻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18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22절: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를 설명하십시오.

25절: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에서 바울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란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2:1-23     이단에 대한 경고(그리스도 사역의 우월성)
1. 개요
    2:1-7    바울의 염려와 권고
    2:8-10    세상의 철학이나 초등학문보다 우월
    2:11-17    유대주의적 율법주의보다 우월
    2:18-19    신비주의(천사숭배)보다 우월
    2:20-23    금욕주의보다 우월


2. 전개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있는 이단에 대해 경고하기에 앞서서 골로새 교회와 주위의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바울의 염려와 관심을 전합니다. 바울이 이와같이 힘쓰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온전히 깨달아 알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그리스도 안에, 세상의 어떠한 것도 이룰 수 없는 참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를 주로 믿는 사람들은 그 믿음의 뿌리응 그 안에 내리고 믿음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야 할 것’임을 권면합니다(1-7절).
다음에, 바울은 골로새 교회 안에 침투해있는 잘못된 가르침과 이단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첫째로, 철학과 헛된 속임수, 초등학문이 있습니다. 바울이 여기에 열거한 철학, 속임수와 초등학문이 무엇을 말하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헬라 철학이나 영지주의 철학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어떠한 것이든 그러한 철학이나 초등학문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좇음은 ‘신성의 모든 충만이 그 가운데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라고 바울은 역설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오직 정사와 권세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여집니다(8-10절).
믿는 사람들이 받은 할례(=세례)는 유대주의의 할례보다 우월한데, 이는 유대주의의 할례는 형식적인 것이요 이로 인해 구원에 이를 수 없지만, 믿는 사람들의 할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마음에 한 것으로서 구원의 표징입니다(로마서 2:28-29, 6장). 마음에 할례(=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의문(儀文)에 의하여 제재를 당하지 않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문의 속박을 도말(塗抹)하시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또한, 율법의 규례를 따라 먹고 마시는 것, 절기, 월삭과 안식일에 의해 구속당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實體)인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11-17절).
이단의 가르침 가운데는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숭배가 있습니다. 이 둘은 결국 한 가지를 말함인데, 곧 우리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교만이므로, 천사를 중개자(仲介者)로 해서 하나님께 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 바로 나아가지 않고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겸손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는 잘못된 겸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리시고 자신의 육체를 찢기심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담력을 얻었습니다(히브리서 10:20, 요한 16:26; 비교: 카톨릭의 마리아를 통한 간구).  천사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이는 겸손이 아니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우상을 만드는 행위이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이며, 그의 십자가의 피의 효력을 부인하는 행위입니다(18-19절).
초등학문에 따른 극단적 금욕주의적인 삶(21) 또한 그리스도를 세우는 생활이 아닙니다.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바로 서는 삶을 사는 것인데, 자기 육체를 학대하면서까지 금욕하는 것은 지나친 쾌락주의와 함께 창조의 섭리를 역행하는 것입니다(딤전 4:3...“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23절에서 바울은 앞에서 경고한 것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명이 아닌 사람의 명에 의존한 자의적 숭배(18절, 참고: 레 10:1-2, 나답과 아비후), 가장된 겸손(18절), 몸을 괴롭게 함(21절, 금욕주의자의 자해적 행위) 등은 인간의 눈에는 지혜있는 것처럼 보이나, 육체의 정욕을 막는데 효력이 없을 뿐아니라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3. 본문 연구
9절: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8절: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라고 함은 무엇입니까?

19절: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는 무슨 뜻입니까?

21절: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에서 무엇을 이리 말라는 것입니까?
                                                   

골로새서 3:1-4:6     성도의 실천강령(부르심의 우월성)
1. 개요
    3:1-7    성도의 삶의 원리
    3:18-4:1    성화(聖化)에 이르는 성도의 의무
        (3:18-19  부부관계/3:20-21  부모-자식관계/3:22-4:1  주종관계)
    4:2-6    성도의 신앙생활


2. 전개
우월하신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믿는 사람은 이제 땅의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하늘의 것을 생각하고 찾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며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우리는 우리의 옛 습관--땅에 있는 우리의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우리의 옛 사람과 그 행위, 옛 모습은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이 새 사람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사람인데, 곧 긍휼, 자비, 겸손, 온유와 오래참음의 옷이며, 용서와 사랑의 모습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새 사람의 옷을 입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가운데 풍성히 거하며, 마음에 감사함이 넘치며, 하나님께 찬양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할 것입니다(3:1-17).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성도들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성화하는 삶을 살아나갑니다. 아내로서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할 것이며, 남편으로서 아내 사랑하기를 교회를 사랑하듯 할 것이고, 자녀로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며, 아비로서 자녀들을 격노케하기 보다는 주님의 말씀으로 양육할 것입니다. 종으로서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기를 마음을 다하여 우리 영혼의 상전이신 하나님께 하듯 할 것입니다. 또한, 상전으로서 종을 대할 때 의와 공평을 베풀 것인데, 이는 그가 하늘의 상전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3:18-4:1).

또, 우리 믿는 사람들은 기도에 항상 힘쓰고 깨어있어야 할 것이며, 전도의 문이 우리에게 열리기를 간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하여는 지혜로 할 것이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조심하여 오직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본문 연구
3장
1절:  “위엣 것을 찾으라”에서 ‘위엣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2절: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에서 ‘땅엣 것’은 또한 무엇입니까?

9절: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는 어떻게 가능합니까?

10절:  “새 사람을 입었으니”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삶의 모습입니까?

22절: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는 무슨 의미입니까?

4장
1절:  “상전들이 종에게 의와 공평으로 대하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18-4:1에서 바울은 이러한 신분적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까?

5절:  “외인을 향하여서는 ... 세월을 아끼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6절: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는 어떤 의미입니까?



골로새서 4:7-18     성도의 교제와 마지막 인사

1. 개요
    4:7-9    편지를 전하는 사람들
    4:10-14    문안을 전하는 사람들
    4:15-17    문안을 받는 사람들
    4:18    축도


2. 전개
골로새서의 마지막 부분인 본문에서 바울은 편지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두기고, 오네시모), 함께 있는 사람들 중 문안을 전하는 사람들과, 그 문안의 대상자들을 소개한 다음에, 친필로 개인적인 문안을 전하고 축도로 본 서신을 끝마칩니다.

두기고는 바울의 신임이 두터웠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두기고 편에 에베소서와 빌레몬서와 본 서신을 갖고 가게 했으며(8절), 바울의 3차 전도여행시에 동행하게 했습니다(행전 20:4). 바울은 두기고에 대해서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7절).
그 다음으로 오네시모에 대해서 소개하는데 그는 원래 골로새 교회의 신자인 빌레몬의 종이었던 자인데 아마도 주인의 물건을 훔쳐(빌레몬 1:11, 18) 로마로 도망하였던 중 바울을 만나 그리스도인이 된 자인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제 그를 신실하고 사랑받는 형제라고 표현했습니다. 전에는 무익하던 종이었는데(빌레몬 1:10상) 이제는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빌레몬 1:11하).

편지를 가지고 가는 두 사람에 대한 소개를 마친 바울은 그와 함께 문안을 전하는 여섯 명의  인물을 소개합니다. 먼저 아리스다고인데 그는 데살로니가 출신의 사람으로서 바울이 로마로 끌려갈 때 바울과 함께 동행하여(행전 27:2) 이제까지 그와 함께 해온 것 같습니다. 그는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연금생활을 할 때도 함께하여 바울은 그를 나와 함께 갇힌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나바의 생질(甥姪) 마가는 오순절 성령이 강림한 마가의 다락방의 주인(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부유한 과부로 자신의 집을 제자들이 기도하는 곳으로 제공함)이며, 바울과 바나바가 일차 전도여행을 할 때 그들을 따라 떠났다가 육신의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돌아온 경험이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서 바울에게 신임을 잃었고, 바울과 그의 삼촌 바나바가 갈라지는 계기를 제공하였으나, 후에 자신의 실패를 거울삼아 제기(提起)하여 베드로의 신임(벧전 5:13)과 바울의 신임(골로새 4:10; 빌레몬 1:24; 딤후 4:11)을 회복하였습니다.  더욱이, 그는 복음서중 가장 먼저 기록된 것으로 여겨지는 마가복음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그에 대해서 특벼한 지시를 내리고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고 부탁합니다.
세 번째 인물 유스도라고 하는 예수를 포함하여 위의 세 사람만 바울과 함께한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에바브라가 있는데, 이 사람은 골로새 출신으로서 바울이 3차 전도여행중 에베소에 머물 때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후에 골로새 교회를 개척하고 사역한 것 같습니다. 본 골로새서를 쓰게 된 동기를 제공한 사람입니다. 그는 골로새와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한 사람이며, 항상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또, 문안하는 사람 가운데 의사 출신으로 바울과 늘 함께 동행하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있고 또한 데마가 있습니다. 이 데마는 한 때는 바울의 동역자로 신뢰를 받던 사람이었지만(빌레몬 1:24), 후에는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울과 복음 전함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딤후 4:10).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 이외에 골로새 근처 라오디게아 교회 형제들과 믿음의 자매 눔바와 그 가정교회(참고: 행전 12:12...예루살렘의 마리아 집의 교회, 고전 16:19...에베소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 교회, 빌레몬 1:2...골로새의 빌레몬의 집 교회)에 모이는 권속들에게 문안합니다. 또 교회에 보내진 바울의 편지는 가까운 다른 지방의 교회들에게도 돌려져 읽혀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빌레몬 4:16; 살전 5:27; 고후 1:1).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로 여겨지는데, 아마도 에바브라와 함께 골로새 교회 목회를 담당하다가 현재 에바브라가 부재중이므로 바울이 그의 목회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빌레몬서 1:2에서 바울은 그를 우리와 함께 군사된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절(18절)에서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고, 그의 은혜가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축도로 편지를 마칩니다.

빌립보서 성경공부

                                                              빌립보서 성경공부


빌립보서 개관

1.    빌립보서 저작연대와 장소 (The Written Date and Place of Philippians)
본 서신은 사도바울이 로마에서 가택연금의 옥중생활을 할 무렵(61-62년, 참고: 사도행전 28:16-31),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에 감사하고, 자신의 현재의 형편을 알리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권면하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感謝)할 것을 격려합니다.

2.    기록목적 (Purposes of the Writing)
그리-스 중부 마케도니아의 빌립보 지방에 위치한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 의해서 유럽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사도행전 16:11-15). 바울이 후에 고린도 교인들중 일부와 문제가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빌립보 교인들과의 관계는 시종일관 긴밀하고 행복한 관계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그에게 보내는 선물을 갖고 왔다가(4:18) 돌아가는(2:25-29) 에바브로디도의 편에 그의 최근의 형편을 빌립보의 형제·자매들에게 알리고, 선물에 감사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필요한 일에 교훈하고자 했습니다. 편지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옥중에서 처형의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들과의 교제로 인한 바울의 무한한 기쁨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충만(充滿)한 행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3.    사도 바울의 생애 (Life of Apostle Paul)
출생: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4-5년경에 닷소(Tarsus)에서 태어났습니다.
개종:    그는 유대교에 속한 바리새인으로서 사울(=요청했다)이란 이름의 사람이었는데, 주후 33년경에 다메섹(Damascus) 도상에서 빛으로 그에게 임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전도여행:    그리스도인이 된 후, 그는 세차례(혹은 네차례)의 전도여행과 그밖에 크고 작은 방문(訪問)을 통하여 소아시아와 유럽에 살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1차 전도여행은 47-48년에, 2차 전도여행은 49-52년에, 그리고 3차 전도여행은 52-56년에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의 세차례의 전도여행 기간중에(주후 47-56년) 쓴 서신들(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고린도전·후서, 로마서)을 전도서신(혹은 여행서신)이라고 합니다.
기타행적:    바울은 3차 전도여행 후에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이송되고, 여기에서 가택연금 상태로 있게 됩니다(주후 56-62).  이 기간 중에 쓰여진 서신들(빌레몬서, 골로새서, 에베소서, 빌립보서)을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주후 66-68년 사이에 바울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풀려나와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고 그의 복음사역을 재개합니다(이것을 4차 전도여행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기간중 바울이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내는 개인편지 형식으로 교회를 권면한 편지들(디모데전서, 디도서)과 2차 체포후 옥에서 쓴 디모데후서를 목회서신이라고 합니다.
최후:    바울은 주후 66-67년경에 다시 로마에서 체포되고, 이번에는 가택연금이 아니라 지하감옥(dungeon)에 갇힙니다. 그리고 67-68년경에 (전승에 의하면) 로마의 한 콜로세움(Colosseum)에서 처형됩니다.

4.    개요 (Outline)
1장:    복음을 위해 갇힌 자된 바울
        1:1-2   인사/1:3-11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감사/1:12-30   바울의 현재의 형편과 소신

2장: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2:1-18   그리스도의 겸손과 본/2:19-30   충성된 동역자: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3장: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지라
        3:1-11   이단에 대한 권고/3:12-16   푯대를 향하는 삶/3:17-4:1   믿는 사람의 시민권

4장:    그리스도 안에 서서 항상 기뻐하라
        4:2-9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함/4:10-23   끝맺음



빌립보서 1:1-30    복음을 위해 갇힌 자된 바울

1. 개요
    1:1-2    서두(序頭)
    1:3-11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감사
    1:12-26    바울의 현재의 형편과 소신
    1:27-30    복음에 합당한 생활


2. 전개
바울은 그의 2차 전도여행 때 유럽에 최초로 세운 빌립보 교회에 편지할 때에 문안의 인사말로 시작합니다. 그의 다른 서신들과 비교하여 특이한 것은 이 서두에 자신의 사도권을 언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빌립보 교인들에게는 바울의 사도권이 아무런 이의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입니다(1-2절).

이어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과의 교제에 대한 그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합니다(3-8절).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네 가지 제목으로 기도합니다. 곧, 그들의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해달라고, 그들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게 해달라고,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게 해달라고, 또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9-11절).

다음에, 바울은 자신의 현재의 형편과 소신을 말합니다. 그가 현재의 매임을 괴로워하지 않는 것은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에 오히려 진보(進步)가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는데 어떤 사람은 좋은 뜻으로 증거하고, 어떤 사람은 다툼으로 증거하는데, 어떠한 모양으로 복음이 증거되든지 바울은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이니까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모양은 마치 죽는 것과 살아있는 것 -- 두 가지에 끼어있는 상태인데, 그가 더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기 위해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선호를 뒤로 하고 살아서 육신에 거하는 것도 좋은 것은 이로써 빌립보 교인들과 믿음의 교제를 더 나눌 수 있어 그들에게 유익이 되고 또 복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傳播)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12-26절).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항상 믿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늘 잘 감당하고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여야 할 것인데,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주신 은혜요 구원의 빙거(憑據)입니다(27-30절).


3. 본문 연구
5절: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6절:  “그리스도 예수의 날”이란 어느 때입니까?

8절: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σπλάγχνοις)으로”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12절: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될 줄을”에서 바울이 당한 일이 어떻게 복음의 진보가 되었습니까?

17절: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에서 저들은 어떻게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입니까?

21절: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를 풀어서 설명하십시오.

27절: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어떤 것입니까?
                                                   

빌립보서 2:1-30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1. 개요
    2:1-18    그리스도의 겸손(謙遜)과 본(本)
        2:1-4    겸손의 권유
        2:5-11    그리스도의 본
        2:12-18    바울의 겸손
    2:19-30    충성된 동역자: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2:19-24    디모데
        2:25-30    에바브로디도


2. 전개
1장 끝부분(1:27-30)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권면한 바울은 2장에서 그 실천적 측면으로 권면, 위로, 교제, 긍휼과 자비를 행함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 곧, 겸손의 마음으로 할 것을 권면합니다(1-4절).

겸손의 모범이신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하면,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로 인간의 몸으로 오시고,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충성할 것의 본을 보여쥬시되 죽기까지 충성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시고 그에게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로써, 그뿐 아니라, 그와 같이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를 높이시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5-11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예로 빌립보 교인들을 권면할 때 하나님 앞에 항상 복종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바울이 그 자신을 빌립보 교인들의 제물과 봉사 위에 관제(灌祭, libation)로 드릴지라도, 곧 자신을 ‘피 제사’의 희생으로 드릴지라도 이를 보게 됨을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12-18절).

이어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동역자,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두 사람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천거(薦擧)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옥에 갇혀있어 (혹은 가택연금) 빌립보 교인들에게 가볼 수 없게되고, 이로 인하여서 빌립보 교인들이 혹 믿음의 시험을 받고 흔들림이 있을까 염려하여 사람들에게 그를 대신하여 빌립보 교회에 가줄 것을 당부하지만 다들 핑계를 대고 이를 승낙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만이 바울의 부탁을 흔쾌(欣快)히 받아들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에 빚진 자로서 바울을 위하여 겸손히 봉사함에 자식이 아비에게 하듯 하며 이로써 그 자신을 연단하는 사람입니다(19-24절).

에바브로디도 또한 바울과 함께 그리스도의 군사된 자로서 바울을 충성되고 겸손히 돕는 자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몸을 돌아보지 않고 주님의 일에 힘쓰다가 병이 심하여 죽음에까지 이르렀지만 바울의 도고의 기도로 나음을 얻었습니다. 바울이 그를 빌립보 교인들에게 급히 보내고자 함은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교인들과 긴밀한 교제가 있던 사람이고(4:18) 그의 완쾌함과 그의 편에 보내지는 바울의 소식으로 그들을 안위하기 위함입니다(25-30절).


3. 본문 연구
3절: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12절: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함에서 “두렵고 떨림으로”는 어떤 모습입니까?

16절: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에서 ‘바울의 자랑할 것’은 무엇입니까?

17절:  “내가 나를 관제(灌祭)로 드릴지라도”에서 ‘관제로 드린다’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21절: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은 구하지 아니하되”라고 함은 무엇입니까?

29절: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에서 ‘이와 같은 자들’이란 어떤 자들입니까?

                                                   

빌립보서 3:1-4:1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지라
1. 개요
    3:1-11   이단(유대주의자)에 대한 경고(警告)
    3:12-16    푯대를 향하는 삶
    3:17-4:1    믿는 사람의 시민권


2. 전개
1장에서 자신의 현재의 형편을 알리고 자신의 심경--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위하고자 함--을 피력하고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자기와 같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당부하고, 2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겸손히 자신을 비우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라고 권면한 바울은, 3장에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유대주의자, 율법주의자들이 이방의 그리스도인들인 빌립보 교인들에게 육체적 할례를 강요(强要)하고, 구원의 요건으로서 율법(律法)대로 살아야 할 것을 말하였지만, 바울은 이러한 것이 부질없음을 역설합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육체의 모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마음의 모양으로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3절).

바울도 육체의 모양대로 하자면(참고: 고린도후서 11장) 남에게 별로 뒤떨어짐이 없습니다. 팔일 만에 할례받은 자요, 베냐민 지파요, 바리새인이요, 또 유대주의자들 중에서도 열심으로 그리스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자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열심을 내던 자였습니다.(4-6절) 그러나, 그리스도를 안 뒤 그의 삶의 가치관은 변하고 그의 육체를 따라 자랑하던 지식도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유익하게 하는 일이요, 그가 가장 고상하게 여기는 지식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이를 위하여는 그가 이제까지 추구하고 중시 여기던 그 어떤 것도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이는 전에는 자기의 열심으로,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안 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여김을 받고, 또 그가 부활하신 것 같이 부활에 이를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7-11절).

해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더해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고자 합니다. 바울은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자신의 삶을 빌립보 교인들이 본받기를 원합니다(12-16절).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하는 삶을 살지 아니하고 자신의 배만 위하고, 하늘의 것을 사모하는 삶을 사는 대신에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삶을 사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17-19절).

우리가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고 하늘의 것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은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주 안에 바로 선 생활을 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날에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3:20-4:1).


3. 본문 연구
7절: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에서 ‘바울에게 유익하던 것’은 무엇입니까?

8절: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라 함은 무엇입니까?

9절: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란 의미는 무엇입니까?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이룸을 말합니까?

15절: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에서 어떻게 생각한다는 뜻입니까?
                                                   

빌립보서 4:2-23     그리스도 안에 서서 항상 기뻐하라

1. 개요
    4:2-9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함
    4:10-13    자족함의 비결
    4:14-20    빌립보 교회의 과실(果實)
    4:21-23    문안과 끝맺음


2. 전개
이제 빌립보서를 맺고자 함에 있어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참고: 빌립보서 1:18, 2:18, 3:1)고 권합니다. 그 자신이 갇힌 바 된 상태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였던 바울은 그들도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는 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참 위로와 평강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서서 기뻐하고 감사할 때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것을 생각하고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1-9절).

믿는 사람들의 자족하는 마음은 세상의 부(富) 가운데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부유할 때나 빈궁할 때나 우리를 부요케 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얻어집니다.(참고: 고후 8:9)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에게 모든 일이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가능(可能)합니다. 이렇게 믿고 생활하는 우리가 부요(富饒)한 자입니다(10-13절).

바울은 편지를 끝내기에 앞서서 그를 여러 형편 가운데 도운 빌립보 교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물질의 많음으로 인한 감사가 아니라,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열매맺음을 기뻐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14-20절).

이어 바울은 마지막 문안과 축도로 편지를 맺습니다(21-23절).
빌립보서는 바울의 서신 중에서도 특별히 훈훈한 성도의 교제와 감사와 기쁨을 느끼게 하는 뒷맛이 좋은  서신입니다.


3. 본문 연구
2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에서 ‘같은 마음’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5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는 것과 “주께서 가까우시리라”는 어떻게 연결됩니까?

9절: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에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는 무엇입니까?

11절: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의 뜻은 무엇입니까?

13절: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에서 ‘모든 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일입니까?

14절: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 하였도다”에서 ‘바울의 괴로움’은 무엇입니까?

17절: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함은 무엇입니까?

Sunday, September 8, 2013

고린도후서 성경공부

                                                           고린도후서 성경공부


고린도후서 1:1-2:11    사도 바울과 고린도 교회
1. 개요
    1:1-2    서두 인사말
    1:3-11    환난 가운데 바울의 감사
    1:12-2:4    바울의 고린도 여행 계획과 그 변경
    2:5-11    반대자들에 대한 용서


2. 전개
1장 1-2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바울의 사도됨은 개인의 욕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고린도 교인들뿐아니라 아가야 지방에 있는 다른 교회들의 성도들에게도 읽혀지는 회람형식의 편지입니다(1절).

1장 3-11절의 시작인 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환난 가운데 위로하시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참고 4-7절). 고난 가운데도 감사함은 고난 중에 소망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 당하셨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바울은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극한 고난 속에서도 위로를 얻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바울은 그의 고린도 사역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장애요인이 없어야 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의 앞에 장애물이 있음을 봅니다. 바울은 솔직하고 진지한 태도로 그 장애물을 직면합니다. 주 장애요인은 그의 고린도 여행계획의 취소와 변경으로 인한 고린도 교인 중의 바울에 대한 불신입니다. 물론 이 불신이 발생한 것은 그의 반대 세력들의 선동이요 농간으로 야기된 것이지만, 그는 진지하게 이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바울의 사도권에 관해서, 그의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리에 대해서 공격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중상할 때, 바울이 자기가 말한 바 약속(=고린도 지방 여행)도 지키지 못하고 변경하는 변덕스러운 사람이므로 그의 교리도 믿을 바 못된다고 공격합니다(1장 15-17절).
1:23-2:4에서 바울은 여행계획을 왜 변경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지방을 방문한 적이 두 번 있습니다(12:14). 처음은 제2 차 전도여행 중이었고(행전 18:1-18), 두 번째는 고린도전서를 보낸 이후 고린도 교회내의 거짓 교사들로 인하여 야기된 문제들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인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상처만 남기고 돌아왔습니다. 이에 세 번째 방문의 기회를 뒤로 미룬 것입니다.

2장 5-11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내에서 문제를 이르킨 사람들을 어떻게 징계하여야 할 것인지 쓰고 있습니다. 교회내에서 문제를 일으킨 자는 벌받는 것이 마땅한데(2:6) 그 벌은 개인적인 감정으로 다루어져서는 안되고 회개와 연단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그 사람이 회개하였을 때에는 용서로 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3. 본문 연구
1장 5절: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의 의미는?

8절:  바울이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란 무엇입니까?(참고: 행전 19:23)

2장 3절:  “내가 이같이 쓴 것은 ...”은 무엇을 말합니까?(참고: 2:4,9, 7:12)

6절: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에서 우리는 교회 내에서 잘못을 범한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10절: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참고: 마 5:12, 14; 막 11:25; 눅 17:4)

11절: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함은 무슨 뜻입니까?(참고: 엡 4:26, 27)
                                                   


고린도후서 2:12-3:18     바울 사역의 성격
1. 개요
    2:12-17    바울 사역의 확신: 그리스도의 향기
    3:1-3    바울 사역의 천거: 그리스도의 편지
    3:4-18    새 언약의 영광


2. 전개
바울이 드로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 디도를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불편한 심령으로 마게도니아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어려운 형편으로 우리는 염려하고 근심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입니다. 이로써 바울은 위로를 얻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각 처에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냄새를 나타내게 하신다고 합니다(2:14). 곧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의 향과 같은 ‘그리스도의 향기’(2:15)인데, 이 냄새를 맡고도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이 냄새에 이끌리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입니다(2:16).

지금도 그러하지만, 초대교회 당시에도 어떤 일을 감당할 때 천거서(=letter of recommendation)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나 고린도 교인 어느 누구도 먹으로 쓴 천거서가 필요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들에게 잉크로 쓴 천거서보다 더 중요한 천거서가 있는데, 그것은 여느 사람이 써 준 천거서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직접 써 주신 편지(=천거서)요, 세상의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잉크로 쓴 것이요, 눈에 보이는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마음판에 쓴 것입니다(3:1-3).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언약의 일군들입니다. 구약의 일군들은 의문(儀文), 곧 없어질 영광의 직분을 감당하던 사람이었음에 비해, 우리는 영원히 있을 영광의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에 반사된 하나님의 간접적인 영광도 바라보지 못하매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덮어 가리워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봄과 같이, 그들은 수건으로 가리워진 구약을 읽으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바로 깨닫지 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약을 덮고있는 수건이 벗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이신 그리스도와 연결시키지 않고는 구약을 바로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밝히 드러나고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습니다(3:6-18).


3. 본문 연구
2장
14절: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란 무엇입니까?

15절:  “그리스도의 향기”를 설명하여 보십시오.

16절: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니”란 뜻은?

3장
1절에서 바울이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절을 풀어서 해석하십시오.

6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18절: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는 무엇을 말합니까?
                                                   


고린도후서 4:1-18   사역의 특성과 상황
1. 개요
    4:1-6    그리스도 복음의 빛
    4:7-18    사역의 상황
        4:7-12    핍박 속에서도 버린 바 되지 않음
        4:13-15    다시 사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이 보장됨
        4:16-18    날로 새로와짐


2. 전개
2:18-3:18에서 바울은 모든 형편 가운데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 다음,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향기요, 그리스도의 편지요, 새 언약의 일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증거하는 복음은 인간에 관한 것이나, 인간의 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임입니다(1-6절).

바울은 우리 마음 가운데 비추이는 이 복음을 ‘보배’라고 하였습니다. 곧, 질그릇과도 같이 가치없는 우리의 몸에 그리스도 복음의 보배가 담겨져 있습니다(참고: 삿 7:15-23). 이로써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능력이 큰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옴을 알고, 어떠한 핍박 가운데서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함을 알고 오히려 예수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가 감당함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가 갖고자 함입니다(7-12절). (참고: 로마서 6장 세례의 의미)

예수님의 죽으심과 생명을 우리 가운데 나타내고자 함은 우리가 이를 믿는 믿음이 있어 말함이고,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고 소망으로 우리의 부활할 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13-15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본받아 이와 같은 믿음과 소망을 가짐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고, 따라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돌리는 생활을 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에게 닥치는 환난과 몸의 후패함 속에서도 낙심할 것이 없는 것은 지금 당하는 연약함과 환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원한 영광을 이루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참고: 로마서 8:18-30). 우리 믿는 사람들이 바라보아야 할 것은 지금은 보이나 없어질 이 세상의 일이 아니요, 지금은 안보이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일 것입니다(16-18절).


3. 본문 연구
4절: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함을 쉽게 설명하여 보십시오.

6절: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에서 보배와 질그릇은 무엇에 대한 은유(metaphor)입니까?

10절: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뜻입니까?

12절: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16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참고: 엡 4:15)

17절: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어떻게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룰 수”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5:1-21       사역의 중한 책임

1. 개요
    5:1-10    부활의 확신
        5:1-5    믿는 사람에게 임할 하늘의 영원한 집
        5:6-10    그리스도의 심판
    5:11-21    그리스도의 사신(ambassador)
        5:11-15    사신의 동기(動機)
        5:16-21    사신의 증거(證據)


2. 전개
바울은 4:16-18에서 믿는 사람의 육신(=겉사람 혹은 바깥사람)은 후패하여져도 영혼(=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며, 잠시 세상의 경한 환난은 영원한 영광을 이루기 위함이고,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나 없어질 이 세상의 것이 아니요 현재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영원한 하늘나라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 믿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소망과 삶은 잠시 머물다가 가는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인간의 이별의 슬픔은 있을지언정). 이는 그 때에 우리는 하늘의 영원한 집의 처소로 덧입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탄식함으로 구함은 오직 하늘의 처소로 덧입고자 함인데 이 일을 이루시고 성령으로 알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1-5절).

우리가 주님이 계신 저 하늘나라를 간절히 원하며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행함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리할 때, 그리스도의 심판 날에 우리의 행위에 따라 상급이 주어질 것입니다(6-10절).

이러한 일을 하는 나, 바울을 혹 미쳤다고 하는 사람이 여러분 가운데 있는데 내가 미친 것은 하나님께 미친 것이고, 여러분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데는 온전합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함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고 그로 인하여 우리가 살았을진데,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한 사신이 된 동기입니다(11-15절).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가 이제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 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인데, 이 때 이전에 우리의 모든 죄된 것들은 사라지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이 태어난 새 생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은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되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시기 위한 화목제물이 되심인데, 이 때 우리는 화목의 주체이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16-21절).


3. 본문 연구
1절:  “땅에 있는 장막 집”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각각 무엇이며 어떤 의미에서 비교가 가능합니까?

2절:  “우리 처소로 덧입는다”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3절:  “벗은 자들로 발견되다”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벗은 자들”이란 누구입니까?

6절: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란 뜻은 무엇입니까?

10절:  “그리스도의 심판대”란 무엇을 말합니까?

16절: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18절:  바울이 받았다고 하는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란 무엇입니까? 왜 이것이 화목하게 하는 직책입니까?

21절: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란 말을 풀어서 해석하여 보십시오.



고린도후서 6:1-7:1   사신(使臣)의 표적과 교제

1. 개요
    6:1-10    사신의 표적(사역의 실행)
    6:11-7:1    사신의 교제(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


2. 전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와 화목케 하시기 위하여 은혜 베푸실 계획을 갖고 계시나, 사람들 가운데는 이를 헛되이 가볍게 여기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1-2절).

이를 위해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파하는 사신으로서 여러 가지 수고를 감당하고 사역을 실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신이 된 우리가 감당하여야 할 여러 가지 흔적들을 3절이하에서 열거하고 있는데, 이는 곧,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고, 모든 일에 많이 견디고,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4-5절)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6-7절), 또 우리가 당하는 여러 가지 이중적인 경험들입니다(8-10절).
요약하면, 사신의 흔적은 환난의 어려움을 잘 견디고,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지니는 것과, 우리의 당하는 모든 욕됨과 악함과 무명과 죽는 것과 근심과 가난함과 없음에서 영광과 아름다움과 유명과 살음과 기쁨과 부요함과 가진 자로 발견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이 그들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같이 그들도 마음을 넓히고 열린 마음으로 바울의 권면하는 말을 들으라고 당부합니다(11-13절).

믿는 사람들이 교제함에 믿지 않는 자와 같이 어울리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의와 불법이 같이 할 수 없고, 빛과 어둠이 사귈 수 없고, 그리스도와 벨리알(=사단)이 조화할 수 없고, 하나님의 성전과 우산의 전이 일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14-16절). 믿는 사람들의 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인고로 세상의 우상을 좇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습니다. 이리함으로 우리는 육과 영의 더러운 것을 우리에게서 몰아내고 거룩함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7:1).


3. 본문 연구
1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고 함은 무엇을 말함입니까?

3절: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에서 ‘이 직책’은 무엇이며, 이를 위해서 바울이 어떻게 하였다는 말씀입니까?

8-10절: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함은 무엇입니까?

12절: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라”의 의미는?

14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애를 같이 하지 말라”는 무슨 뜻입니까? ‘믿지 않는 자를 도무지 가까이 하지 말라’는 뜻입니까?

16절: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7:2-16   바울의 기쁨

1. 개요
    7:2-11    고린도 교인들의 회개로 인한 바울의 기쁨
    7:12-16    먼저 쓴 편지의 목적


2. 전개
7장으로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제1부 ‘그리스도를 위한 사역’ 편을 마감합니다. 바울은 1:3-11에서 환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의 감사와 위로에 대해서 말하였는데 7:2-11에서 다시 환난 가운데서 넘치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감사와 위로와 기쁨은 평안 가운데뿐아니라 오히려 환난과 곤고 가운데 더욱 넘칠 수 있는 역설적(逆說的)인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4절).

바울은 본문에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고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으로 대해 왔고 또 동일한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고있는 그의 진심을 그들이 알아주기를 원하는 바램입니다. 현실에서는 아직도 고린도 교인들이 막힌 마음이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이 아니지만, 바울은 이와같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고 낙관적인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고린도 교회를 방문했던 바울은 문제의 해결은커녕 문제가 더 심각하여져서 낙담을 했었고(2:1-4), 또 디도와도 소식이 끊어져서 마음이 편치 못하였었는데(2:13), 이제 다시 디도를 만나는 반가움을 누렸고 그가 전해준 바에 의하면 고린도 교인들이 통회(痛悔)함과 열심(熱心)을 내고 있다고 하여(7절) 바울의 기쁨은 넘쳐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두 번째로 방문하고 나서 바울은 환난과 애통하는 마음으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고서(2:4) 그들이 회개치 않을 것같아  편지를 보낸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디도 편에 전해 들은 소식--곧, 고린도 교인들이 통회하는 마음으로 열심을 내려고 한다는--은 바울을 넘치는 기쁨에 처하게 합니다. 바울의 기쁨은 고린도 교인들을 근심하게 한 자신의 편지가 잘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함이 있기 때문입니다(9절).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근심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근심으로 이로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 구원에 이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향한 근심인데 이는 우리로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10절).

이에 바울은 자신이 먼저 보낸 편지의 의도를 설명합니다. 곧, 그 편지로서 불의 행한자나 불의 당한 자를 나무라거나 징계하고자 함이 아니요 그들이 하나님 앞에 간절함으로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13절). 16절에서 바울은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고 함으로서 그의 낙관적인 마음을 표현합니다. 이는 그가 세 번째로 고린도 교인들을 방문할 때 모든 일이 원만하게 잘 이루어지고(8-9장에서 말하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헌금 걷는 일을 포함해서) 또 그들의 믿음의 성장을 보고자 함입니다. 바울이 말함은 고린도 교회의 모든 문제가 다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소원(疏遠)해졌던 고린도 교인들과의 관계가 해소되어 그가 세 번째로 그들에게 나아갈 때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다른 문제들도 풀릴 것이라는 희망을 보이는 것입니다.


3. 본문 연구
4절:  바울이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침”은 무슨 까닭입니까?

8절: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는 무슨 뜻입니까?

10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무엇이고, “세상 근심”은 무엇입니까?

11절의 뜻은 무엇입니까?

16절: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고린도후서 8:1-24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위한 모금 (1)
1. 개요
    8:1-5    마게도냐 교회들의 모범
    8:6-8    고린도 교인들을 위한 자극
    8:9    예수 그리스도의 본
    8:10-15    모금을 위한 바울의 권면
    8:16-24    모금자에 대한 바울의 추천


2. 전개
8장과 9장을 통하여 바울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고린도 교인들이 모금운동에 참여하여야 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면하고 호소합니다.

8장을 시작함에 있어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들(빌립보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 등)의 예를 듭니다. 바울은 그들의 덕(=선물)을 칭찬하고, 그들의 풍성한 선물(2-5절)이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말합니다(1절). 마게도냐 교회들의 풍성한 연보는 매우 귀한 것인데(2절) 이는 그들이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극한 가난 가운데서’ 그들 자신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풍성한 연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를 따른 것으로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드린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로 하여금 고인도 지방에서의 모금을 마감하게 하기 위하여 그를 다시 고린도 교회로 보냅니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의 모금운동에 자극을 주기 위하여 그들의 은사를 열거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강요하려고 하지 않고, 그들의 순전한 마음에 호소하고자 합니다(8절).

바울의 호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로서 그 절정에 이릅니다(9절). 예수 그리스도는 원래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 부요하신 분이셨는데, 우리 인간들을 그 안에서 부요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모든 권한을 포기하시고 가난한 자가 되셨습니다. 바울이 이를 말함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예를 따라 가난한 형제, 자매를 위하여 우리 자신들을 드려야 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이 말하고자 함은 없는 것을 드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할 마음이 있는 대로 드리라고 함이요, 다른 사람의 평안을 위해서 고통받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유여(裕餘)한 것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평균의 삶(=경제)의 원리를 배우라는 것입니다(10-15절).

16-24절에서 바울은 디도를 대표로 하는 세 명의 모금사절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이와같이 적은 수의 사절단을 파견함은 모금을 아무런 불미스런 일 없이 마감짓고자 함입니다. 공적인 모금을 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로서 신앙의 본을 보이는 사람이 감당함이 바람직하고, 이에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을 천거(薦擧)하여 보내며 그들에 대한 추천서도 아울러 보내는 것입니다.


3. 본문 연구
1절: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라고 함은 무엇입니까?
8장에서 바울은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를 어떤 단어들로 표현하고 있습니까?

5절:  “저희가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고”는 마게도냐 교인들이 어떻게 하였다는 것입니까?

9절: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함”이 어떻게 우리를 부요케 합니까?

13절:  ‘평균의 경제원리’를 설명하여 보십시오.
                                                   


고린도후서 9:1-15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위한 모금 (2)

1. 개요
    9:1-5     모금의 중요성
    9:6-11전     풍성한 연보
    9:11후-15     하나님께 대한 감사


2. 전개
모금을 정한 때까지 끝마침이 참으로 중요한 일이기에 바울은 8장에 이어 9장에서도 고린도 교인들의 ‘열심’에 호소합니다(2절). 바울은 그와 마게도냐인들이 고린도를 방문하기에 앞서 모금사절단을 파견하는데 이는 그와 고린도 교인들이 혹 예비되지 않았음으로 부끄러움을 당치 않고자 함입니다(4절).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원함은 그들의 ‘(모금)하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readiness)'(2절)가 ‘모금 완료의 준비(=readiness)'(4절)로서 나타남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 위에, 모금한 연보를 갖고 예루살렘의 가난한 동포들을 찾아가는 그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지 않게 함입니다. 그러나,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풍성한 연보를 드릴 것을 권면합니다.

6-11절 전반에서 바울은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잠언 11:24, 22:8-9; 시편 112:9; 이사야 55:10; 호세아 10:12) 풍성하고 너그러운 연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6, 7, 9, 10절). 6절은 잠언 11:24와 22:9을 결합한 것이고, 7절은 잠언 22:8이고, 9절은 시편 112:9(Septuagint[=헬라어역 구약] 시편 111:9)이고(참조: 시편 111:3. 4. 9), 10절은 이사야서 55:10과 호세아서 10:12의 결합입니다. 바울은 이사야서를 인용함으로서 모금한 연보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 마지막 때에 대한 구약의 예언의 성취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어 바울은 너그럽고 풍성한 연보를 드리는 사람들은 이와같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으로 예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풍성한 연보를 함은 중요한 일인데, 이는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로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할뿐아니라 이 연보를 통하여 구제받는 예루살렘의 성도들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풍성한 연보를 함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복종하는 길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13절). 더 나아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과 함께 믿지 않는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의 이와같이 너그럽고 풍성한 연보를 보면 그들도 변화되어서 그리스도께로 돌아올 것을 바울은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에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선물로 공급해주시고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이루려고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림으로서 모금에 관한 그의 권면을 마칩니다.


3. 본문 연구
2절: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고 했는데 고린도 교인들이 원함이 무엇입니까? “1년전부터 예비”한 것은?

3절: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와 “내 말한 것같이 준비함이 헛되지 않고”는 각각 무슨 뜻입니까?

4절: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6절: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뜻을 설명해 보십시오.

12절:  “이 봉사의 직무”는 무엇입니까?

13절:  “연보를 하는 것”과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일”이 어떻게 연관이 있습니까?

14절:  “저희”는 누구이며,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 사모하느니라”는 무슨 뜻입니까?

15절: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는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10:1-18   바울의 사도권 변호

1. 개요
    10:1-6    바울 사역의 병기(兵器)
    10:7-11    바울 사역의 권세(權勢)
    10:12-18    바울 사역의 한계(限界)


2. 전개
10-13장은 고린도후서 전체 구성에 있어서 세 번째 부분으로서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변론’입니다. 바울의 적대자들(거짓교사, 유대주의자)은 바울이 떨어져 편지로는 담대한척 하면서 막상 대면하면 자신의 의사도 제대로 잘 표현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처신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대면할 때 준엄하게 꾸짖는 대신에 부드러움과 관용으로 대한 것은 그리스도의 예를 따른 것이라고 변론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바울도 육체의 연약함으로 그 소욕대로 행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바울은 자신의 처신함이 인간의 생각과 소욕대로 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하여왔음을 말합니다(1-6절).

바울이 편지로 담대하게 고린도 교인들을 질책하고 권면함도 그들을 겁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요 또 그들을 파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그들을 바로 세우고자 함입니다. 그가 몸으로 그들을 대할 때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음은 사실일지라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증거함에 세상의 지식과 논리로 혹은 언변으로 하려 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의 도만을 직설적으로 증거하여 복음의 진리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즉, 편지로 그리고 말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은 별다른 두 사람이 아니라, 두 개의 다른 방법으로 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동일한 사람 바울이라는 것입니다(7-11절).

바울에게 허락되어진 그리스도 복음사역의 한계를 따라 바울은 고린도 지방에 교회를 개척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복음을 증거함에도 바울은, 거짓사도들과는 달리, 남의 공을 가로채거나 남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하지않고 그에게 주어진 한계 안에서 하고자 합니다(참고: 롬 15:18-21). 거짓사도들은 자신의 척량자로써 자신을 칭찬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척량자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칭찬을 소망합니다. 거짓사도들은 주 밖에서 그들의 세상 것을 자랑하지만, 바울은 주 안에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을 자랑합니다(12-18절).


3. 본문 연구
1절: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절:  “우리를 육체대로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을 대하여”라 함은 어떤 것을 말합니까?

3절: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는 무슨 뜻입니까?

4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함은?

8절: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라는 뜻을 설명해 보십시오.

12절: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는 무슨 의미입니까?

14절: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는 무슨 뜻입니까?

16절: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地境)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의 뜻은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11:1-33   거짓사도에 대한 경계와 바울의 고난과 자랑

1. 개요
    11:1-15    거짓사도에 대한 경계
    11:16-33    바울의 고난과 자랑


2. 전개
11장은 고린도후서 전체에 있어서 가장 개인적(個人的)이며 감정적(感情的)인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라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거짓사도의 진상을 밝히고 자신이 전에 그들에게 증거한 복음이 진실하고 우월한 것임을 증며하고자 함입니다.

거짓교사들의 중상과 모략으로 바울은 어리석은 말로 그 자신에 대하여 말하자면, 그들보다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사도된 바울의 책무는 교회와 교인들을 정결한 처녀로 잘 교양하고 보존하여 신랑되신 예수님께 소개하는 중매장이와도 같기 때문에 잘못된 거짓교사의 미혹으로 다른 예수,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틈타는 것을 방치(放置)할 수 없습니다(1-6절).

거짓교사들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요(料: 사례금)를 받지 않은 것도 모함합니다. 그가 만일 참사도라면 교회에서 사례를 받는 것이 당연한데 그렇지 않은 것은 그가 사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비난합니다. 바울이 마게도냐 교인들로부터는 경제적 지원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그들의 돈을 탈취한 것이라고 중상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군이 교회로부터 사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이 보장해주신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바울이 고린도 교회로부터 요(料)를 받지 않은 것은 그가 사도가 아니어서가 아니요, 또 이를 불합리한 것으로 여겨서도 아니고,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고 함’입니다(고전 9:7-12). 또 마게도냐 교인들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받은 것은 그들이 자원하여 바울을 도운 것이지 구걸(求乞)한 적도 없고 강탈(强奪)한 적도 없습니다(참고: 빌립보서 4:16; 고후 8:1-5). 또 바울은 거짓사도들에게 그들의 정당성을 입증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사례를 받아도 될 것이지만 받지 않고 자급전도(tent-making)를 계속하겠다고 밝힙니다(7-12절).

그들이 자기가 거짓사도라고 밝히지 않는 것은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현재는 의의 일군을 가장(假裝)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그들의 거짓행위가 드러날 것입니다(13-15절).

아마도 거짓사도들은 그들의 인간적인 육체적 조건들을 내세워 사도를 자칭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사도가 아니라고 비난하고 중상한 바울은 이에 맞서서, 자신이 그들이 자랑하는 육체적 조건에서 그들보다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인간의 자랑으로 변론합니다. 이는 바울이 원하던 바는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른 복음에서 구분(區分)하고 비호(庇護)하고자 함입니다(16-21절).

바울의 인간조건은 거짓사도들에 비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고, 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한 고난은 어떤 사도나 다른 일군보다 더 큰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 위에 바울의 더욱 극심한 고난과 염려는 혹 그리스도의 교회가 거짓사도들과 거짓 영과 변질된 복음으로 인하여 잘못되지나 않을까 하는 사랑의 염려입니다(22-29절).

이제까지 그리스도가 아닌 것짓사도의 예대로 육체를 따라 부득불(참고: 고후 12:11) 자랑한 바울은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랑으로 돌아옵니다. 곧, 그의 약한 것들을 자랑함으로 그리스도의 강하고 능력있음을 드러나게 함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자랑하여야 할 것입니다(30-33절).


3. 본문 연구
4절:  “다른 예수,”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은 어떤 것들입니까?

7절: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고 물음은 무슨 까닭입니까?

13-15절:  사단과 거짓사도들이 하는 일은 어떤 점에서 유사(類似)하고 어떻게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12:1-21   바울의 환상과 계시 및 고린도 교회를 위한 염려

1. 개요
    12:1-6    바울의 환상과 계시
    12;7-10    바울의 가시
    12;11-13    사도의 표시
    12:14-21    바울의 고린도 방문계획과 그들을 위한 염려(念慮)


2. 전개
11장에서 어리석은 자랑을 통해서라도 고린도 교인들을 거짓사도를 좇는 위험에서부터 구해내려고 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이 14년 전에 본 환상을 소개함으로 12장을 시작합니다. 이 어떤 ‘한 사람’은 다름아닌 바울 자신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와같은 영적인 자랑거리도 자신의 자랑이 될 것같아 14년동안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었고 지금 언급함에도 그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이러한 영적 경험을 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속해 있을 때 이와같은 신령한 것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6절).

바울은 그가 체험한 셋째 하늘에서의 일을 자세히 설명하는 대신에 그의 몸에 있는 가시에 대해, 그의 약함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함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약함을 자랑하는 것이요, 우리의 약함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함과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7-10절).

바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진정한 표는 그의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자랑하여 행하는 그의 오래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11-13절).

이어서 바울은 그의 세 번째 방문계획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알립니다. 이 기회를 빌어 바울은 그의 고린도 지방에서의 사역과 편지 보내는 것과,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모금의 일로 디도와 다른 형제 둘을 보낸 모든 일들이 그 자신의 이(利)를 위하여 함이 아니요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합니다. 편지를 쓰고있는 지금도 하는 염려는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여 그가 고린도를 방문할 때 그의 원치 않는 바 그들 가운데 있는 사단의 역사를 보게 될까 함입니다(14-21절).


3. 본문 연구
1절:  “무익하나마”...바울은 왜 그가 하는 ‘주의 환상과 계시에 대한 자랑’을 무익하다고 했습니까?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2절: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왜 자신의 경험이라고 하지 않고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5절: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7절:  “내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에서 그가 말하는 ‘육체의 가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생각됩니까?

9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무슨 뜻입니까?
10절에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라”고 한 것과 비교해 보세요. 바울이 세 번 주께 기도한 것은 응답받았습니까?

13절: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에서 ‘공평치 못한 것’이란 무엇입니까?

20절: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고린도후서 13:1-13   고린도 교회에 대한 경고와 축복
1. 개요
    13:1-4    바울의 방문계획과 경고
    13:5-10    바울의 간구와 권면
    13:11-13    축도


2. 전개
12:14 이하에서 바울은 조만간 있을 그의 고린도 방문계획을 알립니다. 그가 세 번째의 고린도 방문을 미루어온 것은(고후 1:23-24) 바울 자신의 개인사정이라기 보다는 아마도 그의 ‘괴로왔던’ 2차 방문 이후에(참고: 고후 2:1-4)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의 사역과 자신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지금 가고자 하나 아직도 그들이 불의한 데서 떠나지 않아 2차 방문 때와 같이 눈물과 근심의 방문이 될까 염려되는 마음입니다(12:20). 그러므로,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합니다: “내가 다시 가면 (그때까지 회개치 않은 자들을) 용서하지 아니하리라”(13:2). 이는 그들을 징계하고자 하는 바울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자 함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로 약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 같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하고자 함입니다(1-4절).

바울은 이제 다시 기회를 얻어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돌아보라고 권면합니다. 이렇게 하라고 함은 바울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고린도 교인들을 위함이니, 곧 그들이 믿음에 바로 서고,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강하고 온전한 자가 되게 하고자 함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사도권을 따라 징계하지 아니하고자 함입니다(5-10절).

이제 바울은 그의 편지를 끝맺습니다. “기뻐하라”로 번역된 헬라어 ‘카이로’(χαίρω)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작별인사 말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는’ 생활을 할 때 그들은 온전하고 위로받는 생활을 할 수 있고 그들 가운데 악이 틈타지 못하고 승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위한 축도로 그의 편지를 마칩니다(11-13절).


3. 본문 연구
1절: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2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 하리라”고 한 것은 무엇을 왜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3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고 말함은 무슨 뜻입니까?

4절:  “... 우리도 저희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는 무슨 뜻입니까?

9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 강한 것을 기뻐하고”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10절:  “떠나 있을 때에 ...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를 설명하십시오.

11절:  “형제들아 기뻐하라”에서 믿는 사람들이 기뻐하여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성경공부

                                                         고린도전서 성경공부


고린도전서 1:1-31       교회내의 분당
1. 개요
    1:1-9        인사와 감사의 말
    1:10-17    사람 높힘을 금함
    1:18-25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정의함
    1:26-31    모든 영광(=자랑)을 주님께 돌림


2. 전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지적하기에 앞서, 그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1-3절).
또, 그들 가운데 있는 좋은 것들--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함, 은사에 부족함이 없음,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을 칭찬하고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4-9절).
그런 다음, 바울은 그들 가운데 있는 문제에 대해서 지적합니다. 곧, 고린도 교회내에 분당이 있고, 그로 인한 분열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들의 취향과 선택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바울에게, 또 어떤 사람들은 아볼로에게, 게바에게, 또는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고 말하나 이러한 갈림이 헛되다고 합니다(10-17절).

교회 내에 있는 세상적인 지혜와 이해는 갈림을 가져오고 결국 멸망을 초래하며 이로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헤인데, 이를 가질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깨달을 수 있고 섬길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전할 수 있습니다. 이때 교회 내에는 분쟁이 없을 것입니다(18-25절).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고 없는 것들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 가운데 분당을 짓게 하기 위함이 아니시고, 세상의 지혜있고 강하고 귀하고 있는 것들을 부끄럽게 하고 폐하려고 하심입니다. 즉, 하나님의 택하심의 원리는 교회내에서 우리로 세상 것들을 자랑하고 나뉘게 하기 위함이 아니시고 모든 자랑(=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기 위함입니다(26-31절).


3. 본문 연구
1절:  바울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는지 말해보세요.

11-12절:  고린도 교회 내의 분쟁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함은 무엇입니까?

14절: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라”고 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함은 무슨 뜻입니까?

21절: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했는데, ‘전도의 미련한 것’이란 의미는 무엇입니까?

25절: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말씀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26절:  하나님께서는 왜 “지혜 있는 자와 능한 자와 문벌 좋은 자들”은 많이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31절: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함은 무엇을 어떻게 자랑하라는 말씀입니까?

                                                   

고린도전서 2:1-16       하나님의 비밀의 계시
1. 개요
    2:1-5        바울의 복음증거 내용과 방법
    2:6-9        바울의 복음증거 메시지
    2:10-16    하나님의 지혜의 이해


2. 전개
교회 내에 분당(分黨)이 있음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을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지혜 있음을 자랑하는 것으로는 복음의 비밀(=하나님의 지혜)을 꺠달아 알 수 없고, 오직 쓸 데 없는 자랑을 일삼거나 믿음은 없이 당짓는 일이나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에 2장에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을 설명하고 이를 앎은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증거함에 있어서 인간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 것으로도 아니하고 지혜의 권하는 말로도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가 증거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1-5절).

그러나 바울이 증거한 간단한 복음의 내용을 세상의 지혜로서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는 복음이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요,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고 이를 아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6-9절).

사람의 속사정을 사람의 영으로만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속사정 곧 그 비밀은 하나님의 영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신령한 자--만이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을 그 속에 있는 성령의 지혜와 도움으로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성령의 일을 받는 것을 미련스럽게 여기는 육에 속한 자나 성령의 일을 세상에 근심으로 밝히 깨달아 알지 못하는 육신에 속한 자와 다릅니다(10-16절).


3. 본문 연구
1절: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의 뜻은 무엇입니까?(참고: 행전 17장)

2절:  “예수 그리스도와 ...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의 의미는?

3절: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는 무슨 의미입니까?

7절:  “비밀” ... 하나님의 감추어진 진리인데 오직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만 알려집니다.
      “하나님의 지혜”란 무슨 뜻입니까?

12절:  “세상의 영”이란 무슨 뜻으로 사용되었습니까?

14-16절:  “육에 속한 자”(푸스키코스: ψυχικός), “육신에 속한 자”(사르키코스: σαρκικός)와 “신령한 자”(프뉴마티코스:    πνευματικός)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16절: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고린도전서 3:1-23       하나님의 종들의 일체

1. 개요
    3:1-9        한 밭
    3:10-15    한 건물
    3:16-17    한 성전
    3:18-23    한 그리스도


2. 전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1장에서 처음 언급한 교회 내의 분당의 문제를 다시 제기합니다. 그는 여러 가지의 비유를 듦으로서 고린도 교회 내의 믿는 사람들이 왜 함께 일하여야 하는가 설명합니다.

믿는 사람들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음은 그들이 아직 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고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란 반증(反證)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들일 때 그들은 믿는 사람들이 단결하여 일하여야 함을 압니다. 바울이나 아볼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그들은 단지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로되  밭에 있는 식물을 자라나게 하는 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밭의 식물을 자라나게 하십니다(1-9절).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란 터 위에 집을 짓는 건축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건물을 세우고 어떤 사람들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건물을 세웁니다. 마지막 때에, 각 사람이 세운 공력이 어떠한가, 시험 받을 것인데(=공력심판), 이때 각 사람의 공력에 따라 상을 받든지 해를 받든지 할 것입니다. 공력이 불탄 사람은 구원을 얻기는 하되 부끄러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10-15절).

믿는 사람들은 외적 표현인 공력을 잘 세워야 할 뿐아니라, 내적인 모습도 성결하게 보존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 몸은 하나님(의 영)이 계신 성전(헬라어: 나오스[ναός]...성소)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보존해야 합니다(16-17절).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에 속하였다고 할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까닭입니다(18-23절).


3. 본문 연구
1절:  “육신에 속한 자, ...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 말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6절: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란 무슨 의미입니까?

9절: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라”에서 밭과 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0절: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란 무엇을 하였다는 뜻입니까?

12절: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이나”에서 이들은 무엇입니까?

15절: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란?
       “불 가운데서 얻는 것 같다”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23절: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 함은?


                                                   
고린도전서 4:1-21       바울 자신의 사역에 대한 변론
1. 개요
    4:1-5        그리스도의 일군인 우리와 판단자이신 하나님
    4:6-13      바울과 고린도 교인 비교: 그리스도 안에서 어리석은 자와 지혜있는 자
    4:14-21    겸손에 대한 권면
        4:14-17    바울의 부모로서의 사랑과 본
        4:18-21    결론


2. 전개
앞에서, 분당과 분파가 인간들의 ‘지혜있다’고 하는 교만한 마음에서 나왔음을 지적한 바울은 4장에서 교만과 분당, 남을 판단하는 것을 버리고 사랑과 화합의 마음을 가질 것을 권면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충성을 다하여야 할 것인데, 이때 그는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혹 판단받는다 하더라도 그 판단을 중한 것으로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판단이나 나 자신의 판단은 때로 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판단만이 참되며 온전하며 최종적인 것입니다(1-5절).

이어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잘못된 자세를 풍자적으로 지적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배부르고 부요하며 왕노릇하는 자요, 지혜롭고 강하고 존귀한 자인데, 바울과 아볼로는 미련하고 약하고 비천한 자인 까닭에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고 정처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바울과 아볼로)은 미련하여서 친히 일하는 수고를 하며, 후욕을 주는 상대방을 오히려 축복하며, 핍박을 당해도 참고, 비방하는 사람을 권면하는 삶을 삽니다(6-13절).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과 겸손의 삶이란 사실입니다. 하기에 바울은 그들에게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삶을 살고 있나 아닌가는 우리의 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복음 증거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능력)에 달려 있습니다(14-21절).


3. 본문 연구
1절:  “일군”(헬라어: 후페-레테-스[ὑπηρέτης])의 의미를 설명하세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헬라어: 오이코노모스[οίκονόμος])란 어떤 사람입니까?

2절: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헬라어: 피스토스[πιστός]”에서 ‘충성’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 피스토스 (πιστός)는 ‘신뢰할 만함’ 혹은 ‘신실함’의 뜻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왜 충성(혹은 신뢰할 만함)이 필요합니까?

7절: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함은 무슨 뜻입니까?

9절:  “하나님의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란 의미는?

15절: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니라”고 함은 무엇입니까?

16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함은 바울의 무엇을 본받는 자 되라는 것입니까?

17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20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능력’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5:1-13  교회내의 세 가지 도덕적 혼란(1): 음행(근친상간)
1. 개요
    5:1-2         악: 교회 안의 음행과 이를 방관함
    5:3-8         악의 제거: 내어 버리라
    5:9-11       악을 피함: 사귀지 말라
    5:12-13     악에 대한 처방(반복): 내어 쫓으라


2. 전개
4장까지에서 교회 내의 분당의 문제를 다룬 바울은 5장과 6장에서 교회 내에서 시끄러운 세 가지 도덕적 혼란을 다룹니다. 곧, 근친상간(近親相姦)의 음행(5:1-13), 소송(6:1-11)과 방종(6:12-20)의 문제가 그것들입니다.

근친상간의 죄는 구약시대부터 수 차례에 거쳐서  언급되어왔습니다(창 35:22, 49:4; 레 18:8; 신 22:30; 대상 5:1;   삼하 16:22). 성적(性的)으로 문란했던 도시 고린도에 이러한 불륜(不倫)이 있었던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교회 안에 이와같은 부도덕한 일이 행해지고 있음이 문제입니다(5:1).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죄 범함을 방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5:2). 바울은 ‘근친상간’과 ‘이를 통한(痛恨)히 여기지 않음’이 죄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음행은 누룩과도 같이 온 덩이에 퍼지므로, 이와같은 묵거나 괴악한 누룩은, 빵 덩어리를 순전하고 진실되게 보전하기 위하여, 제하여 버림이 좋다고 권면합니다. 즉, 누룩과도 같은 음행하는 자를 사단의 권세하에 놓여있는 세상으로 내어쫓음이 마땅한데, 이로서 그의 육신은 고통 가운데 처하게 되나, 영은 그가 혹 회개하여 마지막 때에 구원을 얻게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5:5).

근본적으로 음행하는 자와는 사귀지도 말아야 할 것인데, 이는 그들과 사귐으로 죄의 누룩이 번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과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과 사귀지 않음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자들과는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5:9-11).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실 문제이나, 교회 안에서 잘못되어지는 일은 우리가 판단하여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5:12-13).


3. 본문 연구
1-2절:  본절에서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죄는 무엇입니까?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의 구체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3절: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느니라”의 뜻은?

5절: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의 뜻은?(참조: 딤전 1:20)

7절: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었느니라”는 본문에서 무슨 역할을 합니까?

8절: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에서 이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11절: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하는데, 여러분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12절: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참조: 고전 6:1-4) 예수님께서는 “비판(=판단)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치 말라”(마태 7:1)고 하시고, 바울도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롬 14:13; 참조: 고전 4:5) 하였는데, 12절에서는 ‘판단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를 어떻게 해석합니까?

                                                 

고린도전서 6:1-20  교회 내의 세 가지 도덕적 혼란(2): 소송과 방종

1. 개요
    6:1-11       성도간에 소송의 문제
    6:12-20     음란(방종)의 문제


2. 전개
5장에서 첫 번째 도덕적 문제인 근친상간을 언급한 바울은 6장에서 성도간의 소송과 방종에서 기인하는 음란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천사들과 세상을 판단할 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그들 중에 있는 사소한 문제를 해결받으려고 그들이 복음, 곧 하나님의 법을 가르쳐주어야 할 세상의 판관들에 의하여 재판을 받기 위하여 송사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란 것입니다. 이는 마치 어른들의 문제를 가지고 어린아이들에게 그 판단을 의뢰하는 것과 같습니다(1-4절).
만일 성도간에 판단을 받을만한 일이 있거든 교회 안에서 이를 판단할만한 지혜있는 자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성도간에 서로 송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교회 밖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세상의 지혜로 그들의 문제를 판단해줄 것을 의뢰함은 더욱 없어야 합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손해를 당함이 나을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송사하는 사람이 그들의 형제이기 때문입니다(5-8절).
그들(=고린도 교인들)은 원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할 불의한 자들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죄씻음을 받았고,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이미 거룩하여지고 의롭다 함을 얻은 그들이 아직 죄 가운데 있는 불의한 판관들에게 판단을 받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9-11절).

고린도 교인들 중에 얼마가 음란의 죄를 범하는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방종과 혼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자이므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12절)라고 상투어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의 자유에는 한계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로는, 유익하거나 도움이 되는 행동이어야 할 것이며, 둘째로는 아무에게도 제재를 받지 않는 행동이어야 합니다(12절).

고린도인들은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한다’는 논리로서, ‘몸은 음란을 위하고 음란은 몸을 위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몸은 생활의 한 방편으로서 식물을 소화시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배와는 달리, 우리 의 인격과 품성과 자아를 포함하는 우리의 전부입니다. 몸은 단순한 물질적인 부분일 뿐아니라, 우리의 인격이요 자아로서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13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몸을 허락하시고 우리가 이 몸을 중히 여겨야 할 이유를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주를 위하여 주셨고(13절 후반), 둘째로 우리 몸은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다시 살리실 몸이고(14절), 셋째로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며(15-18절), 넷째로 우리 몸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령의 전입니다(19절).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소중히 다루어야 할 뿐아니라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할 것입니다.


3. 본문 연구
4절: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이라고 함은 어떤 의미에서 입니까?

12절: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의 뜻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16-17절: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둘이 한 육체가 된다’ ...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한 말씀의 의미를 풀어서 해섯해 보십시오.

18절: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범죄하느니라”의 뜻은?
                                                   


고린도전서 7:1-40   결혼에 관하여

1. 개요
    7:1-7        성도의 결혼생활 (독신이 좋으나, 결혼도 괜찮음)
    7:8-11      갈리지 말아야 함
    7:12-16    불평등한 멍애를 진 자들
    7:17-24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함
    7:25-31    임박한 환난에 대처
    7:32-35    주님께 헌신과 봉사함
    7:36-38    처녀 딸을 둔 부모가 알아야 할 것 (결혼하는 것도 잘하는 일이나, 독신이 더 잘하는 것임)
    7:39-40    과부의 재혼 (그냥 지내는 것이 복됨)


2. 전개
6장에서 몸므로 짓는 죄, 음란(淫亂)과 음행(淫行)의 문제를 다룬 바울은 7장에서 이러한 죄를 피하는 방법인 결혼(結婚)에 관해 언급합니다. 즉, 성도들의 삶으로는 독신이 좋지만, 음란의 생각으로 인하여 범죄할 것같은 사람들은 결혼하는 것도 무방합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각자의 의무를 잘 지켜야 할 터인데, 이는 사단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함입니다(1-7절).

아직 혼인(婚姻)하지 않은 자들과 혼자된 과부(寡婦)들은 현재처럼 혼자 지내는 것이 좋으나, 정욕이 일어 절제할 수 없을 때에는 음행의 죄를 범치 않기 위하여 결혼하는 것도 무방합니다. 혼인한 사람들은 서로 갈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8-11절).

믿지 않는 자들과 결혼한 사람들은 그 아내가 또는 그 남편이 함께 살기를 원하거든 같이 살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 믿지 않는 아내 혹은 남편으로 주를 믿게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함이지 믿지 않는 아내 혹은 남편을 따라 세상적인 생활을 해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믿지 않는 아내나 남편이 갈리기를 원할 때는 갈라져도 무방합니다. 이는 그들이 지고있는 멍애와 우리의 멍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12-16절).

결혼을 하는 것도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함입니다(17-24절). 그러나, 바울이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함은 임박한 환난을 인함입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환난 날에 남편과 아내와 자식들에 매여서 그 고난이 크고 주의 뜻에 따라 환난을 잘 견디기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25-31절). 결혼을 한 사람이라도 주님을 먼저 생각하고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32-35절).

처녀 딸을 둔 부모는, 이같은 상황에서, 그를 시집보내는 것도 잘하는 일이나, 보내지 아니하는 것이 더 잘하는 것입니다(36-38절). 과부의 경우도 시집갈 수 있으나, 그냥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39-40절). 이는 환난의 때가 가까운 까닭입니다.


3. 본문 연구
1절: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14절: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의 의미는?

26절: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에서 이 환난은 무엇을 뜻합니까?

현대를 사는 여러분은 결혼과 독신중 어떤 편을 택하는 것이 주님의 뜻에 가깝다고 생각합니까?
또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결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고린도전서 8:1-13   우상의 제물
1. 개요
    8:1-3      지식과 사랑
    8:4-13    우상의 제물


2. 전개
로마서 14:20-23에서와 같이, 바울은 본장에서 우상에게 제물로 드려졌던 식물(=food)을 먹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되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말하기 전에, 바울은 지식과 사랑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지식이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반면에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함은 우상의 제물에 관해서도 우리의 아는 지식으로 할 것이 아니라 형제를 사랑함으로 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1-3절).

바울 당시 고린도 지방은 희랍의 많은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일이 성행하였습니다. 신들에게 바쳐진 제물은 시장에 내다가 팔렸는데, 이 고기와 우상에 바쳐지지 않은 고기가 섞여서 팔렸기 때문에 시장에서 고기를 사먹는 사람들은 그들이 사먹는 고기가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인가 아닌가로 고민하였습니다. 이는 고린도 지방의 사람들에게,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일이란 왠지 우상과 관계를 갖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꺼리는 마음이지만 사먹고, 또 어떤 사람들은 꺼림직하기에 사먹지 않았습니다.
이에 바울은 세상에 신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으며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설명합니다(4절). 그러므로,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곧, 음식으로 인하여 우리가 죄짓는 것이 아닙니다(8절).

어떤 사람은 세상에 우상은 없는 고로 꺼림직한 마음없이 시장에서 파는 식물--우상에게 바쳐진 것이든 아니든--을 사먹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사람에게 이는 하나의 시험꺼리가 됩니다. 한편으로는, 믿음과 지식이 있는 이 사람의 행동이 그로 하여금 시장에서 파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사먹게 합니다(10절). 그러나, 연약한 믿음의 사람은 우상에 대한 생각으로 인하여 꺼리고 상한 양심으로 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까닭에 망하게 됩니다(11절). 이러할 때, 지식의 사람은, 자신은 꺼림이 없어 먹는 음식으로 죄를 범함이 없었지만, 그를 따라 상(傷)한 양심으로 우상의 제물을 먹은 형제를 실족케 한 까닭에 결국은 그리스도께 죄를 범한 것입니다(12절).

우상은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닌 고로, 거리낌 없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죄 짓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을 본받은 믿음이 약한 사람이 거리낌으로 우상의 제물을 먹을 때, 그는 그리스도께 죄를 범하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도 형제를 실족시키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의 지식으로 죄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사랑은 형제를 실족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 자신은 거리낌이 없지만)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을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13절). 곧, 지식은 우리로 교만하게 하여 형제를 실족시키는 죄를 짓게 하지만, 사랑은 형제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 덕을 세웁니다(1절).


3. 본문 연구
1절: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란 무슨 뜻입니까?

2절:  “만일 누구든지...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라고 말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7절: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에서 이 지식이란?
       이 지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9절:  “그러나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지 않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는데, 우리의 자유함이 우리 주위의 약한 자들에게 거침이 된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9:1-27   바울의 사도권과 자유의 사용

1. 개요
    9:1-14      사도의 권리
    9:15-18    복음전파의 자세
    9:19-23    바울의 전도방법
    9:24-27    그리스도인의 경주와 싸움


2. 전개
바울은 8장 1절-11장 1절에서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의 문제를 가지고 크리스찬의 자유의 한계를 설명합니다.
크리스찬의 자유와 방종은 5장에서부터 언급되어있는 것인데, 5장에서는 음란(근친상간)의 문제로, 6장에서는 소송과 음행의 문제로, 7장에서는 결혼의 문제로, 8장에서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의 문제로 제기됩니다.

9장에서는 바울의 사도권과 복음전파의 자세의 예로 이를 설명합니다. 자유와 방종의 구분은 크리스찬이 행하는 어떤 행동이 유익한가 혹은 아무에게나 제재를 받지 아니하는가(6:12)로 알 수 있습니다. 또는 그가 하는 것이 교만하게 하는 지식으로 행하는 것인가, 덕을 세우는 사랑으로 행하는 것인가로(8:1)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자는 형제나 자매를 실족시키지 않습니다(8:13). 바울은 10장에서 크리스찬의 자유의 한계를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즉, 유익한 것이어야 하고, 덕을 세우는 것이어야 합니다(10:23).

9장 서두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리와 그 자유를 설명합니다. 사도로서 그는 다른 사도들과 같이 먹고 마시는 권이 있으며, 결혼하여 아내를 데리고 다닐 자유가 있으며,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물질적인 것을 거둘 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가 이 권리와 자유를 사용하지 않음은 복음을 증거함에 장애를 받지 않고 오히려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1-14절).

복음 증거자로서 바울은 장막을 깁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고 그의 복음 증거의 일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의 일이 부득불 할 일(=의무)이기 때문이며, 이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바울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자나 종이 된 것처럼 봉사하고 충성하였습니다(15-18절).

바울의 전도방법은 유연합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으로서,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와 같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한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한 자와 같이,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대합니다. 이로써 더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오게 합니다. 즉, 그는 전도자의 자유를 덕을 세우는 일에 사용합니다(19-23절).

그러나, 자신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율법을 지킴에는 철저합니다. 경주자로서 목표를 향하여 상을 바라보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달려가며, 이기기를 원하는 권투선수와 같이 사단을 대적하여 싸우되 허공을 치지 않고 상대방의 정곡을 치려고 합니다. 이는 그 자신의 결국의 목표도 이를 이루고자 함이기 때문입니다(24-27절).


3. 본문 연구
2절: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란 무슨 뜻입니까?

7절:  “누가 자비량(自備糧)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9절: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뜻은 무엇이며, 왜 이 구약성경의 말씀을 인용했습니까?

11절: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의 의미는?

24-27절에서 경주자와 권투선수의 비유를 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0:1-11:1   방종·우상숭배에 대한 경고와 그리스도인의 자유

1. 개요
    10:1-13       방종에 대한 경고
        10:1-4        구약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
        10:5-10      구약 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징벌
        10:11-13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권면
    10:14-22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
    10:23-11:1  그리스도인의 자유


2. 전개
바울은 10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한계를 반복·요약하여 강조합니다. 즉, 유익한 것이어야 하고, 덕을 세우는 것이어야 하고(23절),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31절).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남용으로 인한 우상숭배와 방종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구약 이스라엘의 예를 듭니다. 그리스도인 이전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들이 세례(상징적 의미)를 받고 신령한 식물과 음식을 마셨었습니다(1-4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유를 남용하여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는 자가 되고, 이방 사람들과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시고 멸망시키셨습니다(5-10절).
이 예로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이 구약의 사건을 거울 삼아서 항상 조심하라. 너희가 선 줄로 생각하느냐?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께 의지하고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감당할 시험만을 허락하시고, 시험당할 때에도 피할 길을 주신다”(11-13절).

14절 이하에서 바울은 ‘우상숭배를 피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우상숭배’라고 함은 고린도 교인들이 헬라신전을 드나들면서 그 신들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던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렇게 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축복의 잔과 떡에 참예하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기 때문입니다(16절). 이스라엘이 제물을 먹은 것도 하나님의 예배에 참예하는 일이었습니다(18절). 그러나, 고린도 교인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거리낌으로 인하여) 오히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범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거스려 죄짓는 행위입니다(14-22절).

바울은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은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요, 덕을 세우는 것이어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맏아 그러한 삶을 살고있는 것과 같이 고린도 교인들도 그를 본받는 자 되라’고 권면합니다(10:23-11:1).


3. 본문 연구
2절: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란 무슨 뜻입니까?

5절: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다수를 기뻐하지 아니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6절:  바울이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예하는’ 예를 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18절:  이스라엘이 제물을 먹은 것과 고린도 교인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29절: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를 풀어서 해석해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11:2-34    공중예배(1): 머리에 쓰는 것과 성찬

1. 개요
    11:2-16      공중예배시 머리에 쓰는 것
    11:17-34    성찬에 관한 권면


2. 전개
바울은 1-4장에서 교회 내에서의 분열의 문제를, 5-10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문제(5-7장 음란의 문제; 8-10장 우상숭배의 문제)를 다룬 다음, 11-14장에서 공중예배시의 문제를 언급합니다.
11장에서 머리에 쓰는 것과 성찬에 관하여, 12장에서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13장에서 으뜸 은사인 사랑에 관하여, 14장에서 고린도 교회 내에 논란이 많은 방언과 예언의 은사의 사용에 관하여 다룹니다.

바울은 기능상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남자, 남자와 여자를 하나의 질서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남자는 최초에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만들어졌기에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은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며, 곧 머리이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여자는 남자의 질서 하에 있기에,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행동이 되므로 욕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머리에 쓰는 것은 권세 아래에 있다는 표시로서 마땅히 여자가 해야 할 것입니다. 남자는 짧은 머리(=머리를 드러냄), 여자는 긴 머리(=머리를 가림)가 자연스럽듯이, 공중예배시 여자는 머리에 무엇을 씀이, 남자는 아무 것도 쓰지 않음이 자연스럽다(=하나님의 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바울 당시에, 유대인들은 남자와 여자가 모두 예배시에 무엇을 썼고, 헬라인들의 경우 남자는 아무 것도 쓰지 않고 여자는 무엇을 썼는데, 바울의 본문에서의 논지는 헬라인들의 풍습을 따르는 것입니다.

본장의 두 번째 문제는 성찬에 참예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떡과 잔을 나누기 전에 식사가 행해졌는데 교회에 일찍 오는 사람도 있었고 또 늦게 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교회에 일찍 오는 사람들은 주로 상전(上典)이었고 늦게 오는 사람들은 하인(下人)이었는데, 일찍 온 사람들이 늦게 온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고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심으로 늦게 오는 사람들은 먹고 마실 것이 없었습니다. 이러므로, 이후에 행해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성찬예식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을 권면할 때, ‘서로 기다리라’(33절)고 하며, 정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고 오라’(34절)고 합니다. 이리 할 때, 성찬의 의미가 깨달아지며, 진정한 성찬에 참예하게 됩니다.


3. 본문 연구
3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바울이 말씀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7절: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에서 바울은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말아야 할 것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15절: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에서 긴 머리가 있는 여자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19절: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함은?

22절: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라고 함은 고린도 교인들이 어떻게 하였다는 것입니까?

30절: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의 뜻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2:1-31    공중예배(2): 성령의 은사

1. 개요
    12:1-11      은사의 다양함
    12:12-27    다양한 지체 가운데 일체성
    12:28-31    현재의 은사와 더 큰 은사


2. 전개
11장에서 공중예배시 주의할 사항인 머리에 쓰는 것과 성찬에 관하여 다룬 바울은 본장에서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언급합니다. 이를 말함은 그 당시 고린도 교회 내에서 저마다 자기의 받은 은사를 자랑함으로 갈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울은 4-7절에서 그와 같이 다양한 은사와 그 직임과 역사 가운데 이를 주장하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성령의 은사의 나타남은 주님 안에서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역설합니다(1-11절).

마찬가지로, 우리 몸도 여러 지체로 구성되어 있으나 한 몸을 이루고, 교회도 머리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 지체로 구성되어 있으나 각각 다른 몸이 아니라 교회란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 몸을 이루는 지체의 각 부분은 서로 다른 지체보다 낫다고 자랑할 수 없음은 어느 지체 하나 요긴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는 새끼 발가락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 발가락에 가시라도 박힐라치면 온 몸이 아픈듯하여 제대로 생각할 수도 없고, 일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몸의 각 지체는 다른 지체보다 낫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고, 다른 지체를 무시할 것이 아니라, 서로 위해 주고 서로의 아픔과 기쁨에 동참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몸이신 교회에 소속된 우리 각자도 우리가 다른 교인(=지체)보다 낫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맡은 일을 잘 감당하며, 다른 교인의 고통과 즐거움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12-27절).

교회 중에 어떤 이는 사도로, 어떤 이는 선지자로, 교사로, 또다른 여러 은사를 받았는데 이는 자랑하게 함이 아니라 이들 은사를 잘 활용함으로써 교회에 덕을 세우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일을 더욱 더 잘 감당하기 위하여 더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할 터인데, 이 더 큰 은사는 사랑입니다(28-31절, 13장).


3. 본문 연구
4-6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함은 무엇입니까?

8-10절에 나오는 아홉 가지 은사에 대하여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은사를 받았습니까?

11절: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12-31절은 1-11절과 어떤 관계입니까? 즉, 바울은 왜 성령의 은사를 언급한 다음에 몸의 지체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까?

13절:  “...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의 뜻은?

28절에 바울이 열거한 것은 8-10절의 은사와 다른 은사입니까? 혹은 부연된 설명입니까?

29-31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31절에서 ‘더 큰 은사’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고린도전서 13:1-13   공중예배(3): 사랑

1. 개요
    13:1-3      (사랑의 부재를 통한) 사랑의 가치
    13:4-7      사랑의 성격(혹은 속성)
    13:8-13    믿음, 소망과 사랑의 비교


2. 전개
12장에서 바울은 당시 고린도 교인들이 자랑하고 행하던 여러 가지 은사를 소개하고, 그 모든 은사가 한 성령, 한 주, 한 하나님이신 삼위일체의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강조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은사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바울은 이를 몸의 지체와 관련하여 설명합니다. 은사가 여러 가지인 것과 같이 몸의 지체도 여러 가지인데 한 지체가 다른 지체보다 귀하다고 자랑할 수 없고 한 지체가 아프면 다른 지체도 고통받는 것과 마찬 가지로, 어떤 은사가 다른 은사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으며, 서로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은사는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12장 마지막 절(31)에서 바울은 “더욱 큰 은사들(τὰ χαρίσματα τὰ μείζονα)”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의 마음에 두고있는 더욱 큰 은사들 중에 은사는 바로 사랑입니다.

13장에서 바울은 사랑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세상에 많은 은사들이 있지만 그것들이 사랑과 무관하게 행해지면 그것들은 다만 무익할 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방언은 ‘소리나는 구리요 울리는 꽹과리’일 뿐이요, 사랑이 없는 예언과 믿음도 아무 것도 아니요, 사랑이 없는 구제와 희생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1-3절).

이어서 바울은 사랑의 특성들(characteristics)을 열거합니다. 오래참음, 온유함, 투기하지 않음, 자랑하지 않음, 교만하지 않음, 무례히 행치 않음,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음, 성내지 않음,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음, 불의를 기뻐하지 않음, 진리를 기뻐함,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기다림이 바로 사랑을 갖고있는 그리스도인에게서 볼 수 있는 속성입니다(4-7절).

예언이나 방언이나 기타 다른 은사들은 부분적인 것으로서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때 폐하여질 것들이지만, 사랑은 완전한 것으로서 언제까지나 남아있을 것입니다(8-10절).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지만, 사랑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에서도 영원히 지니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11-13절).


3. 본문 연구
1절: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가리”가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3절:  ‘구제’와 ‘불사르게 내어줌’이 유익이 없다고 함은 어떤 의미에서 그렇습니까?

4-7절에 열거되어있는 사랑의 성격들을 하나 하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8절: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 함은 왜 그렇습니까?

10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은 어떤 때입니까?

11절:  “내가 어렸을 때에는...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12절: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내가 온전히 알리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고린도전서 14:1-40   공중예배(4): 방언과 예언

1. 개요
    14:1-25      방언과 예언의 비교
    14:26-36    공중예배에서의 질서와 절차
    14:37-40    요약


2. 전개
14장에서 바울은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대표적으로 행해지고 자랑되던 두 가지 은사를 예로 들어 비교합니다.
예언의 은사라고 함은 하나님의 뜻이나 계획을 일반으로 하여금 알게 하는 것이고, 방언의 은사라고 함은 각 나라의 말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말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은사입니다.

1-25절에서에서 바울은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비교함으로, 예언의 은사가 방언의 은사보다 우월함을 설명합니다. 즉, 방언을 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나 예언을 하는 자는 교회에 덕을 세웁니다(4절).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22절).  모든 사람이 다 방언을 말하매 무식한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이 미쳤다고 하나, 예언을 말할 때 무식한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책망을 듣고 판단을 받고 그 마음에 숨은 일이 드러나므로 하나님께 엎드리고 경배하게 됩니다.

26-36절에서 바울은 공중예배시 그 질서(=순서)와 절차에 관하여 지시사항을 말합니다. 즉, 공중예배시에 찬송시와 말씀과 계시와 방언과 방언통역함이 있을 것인데, 이를 행함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26절).
방언은 순서를 따라 하고 세 사람 이상은 하지 말고 반드시 통역이 있어야 하며, 통역이 없을 경우에는 잠잠하라고 합니다(27-28절).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 하고 그 진위를 다른 사람에 의하여 판단받아야 합니다(29절).
예언하는 자는 자제하여야 하는데 타인의 계시에 의해서도 절제를 받습니다(30-32절). 공중예배에 이와같은 질서가 있음은 하나님은 어지러움(=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와 화평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여자들에게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권면합니다(34-35절). 이는 여자들 때문에 교회가 시끄럽고 어지럽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7-40절에서 바울은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39절). 바울은 교회의 덕이 되는 예언하기를 적극적으로 권하고, 개인의 덕이 되는 방언함을 소극적으로 권합니다.


3. 본문 연구
1절:  “사랑을 따라 구하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4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는 어째서 그렇습니까?

8절:  “만일 나팔이 ...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는 무슨 뜻입니까?

17절: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의 의미는?

20절: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는 무슨 뜻입니까?

21절: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32절: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의 뜻은?

33절: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의 뜻을 풀어서 설명하세요.
                                                   


고린도전서 15:1-58   부활의 믿음
1. 개요
    15:1-34    부활의 확실성
        1-11      그리스도의 부활
        12-19    죽은 자의 부활
        20-28    성도 부활의 보증이신 그리스도
        29-34    부활신앙의 의미
    15:35-58    부활의 몸
        35-49    부활한 육체의 본질
        50-58    부활의 승리


2. 전개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멸하지 않고 음부(스올)로 내려간다고 생각하였으나 몸이 다시 부활한다고는 여기지 않았습니다(사두개인은 영혼의 부활도 믿지 않고, 바리새인들이나 에센인들은 영혼의 부활은 믿음). 헬라인들은 영혼불멸은 인정하였으나 몸의 부활은 믿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교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교회는 다니지만 부활의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본장에서 그가 전하는 믿음의 진수(眞髓)가 부활에 관한 것임을 피력합니다.

1-11절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을 열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다음 열한 제자와 500여 성도들, 야고보와 바울에게 나타나셨음을 이야기함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신빙성이 없는 헛소문이 아니라 사실임을 역설합니다.

12-19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부활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부활이 없는 믿음은 헛 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의 돌아가심도 헛 것이고, 우리의 믿음도 헛 것이며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 자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이로써 믿는 자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하심입 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같이 우리 믿는 사람들도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부활될 것이므로 우리는 이 생을 사는 동안 당하는 고난을 잘 감당하여야 합니다(20-34절).

35-49절에서 믿는 자의 몸의 부활이 어떠한가에 대하여 바울은 썩지 아니할 것으로, 영광스러운 것으로, 강한 것으로, 그리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고 설명합니다.

50-58절에서 바울은 마지막 때에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그때 살아있던 자들도 홀연히 변화할 것임을 증거합니다. 이에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그때까지 모든 성도들은 견고한 믿음을 지키고 주님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3. 본문 연구
18절: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20절:  “그리스도께서 ...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함은 무엇입니까?

29절: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45절: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50절:  왜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까?
                                                   


고린도전서 16:1-24   그리스도인의 친교

1. 개요
    16:1-4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모금
    16:5-9    바울의 여행 계획
    16:10-24    종결: 권면과 인사


2. 전개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 교회 안의 분열에 대하여(1-4장),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그 한계에 대하여(5-6장: 음행, 송사와 음란의 예; 7장: 결혼의 예; 8-10장: 우상의 제물의 예), 공중예배에 대하여(11-14장),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부활에 대하여(15장) 다루어 왔습니다.

16장에서 바울은 편지를 마치기에 앞서서 그가 오랫동안 기도해오고 생각해온 그의 형제요 동포인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한 모금을 언급합니다. 이는 갈라디아서 2:10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바울이 오랫동안 생각해오고 힘써온 것입니다(16:1-4, 참고: 갈 2:9-10; 고후 8-9장; 롬 15:25-28).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서 바울은 소아시아에 있는 갈라디아 교회에 주일마다 연보중 얼마를 떼어서 구제금을 마련하여 놓으라고 했는데, 고린도 교회에도 이와같이 주일 헌금 중 얼마를 떼어 구제험금을 마련해 놓으라고 당부합니다. 바울은 이 구제금을 명명함에 돈(헬: 아르구리온, ἀργύριον)이라고 하지 않고 은혜(헬: 카리스, χάρις)라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은 주님께로부터 입은 은혜의 반사(reflection)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 반도 남부 아가야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데, 바울은 후에 빌립보, 데살로니가 교회들이 위치한 그리-스 중부 마게도냐 지방을 거쳐 고린도 지방에 들러 과동할 뜻을 비췹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소아시아의 한 지방인 에베소에서 보낸 듯 한데(16:8), 이 편지가 쓰여진 바울의 3차 여행기간(사도행전 18:23-21:26)은 주로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모금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기간 중 바울은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모금을 하였는데 무려 삼년여나 걸렸습니다.

10-24절에서 바울의 자상하고 사랑에 넘치는 마음을 우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그의 동역자에 대하여 언급하며 그들의 소식을 전합니다(참고: 로마서 16장). 로마서를 더디오가 대서한 것 처럼, 고린도전서는 아마도 소스데네가 대서한 것으로 보입니다(고전 1:1). 그러나, 이제 편지를 끝맺음에 바울은 안질의 가시 가운데도 그의 사랑의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친필로 마지막 인사와 축복을 몇 자 적습니다(16:21, 참고: 갈 6:11).


3. 본문 연구
3절: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는 무슨 뜻입니까?

6절:  ‘바울의 갈 곳’은 구체적으로 어디입니까?

9절: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의 의미는무엇입니까?

15절:  “스데바나의 집은 아가야의 첫 열매요”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17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부족한 것이란 무엇입니까?

21절: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의 뜻은?

29절: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