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1, 2013

로마서 성경공부

                                                              로마서 성경공부



로마서 1:1-17  아들의 복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믿음을 통한 구원

1. 개요
    1:1-7    하나님의 복음--그리스도의 종, 바울--인사
        1           바울 자신의 소개
        2-5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시함
        6-7       독자

    1:8-15    그의 아들의 복음--빚진 자, 바울--감사기도

    1:16-17    그리스도의 복음--복음을 부끄러워하지않는 바울--복음의 능력


2. 전개
이 처음 17개 절에서 사도 바울은 독자들과 그의 복음 증거의 짐과 마음의 확신을 나누어 갖고자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전체에 걸친 분위기(tone)를 설정하고 주제를 소개합니다. 로마서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1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칭합니다. 2-5절에서 복음은 역사적인 차원과 개인적인 차원에서 기술되고 있습니다. 즉, 복음은 하나님이 그의 선지자들을 통해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8-15절에서 바울은 독자들에게 그들을 방문하기를 원하는 그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돕기 위한 것일 뿐아니라 자신도 안위받고자 함입니다.

16-17절에서 우리는 세가지를 주목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에 대한 바울의 태도이고(‘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함’), 둘째는 복음의 성격이고(’믿음으로 믿음에 이름‘), 셋째는 복음의 내용입니다(’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3. 본문 연구
1절:  종
      사도

4절:  성결의 영

14절: 빚진 자

17절: 하나님의 의 (δικαιοσύνη θεού)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갈 3:11)
       (바울은 하박국의 본문을 바울 당시의 크리스챤 집단의 상황에 맞게 ‘미드라쉬’ 식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로마서 1:18-32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진노
1. 개요
    1:18-21    하나님의 진노의 성격
    1:22-31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
    1:32         요약 및 전환


2. 전개
1:18-3:20은 사람들의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Wrath of God on human unrighteousness)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1:18-32에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유대인의 입장에서), 2:1-3:8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3:9-20에서 결론적으로 ‘(한 사람도 예외없이)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따라 지으셨으므로, 인간 누구에게나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 안에 있습니다(19절). 사람이 하나님을 인정치않고 영화롭게도 하지않는 것은, 타락하여 허망하여지고 악에 예속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인간 죄의 심화(深化)를 ‘바꾸어’([με]ἠλλαξαν)라는 단어의 ‘삼중 반복’으로 표현합니다(23, 25, 26절). 즉, 사람이 하나님을 알되(=know) 인정하지(=acknowledge--know and accept) 아니하므로,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교만함으로 인간의 몰락을 초래하며(24, 26-27), 온갖 종류의 죄를 범하는 추잡한 존재로 변모합니다(29-31). 바울은 이를, 하나님이 그를 인정치 않는 자를 ‘내어버려두심(παρέδωκεν)’의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삼중반복: 24, 26, 28). 즉, 사람이 그를 지으신 하나님꼐로 돌아오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죄(=사단)에 ‘내어버려두심’으로 징계하십니다.


3. 본문 연구
18절: ‘하나님의 진노’(ὀργὴ θεού) (대조: ‘하나님의 의’: δικαιοσύνη θεού)
     --하나님의 진노 역시 ‘하나님의 의’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이는 하나님(‘하나님의 의’)은 ‘인간의 불의’와
        공존(共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불의’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을 찾지 않으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언제 나타납니까?--현재에? 혹은 종말에?

24, 26, 28절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내어버려두신’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19절: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21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하나님을 아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할 수 있습니까?

본문에 나오는 인간의 죄들은?
‘동성애’(homosexuality: cf. orientation과 practice)는 죄입니까? (레 18:22, 20:13; 롬 1:27; 고전 6:9)

32절: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에서 ‘사형에 해당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로마서 2:1-16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

1. 개요
    2:1-5        진리대로 심판하심
    2:6-10      행한 대로 심판하심
    2:11-16    공의로 심판하심


2. 전개
1:1-17에서 바울은 로마서 전체의 주제인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나타났나?’를 설명합니다. 즉,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인간구원의 방법으로 나타났습니다.
1:18-32에서 바울은 ‘그러면 왜 하나님의 의가 이와같이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구원의 방법으로 나타나야 했는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마음 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는데도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고 인정치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허탄한 데 빠져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1-3:20에서 바울은 이와같이 타락한 인간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인 심판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를 범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모든 인간에게 나타날 터인데, 이는 진리대로, 행한 대로, 공의로운 것입니다(2:1-16).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은 첫째는 유대인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하여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셨는데도 율법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으며 할례를 행하나 그 할례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여 진정으로 하나님께 바쳐지는 삶을 살지않기 때문입니다(2:17-3:8). 그 다음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율법을 주시지는 않았으나 하나님을 알만한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형상을 주셨지만,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선을 행하지도 않고 오직 악만 가득하여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과 금수와 우상으로 바꾸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그들을 내어버려 두셨으나, 그들이 그들의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고치려고 하는 대신에 오히려 남을 판단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터인데, 바울은 2:1-16에서 하나님의 이러한 판단의 성격을 세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진리대로 판단하신다고 합니다(1-5절).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와 허물이 많은 인간도 긍휼히 여기시어 인자하심으로 대하시고, 그들이 회개할 때 용납하시고, 회개하기까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신데 그들이 이와같은 하나님의 속성을 멸시함으로 끝까지 회개치 아니할 때, 이는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이며 하나님은 결국 이들을 심판하실 터인데, 이것이 거짓됨이 없이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행한 대로 판단하십니다(6-10절).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오래 참고 믿음의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판단하시고, 믿음이 없는 불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신다고 되어있습니다. 셋째로는 공의로 판단하십니다(11-16절). 율법 없이 범죄한 이방인은 율법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판단하시고, 율법이 있음에도 율법을 행하지 않은 유대인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판단하실 것입니다. 이는 율법이 그들을 의롭게 하는 수단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믿음을 의존치 않고 율법에 의지하나 범죄함이 크다는 뜻입니다.


3. 본문 연구
1절: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는 무슨 의미입니까?

2절: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12절: “율법이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없이 망하고,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14절: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함은 무엇입니까?
                                                   

로마서 2:17-3:8    유대인에 대한 심판

1. 개요
    2:17-24    형식적 율법주의에 대한 비판
    2:25-29    참 할례, 참 유대인
    3:1-8        유대인들의 반박에 대한 변증


2. 전개
주님의 날에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나타날터인데 첫째는 유대인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율법을 먼저 받은 자로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삶을 살기 보다는 율법받음과 하나님을 자랑하되 헛되이 자랑하며 소경을 인도한다고 하나 웅덩이로 인도하고 있는 자입니다(2:17-20).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시고 율법을 주셨을진대 그들은 삶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함에도 전혀 본이 되지 않는 삶을 살므로서 율법을 자랑하는 그들의 자랑과는 달리 율법을 범하는 자의 삶을 살고, 해서 오히려 이방인 중에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2:21-24).

율법을 맡은 유대인이 율법을 지킬 때 그 율법은 그들에게 유익한 것이요, 그들이 그들 자신을 구분하여 하나님께 드리고자 할례한 그 할례도 유익한 것이지만, 그들의 율법에서 떠난 삶을 살 때--해서 하나님께서 싫어버리는 바된 삶을 살 때 율법도 할례도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이는, 차라리 율법과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 본성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2:25-27).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으로서 육신에 할례를 받았지만 할례받은 자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할 때 그 할례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이--그 중심이 하나님께 바쳐진 삶을 살기를 원하며 그렇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맡았다고 할례를 받았다고 자랑하고 인간의 칭찬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과연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으로서 또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고자 작정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칭찬하실 삶을 살아가고 있나 생각하고 그렇게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2:28-29).

그러면 유대인의 나음은 없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유대인에게 나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른 족속중에 먼저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 율법을 주심은 확실히 하나님의은혜가 그들에게 먼저 임한 것으로서 이것이 유대인의 나음이라 할 것입니다(3:1-2). 하나님께서 그가 먼저 택하신 유대인들을 심판하신다면 이것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는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항상 미쁘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할례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저버리시지 않으십니다. 다만 유대인이 그 스스로 마음에서 하나님을 떠났기에 언약의 기업을 받지 못하고 심판에 이르는 것입니다(3:3-4). 우리의 불의함으로 하나님의 의가 더 들어나며 우리의 거짓말함으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들어납니까? 또 하나님의 선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악을 행하여야 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스스로 의로우시고 참되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도움(그것도 불의하고 거짓되고 악한)이 필요없으십니다.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우리의 불의와 거짓과 악은 하나님의 속성에 반하는 것이기에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3:5-8).


3. 본문 연구
2장 25절: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는 무슨 의미입니까?

26절: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3장 5절: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함은 무엇입니까?

7절: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를 설명하십시오.

8절:  “저희(=유대인)가 정죄받는 것이 옳으니라”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로마서 3:9-20    이방인에 대한 심판
1. 개요
    3:9            이방인 역시 죄 아래 있음
    3:10-18    모든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 미치지 못함
    3:19-20    율법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얻지 못함


2. 전개
2:17-3:8에서 유대인들의 범죄함과 그들에게 임할 심판을 선포한 바울은 이제 이방인에게로 시선을 돌립니다. 유대인이 율법을 맡은 자로서 하나님의 의에 미치지 못한 것 같이, 이방인도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찾지 않아 죄 아래 놓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3:9)

3:10-18에서 바울은 우리 인간이 범하는 죄를 구약(시편과 이사야)을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10절에 하나님 앞에 행위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타락한 인간의 속성으로는 하나님을 깨닫지도 못하고 찾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다 한가지로 치우쳐서 세상을 좇는 무익한 삶을 사는 인생들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하는 자가 없는데 ‘한 사람도 없다’고 바울은 시편기자의 말(14:3)을 인용합니다.
우리 인간은 목구멍--입속의 것으로 죄를 짓습니다. 혀로는 속임을 베풀고, 입술로는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입으로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 넘칩니다.(3:13-14)
인간의 발은 다른 사람을 해하는데 사용됩니다.(3:15)
인간의 머리는 평강의 길을 헤아려 알지 못하고 파멸과 고생의 길만을 생각합니다.(3:16-17)
사람의 눈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육신의 눈이건 마음의 눈이건 가릴 것 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는 것입니다.(3:18)

율법 아래 있는 자이거나 율법 아래 있지 않는 자이거나 다 하나님 앞에 범죄한 자인데 유대인에게 율법이 있음은 그들로 그들의 행위에 대해 변명꺼리를 두지 않으려함입니다.
유대인에게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심은 율법으로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함이 아니라, 그들을 이방인으로부터 구별하여 하나님의 의로우시고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먼저 알게 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그들로 인간의 죄를 깨닫고 거기서 돌이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3:19-20)


3. 본문 연구
9절: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에서 ‘우리는’ 누구입니까?

12절: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에서 ‘무익하게 되었다’ 함은 무슨 뜻입니까?

13절: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15절: “그 발은 피흘리는데 빠른지라”고 함은 무엇입니까?

19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고 함은 무엇입니까?

20절: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에서 “육체(σάρξ)”란 무엇을 말함입니까?
                                          

로마서 3:21-31    하나님의 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1. 개요
    3:21-26    예수님의 죽으심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
    3:27-31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의


2. 전개
1:17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증거한 바있는 바울은 3:21에서 다시 이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1:2).” 이 하나님의 의는 다름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공평’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인간들이 죄를 범하고(1:18-32), 해서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곁에 거함)에 이르지 못하였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의가 불의와 공존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을 인정치 않는 것,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해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삶을 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없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치 않고 믿지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대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한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셨는데, 그것은 우리 인간이 여전히 하나님을 인정치 않고 믿지 않는 삶,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독생자의 모습으로 성육신하셔서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신 속죄하시는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인간들에 대한 그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의 행위로는 의롭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를 의롭다 하셨습니다(24절) 예수님의 죽으심은 화목제물이십니다.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벽이, 건너지 못할 강이 놓여 있었는데, 예수님의 육체로 드리신 화목제물로 벽이 무너지고, 건너지 못할 강에 다리가 놓여진 것입니다. 해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리를 딛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간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용납하심입니다. 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로와졌습니다(25-26절).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와진 우리는 해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인 까닭입니다. 바울은 28절에서 다시 한 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와짐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의 은혜는 유대인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에게까지 미칩니다. 율법을 받았던 할례자, 유대인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율법을 받지 못한 무할례자, 이방인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30절).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와졌다고 하여 우리에게 율법이 필요없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감사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진심으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31절).


3. 본문 연구
21절: “이제는 율법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eschatological departure

하나님의 의(義) (the righteousness of God)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음(21절: 비교 1: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침(22절: 비교 1:17)
    -차별이 없음(22절)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25절전)
    -길이 참으시는 중에 (사람의) 전에 지은 죄를 간과(看過)하심으로 (25절후)
    -자기도 의로우시고, 예수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26절)

27절(-31절까지):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느뇨?”....유대인 독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30절: 하나님이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 하실 대상은 할례자와 무할례자 모두를 포함합니다.

31절: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는 어떤 의미에서 사용되었습니까?
                                   

로마서 4:1-25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 아브라함의 예

1. 개요
    4:1-8         아브라함의 의는 행함에서 온 것이 아님
    4:9-12       아브라함의 의는 할례에서 온 것이 아님
    4:13-15     아브라함의 의는 율법에서 온 것이 아님
    4:16-25     아브라함의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임


2. 전개
본장에서 바울은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설명하기 위하여, 구약의 믿음의 대표인 아브라함을 그 예로   들고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신 바 된 것’은(창세기 15:6) 그의 행함때문도, 할례때문도, 율법때문도 아니란 것입니다.
행함으로 말하자면, 그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성정(性情)을 가졌던 사람으로 죽음이 두려워 아내 사라를 누이 동생이라고 속이고 한 번은 애굽의 왕 바로에게, 또 한 번은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내어준 적이 있습니다.
그의 믿음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것’은 그가 할례를 받기(창세기 17장, 99세) 약 20년 전이고,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기 약 600년 전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신 것은 그의 행함이나, 할례나, 율법으로 인함이 아니요, 오직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은 우리의 선한 행함이나, 할례나, 율법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한 의가 그를 통하여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3. 본문 연구
2절: “우리는 우리의 구원에 대해 왜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까?”

3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다” (창 15:6)

4절: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 빚으로 여기거니와”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
    ‘의롭다 여기심을 받는 것’과 ‘구원’은 어떤 관계입니까?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생활이 아닌 허물이 많은 생활 가운데 살고 있을 때, 예수님이 재림하셨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아니면 ‘구원받을 것입니까?’
    당신은 ‘구원’을 어떻게 정의합니까?

11절: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할례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관계는?
    ‘세례를 받지않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15절: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는니라”?

23-24절: 아브라함이 ‘의로 여기심을 받은 것’이 어떻게 우리의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과 연결됩니까?

25절: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로마서 5:1-21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결과

1. 개요
    5:1-11    의로와짐의 결과(=열매)
        5:1-5       믿음으로 의를 얻었으니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현재-미래).
        5:6-8       하나님의 사랑 (과거).
        5:9-10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의로와지고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으니,
                       그의 사심으로 구원받을 것이라 (미래).
        5:11        이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하느니라 (현재).
    5:12-21    첫 번째 아담과 마지막 아담


2. 전개
바울은 5:1에서 ‘믿음으로 의로와짐’(4:5, 4:22, 4:24)을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이의 결과들을 5:1-11에서 설명합니다. 즉, 믿음으로 의로와진 결과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림(5:1), 은혜에 들어감(5:2),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함(5:2), 환난중에도 즐거워함(5:2), 장래의 구원에 대한 확신(5:9, 10),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고 그 안에서 즐거워함(5:11)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 의로와진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마음의 평온함을 얻는 화평을 누리고, 장차 나타날 영광(8:18-30)으로 즐거워합니다(καυχάομαι: boast, glory). 바울은 3절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언급하는데, 즉,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患難)중에도 즐거워하나니”(비고: 롬 4:18,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람”), 이는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5:1-5: 현재-미래)

6-8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unconditional love)--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은 바 된(5절후)--을 설명합니다. 7절은 쎈드위치(sandwich) 절로, 7절 전반의 의인(義人)을 위하여 죽는 자는 6절에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의 “경건치 않은 자(=불의한 자)”를 위한 죽음과 대조하기 위한 것이고, 7절 후반의 선인(善人)을 위하여 죽는 자는 8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죄인(罪人)”을 위한 죽음과 대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과거)
9-10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확증하셨는데,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더불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될 것임을 확실히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미래)
11절에서 바울은 다시 현재의 우리 상태로 돌아가서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자고 합니다(=화평을 누리고, 1절; 비교: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고,”[2절]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고”[3절]).

12-21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으로 봅니다. 첫 번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으나(12절),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생명이 사람 가운데 이르렀습니다(18절). 즉,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는 것입니다(21절).


3. 본문 연구
세 가지의 ‘즐거워함’(=자랑함, 영광을 돌림: three joys or boastings in the Lord): 2절, 3절, 11절.

1절: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3절: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환난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4절: 소망과 믿음의 관계는? (참조: 롬 8:24-25)

5절: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6-8절: 바울은 왜 그리스도의 죽음을 두 번 언급하고 있습니까? (6, 8절)

의인(7절 전반)과 선인(7절 후반)은 어떻게 다릅니까? 바울은 왜 7절에서 두 가지로 사람의 경우를 언급하고 있습니까?

9-10절: 바울이 말하는 우리가 “얻을 구원”(미래형)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구원 받았습니까? 아니면, 구원받을 것입니까? (엡 1:13)

12-21절에서 바울은 왜 아담과 그리스도의 비교(=analogy)를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로마서 6:1-7:6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
1. 개요
    6:1-23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살음 (세례)
        6:1-14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음(=죄로부터의 해방)
        6:15-23    의의 종이 됨(=하나님의 종이 됨)
    7:1-6    그리스도에 속함(=율법으로부터의 해방)


2. 전개
인간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에 대하여 단 번에 죽으신 바 되고,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사신 바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데(사도 바울은 이를 세례의 의미라고 함), 즉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음으로써 죄의 종된 상태에서 벗어나고, 또 그리스도가 부활하시어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된 것같이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들도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됩니다.

이와같이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가 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니고, 하나님 안에 속한 의의 노예이며, 따라서 우리 몸은 의의 병기입니다.

바울은 7:1-6에서 ‘율법이 사람의 살동안만 그를 주관한다’는 것을 결혼생활의 예로서 설명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율법의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에 속한 자입니다.


3. 본문 연구
6장 3절: 바울이 말하는 ‘세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5-7절: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는데 우리는 왜 여전히 죄 가운데 삽니까?
    -그러면,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8-11절: 그리스도는 어떻게 우리를 ‘죄의 노예상태’로부터 구하셨습니까?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어떻게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 자가 됩니까?

13절: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린다’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15-18절: ‘의에게 종노릇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7장 1-6절: 결혼생활의 예는 바울의 논리를 설명하는데 어떻게 사용되었습니까? 즉, 사도 바울은 왜 결혼생활의 비유를 여기에 도입하였습니까?
                                                  

로마서 7:7-25    그리스도인의 죄와의 싸움

1. 개요
    7:7-12      율법과 죄와의 관계
    7:13-25    사람 안에서 선과 악의 투쟁


2. 전개
바울은 7:7-12에서 율법과 죄에 관해서 설명합니다. 우리가 율법을 몰랐을 때에는 죄를 범하면서도 죄인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알고부터는 죄가 드러나게 되고, 그로 인해 우리가 죄인인 것과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얽매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율법이 아니고 죄 그 자체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12절에서, “율법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고 합니다.

7:13-25에서는 인간의 내부에서의 선과 악의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 속한 자가 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마음 속의 악으로 인해 여전히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지 아니함’은(참고, 6:1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망의 몸에서 건지셨기 때문입니다(7:24). 그러기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함니다.’(7:25)


3. 본문 연구
7절: 바울은 왜 ‘율법이 죄냐?’고 묻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왜 ‘율법이 그로 하여금 범죄케하였다’고 변명합니까?
이 변명은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습니까?

12절: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바울은 6장에서 그리스도의 살으심으로 이제 우리가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고(6:11), 이제 우리가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7:14에서는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고 합니다. 이 두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두 곳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18절: 우리 각 사람 안에 있는 이 선과 악의 내면적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25절: 우리가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길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해주십니까?
다시 말해서, 우리가 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합니까?(25전)
                                                  

로마서 8:1-17    생명의 성령의 법

1. 개요
    8:1-4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됨
    8:5-11      생명의 성령의 법을 순종하는 삶
    8:12-17    하나님의 영(=성령)이 인도하는 삶


2. 전개
6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고 그의 살으심과 연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몸을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의의 병기로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순종의 종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살펴볼 때, 우리가 원하는 바 하나님의 순종의 종으로 몸을 의의 병기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불의의 병기로 우리가 원치 않는 바 악을 행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7장).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였지만, 아직도 죄된 세상가운데 살아가고 있기 떄문입니다.

그러한 우리 자신을 발견하여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된 일을 생각하고 죄를 범할 때에 우리로 하여금 이를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생각게 하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시어 생명의 법으로 옮기셨고, 우리의 속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3. 본문 연구
1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은 다음에 정죄하에 놓일 수가 있습니까?

3절: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절: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하심”?

8절: “육신에 있는 자들”이라고 함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입니까?

10절: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12절: “빚진 자”라고 함은?.

13절: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은 어떠한 삶을 말합니까?

16절: 성령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십니까?

17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

                                                  
로마서 8:18-39    장차 나타날 영광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능력
1. 개요
    8:18-30    장차 나타날 영광
        18           본문의 주제 소개: 그리스도인의 현재의 고난과 장차 나타날 영광
        19-22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피조물의 탄식
        23-25     우리들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될 것,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
        26-27     성령도 탄식하며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심
        28-30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
    8:31-39    그리스도인의 삶의 능력


2. 전개
8장 17절 전반의 상승무드에서(“자녀이면 또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바울은 갑자기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받을 고난을 언급함으로써(“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본 8:18-30의 주제인 ‘현재의 고난과 장래의 영광’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18절은 18-30절의 주제절로서 왜 그리스도인이 현재의 고난을 잘 감당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언급합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19-27절에서 3중 탄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탄식하고(19-22절), 우리 인간이 탄식하며(23-25절), 성령께서 탄식으로 간구하십니다(26-27절). 바울은 낮은 탄식에서 높은 탄식의(피조물--인간--성령) 상승으로 전개해나갑니다. 24-25절에서 그는 우리의 종말적 소망(=eschatological hope)을 좀더 잘 설명하기 위하여 그의 논리의 진행을 잠시 중단합니다. 소망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고, 우리가 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랄 때 우리는 참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참고, 롬 5:3-4).

28-30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바라고 기다리는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이 불확실한 사건이 아님’을 천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또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31-39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능력을 설명합니다. 우리의 능력은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이때 우리에게는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으며, 우리를 송사할 자가 없으며, 우리를 정죄할 자가 없으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습니다.


3. 본문 연구
18절: 본문 18-30절에서 중요한 세 단어는 고난, 영광과 소망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이 세 단어를 정의하여 보십시오.

19절: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는 무슨 뜻입니까?
왜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합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입니까?

23절: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는 무엇입니까? (참고, 고린도후서 1:22; 5:5)

30절: 장차 나타날 영광에 들어가는 일은 미래의 사건인데, 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과거적인 표현을 썼습니까?

35절: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할 수 있습니까?
                                                   

로마서 9:1-29    토기장이와 진흙 한 덩이

1. 개요
    9:1-5      서론: 바울의 이스라엘에 대한 염려

    9:6-29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6-13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심
        14-18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19-29    토기장이와 진흙 한덩이: 이방인에 대한 자비


2. 전개
로마서의 교리적 부분은 사실상 8장에서 끝났습니다. 그리고 실천적 부분은 12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9-11장은 괄호안에 속하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9-11장에서 바울은 특별히 이스라엘의 현재의 처지와 장래, 곧 이스라엘의 구원계획에 대해서 다룹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의 마음 가운데는 늘 그의 민족 이스라엘에 대한 간구와 기도로 가득 차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9:1-5).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부르심은 약속의 자녀로서 부르신 것입니다(6-13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위에 절대적 주권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과 계획에 대하여 공평-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고자 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며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14-18절). 토기장이가 진흙 한덩이로 빚은 그릇에 절대적 주권을 갖고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그가 지으신 인간에 대해 절대적 주권을 갖고 계십니다(19-24절). 하나님은 이방인들도 긍휼의 그릇으로 여기셨는데, 이는 호세아의 글에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고 하는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십니다(25-29절).


3. 본문 연구
2절: 바울은 왜 큰 근심과 고통이 있었습니까?

6절: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고 한 뜻은 무엇입니까?

14-18절에서 바울은 왜 하나님의 공평-불공평을 이야기하지않고, 자비에 대해서 말합니까?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긍휼을 베푸시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긍휼을 베푸시지 아니하신다’는 예정론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19-24절에서 바울은 왜 토기장이와 진흙 한덩이의 비유를 들었습니까?

25-29절의 구약의 인용은 바울의 논지에 어떠한 역할을 합니까?
                                                

로마서 9:30-10:21    잘못된 열심과 믿음을 통한 구원
1. 개요
    9:30-33      이스라엘이 좇아간 행위를 통한 구원
    10:1-4        이스라엘의 잘못된 열심
    10:5-15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구원
    10:16-21    이스라엘이  선지자를 듣지않음


2. 전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려고 달려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우리의 열심이 잘못되어 있거나, 딴 길로 달려가고 있는 우리를 종종 발견합니다(9:30-33). 또, 그들은 하나님의 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가 아닌 자기의 의를 좇아갔습니다(10:1-4). 이를 위해서 그들은 열심을 내었지만, 이는 잘못된 열심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열심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우리에게서 아주 멀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고 하늘에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하시려고 스스로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려고 음부에 내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우리들의 부활의 구주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까이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꼐서 약속하여주신 대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게함’이심입니다(10:5-15).

그러나, 이스라엘은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 이미 예언된 이 메시야(=그리스도)를 믿지않고 제 갈 길로 달려갔습니다(10:16-21).


3. 본문 연구
우리 주위에 크리스찬이 아닌 사람 가운데 평균적인 크리스찬보다 더 도덕적이고, 더 윤리적이며, 세상의 기준으로 더 선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어떠한 말씀을 들을 것입니까?

9장 32절: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인에게 왜 ‘부딪힐 돌’입니까? ‘부딪힐 돌’이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10장 3절: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다”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6-7절을 풀어서 해석하면 무슨 뜻입니까?

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했는데, 여기서 ‘마음으로 믿는 것’은 무엇이며,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의와 구원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로마서 11:1-36    이스라엘의 장래(將來)

1. 개요
    11:1-10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거부하심은 최종적인 것이 아님
        11:1-6      남은 자의 구원
        11:7-10    그리스도를 거부한 이스라엘의 영적 결과

    11:11-24    이방인의 구원
        11:11-16    이스라엘의 그리스도를 거부함이 이방인의 부요함이 됨
        11:17-24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의 비유

    11:25-36    온 이스라엘의 구원
        11:25-3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화목하심
        11:33-36    지혜와 지식이 부요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2. 전개
하나님은 행위를 통한, 율법을 통한 구원을 얻으려고 ‘자기의 의의 길’을 달려간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않으셨다고 말씀합니다. 바알 신을 섬기던 자들이 왕성하던 엘리야의 시대--곧,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처럼 보이던 때--에도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않은 7,000인을 남겨두신 것같이, 현재에도 그리스도를 거부치않는 이스라엘인을 남겨두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심은 전체적인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께서 현재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같이 보이는 것은 이를 통하여 이방인에게 부요함이 되게 하심이며, 이방인을 부요하게 하심(=이방인의 구원)은 이스라엘로 시기나게하여 그들로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계획’에 들어오게 하기 위함이십니다.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이 자긍(自矜)할 것이 없는 것은 그들의 구원받음이 행위로서가 아니라, 은혜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참감람나무인 이스라엘에 접붙이심으로 영적 이스라엘이 되게 하시고, 참감람나무의 뿌리인 그리스도의 진액을 받아 살게하신 떄문입니다.

마지막 때, 참감람나무의 가지인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돌아오고, 하나님과 화목되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3. 본문 연구
3-4절에서 바울은 엘리야의 예를 왜 인용하였습니까?

12절: “저희의 넘어짐,” “저희의 실패”와 “저희의 충만함”을 설명하여 보세요.

15절: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를 설명하세요.

17절: “돌감람나무의 가지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접붙여졌습니까?

18절: 돌감람나무의 가지인 이방인이 자긍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25절: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라고 함은 무슨 의미입니까?

26절: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의미는 무엇이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로마서 12:1-21    그리스도인의 봉사: 거룩한 산 제사
1. 개요
    12:1-2      서론: 거룩한 산 제사
    12:3-8      봉사를 위한 은사
    12:9-21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무


2. 전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기본교리서라고 할 수 있는 이 로마서를 논리적으로 전개해나가고 있습니다. 본서는 편지인 까닭에 조직신학책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왜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의 구원을 준비하셨는가 설명합니다. 논리를 전개하기에 앞서서, 바울은 1:1-17에서 본서의 주제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음을 천명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왜 하나님의 의가 믿음을 통하여 나타나야 하는가를 설명합니다. 인간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는데, 스스로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으므로 그로부터 멀어지고 타락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됩니다(1:18-32). 하나님의 진노는 마지막 때 심판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정죄의 대상은 이방인뿐아니라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한 유대인도 포함합니다(2:1-3:20).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형상을 따라 지으신 인간을 사랑하시어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을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와지는 것’(=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의)입니다(3:21-31). 이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의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기 이전에, 아브라함의 가정이 할례를 받기 이전에, 그의 행함이 아닌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4:1-25; 참고, 창 15:6).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와진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결과가 따르는데, 즉,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 그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고, 환난중에도 즐거워하고, 장차 구원을 얻을 것이며, 따라서 현재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합니다(5:1-12). 이와같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첫 번째 아담을 통하여 죄와 사망이 모든 인간에게 들어온 것같이,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와 생명이 인간에게 들어왔습니다(5:13-21). 따라서,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을 것인데, 이는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납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죄와 사망의 종이요, 사망에 드려지는 불의의 병기였으나, 이제는 순종의 종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의의 병기입니다(6:1-23).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현재의 죄로부터 자유한 것은 아닙니다. 죄의 권세에서부터 벗어났지만, 우리는 육신의 연약함으로 여전히 죄를 지으며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죄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변명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께 더욱 의지하여 그의 도움을 구하여야 합니다(7:1-25). 그의 도움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나타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 우리는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으로 기다릴 때, 우리는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고난당할 때에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와 함께, 피조물과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8:1-39).

바울은 9-11장에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설명합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같이 보이나, 전부를 버리신 것이 아니고, 아주 버리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른 것은 이를 통하여 이스라엘로 시기케하여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들어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바울은 본장으로부터 실천적 측면을 말합니다. 12장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의 종(Servants)으로서의 자세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종인 우리들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할 것이며(12:1-2), 주님께로부터 받은 바 성령의 은사들을 교회 안에서 유익하게 잘 활용하고(12:3-8), 형제들을 사랑하고, 부지런하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고, 악을 선으로 갚는 생활을 할 것입니다(12:9-21).


3. 본문 연구
1절: “몸을 ... 산 제사로 드리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3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20절: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21절: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로마서 13:1-14    그리스도인의 시민권
1. 개요
    13:1-7        권세들에게 굴복함
    13:8-10      서로 사랑함
    13:11-14    마지막 때의 가까움: 빛의 갑옷을 입자


2. 전개
지난 공부에서 정리한 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17에서 대전제(=하나님의 의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남)를 1:1-8:39에서 상세히 교리적으로 설명합니다. 9-11장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입장과 계획을 설명합니다.

12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종의 자세를 언급한 바울은 13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시민권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립된 삶을 살고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 교회, 한 나라, 세계의 구성원입니다. 본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한 정부(=권세)와 이웃에 대한 의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며, 따라서 권세를 거스림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과 같다고 합니다. 권세를 두려워함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이요, 국가에 대한 의무를 잘 행함이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행하는 삶이라고 역설합니다(1-7절).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여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십계명의 제육계명으로부터 제십계명에 이르기까지 결국은 이웃사랑과 상통하는 것이기에, “사랑은 율법의 완성”(8, 10)이라는 결론을 도출합니다(8-10절).
이어서, 그는 마지막 때가 왔으므로 깨어서 근신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11-14절).


3. 본문 연구
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고 했는데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에서, 악한 권세(예: 네로정권, 히틀러의 나치정권등)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입니까?

1-7절에서 여러분은 악한 정부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를 풀어서 해석해 보세요.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12절: “빛의 갑옷을 입자”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14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라고 함은 무엇입니까?
                                                 

로마서 14:1-15:13     그리스도인의 형제사랑
1. 개요
    14:1-12      그리스도인의 자유
    14:13-23    그리스도인의 사랑
    15:1-6        그리스도인의 책임
    15:7-13      이방인을 향한 복음증거


2. 전개
14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형제·자매간의 사랑과 비판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떤 문제에 관해서는 명백한 답을 제시해주고 있으나,  또 어떤 다른 문제에 관해서는 그 답을 주지않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하므로,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해석한 대로 다른 사람이 행하지 않을 때 그를 비판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을 다른 날보다 더 거룩하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다 거룩하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라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술취하는 것은 죄일지 모르지만 약간 마시는 것은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답배 피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담배 피지 말라’는 말씀은 성경에 없으니까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 바울의 말씀은 성경에 분명하게 밝혀있지 않은 것으로 형제를 판단하고 비난하지 말라고 합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나에게 거리낌(=guilty feeling)이 있으면, 나는 양심으로 범죄하는 것이니 그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14:20). 그위에, 만일 나에게는 전혀 거리낌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를 바라보는 믿음이 나보다 약하거나 없는 형제나 자매에게 거리낌을 준다면, 나는 그들을 위하여 나의 행동을 삼가는 것이 좋다는 말씀입니다(14:21).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15장 1-13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예로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돌보아야 할 것을 말합니다. 우리 강한 자가 연약한 자를 받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의 모든 약함을 받으신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감싸주고 받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3. 본문 연구
14장 1-23절: 어떤 사람은 교회를 다니면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고, 지극히 폭력적이거나 애로틱한 영화를 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일날 물건을 사거나, 골프나 볼링을 즐깁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행동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1절: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는 무슨 뜻입니까?

4절: “남의 하인”이라고 함은?

15절: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식물(食物)로 망케 하지 말라”의 해석은 무엇입니까?

21절: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아름다우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에 있지 아니한데(17절), 왜 바울은 21절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름답다고 했습니까?

23절: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의 뜻은 무엇입니까?

15장 1-6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예를 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1-2절: 우리가 어떻게 함으로써 약한 자의 넘어짐을 막을 수 있습니까?

4-5절: 우리가 성경공부와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여야 할 까닭은 무엇입니까?
                                                   

로마서 15:14-16:27      개인적인 인사와 축도

1. 개요
    15:14-21    바울서신의 목적
    15:22-33    바울의 여행계획
    16:1-2        뵈뵈의 천거
    16:3-16      개인적인 문안
    16:17-20    이단에 대한 경고
    16:21-27    끝맺음의 기도와 찬양


2. 전개
이제 로마서는 편지의 끝부분에 다다랐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인간의 혈육보다 더 강한 결속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가족의 구성원인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피와 살을 나눈 형제·자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가 3:35)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먼저 그가 왜 로마에 있는 형제와 자매들에게 이 글을 쓰는지 설명합니다(15:14-21):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15절). 이어서 비울은 자신의 여행계획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는 먼저 예루살렘을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poor saints in Jerusalem)을 돕기 위하여 바울이 주도하여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교회들에서 모금한 돈을 전하고자 함입니다. 그후에 바울은 로마에 들른 다음 서바나로 가겠다고 합니다(15:22-33).

16장에서 우리는 바울의 자상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믿음의 자매 뵈뵈를 개인적으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와 자매들에게 천거합니다(16:1-2). 또, 그는 믿음의 동역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함으로써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에게 얼마나 귀중한 사람들인가 알게해 줍니다(16:3-16).

바울은 교회 내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경고합니다(16:17-20). 이어서, 바울은 기도와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글을 맺습니다.


3. 본문 연구
15장
14-21절: 바울이 로마서를 쓴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로마서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봅시다.

22-33절: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롬 15:25-27; 고전 16:1-4; 고후 8, 9장; 갈 2:9-10)
구약의 예언들에 비추어 그가 기대한 바는 무엇입니까?(이사야 2:2-4, 60:1이하; 미가서 4:1-3)

16장
17-20절: 어떠한 사람이 교회 안에서 분열과 분쟁을 일으킵니까?

22절: 바울의 편지를 왜 더디오가 대서(代書)했습니까?

25-27절: 사도 바울은 이 마지막 절에서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처음부터 나중까지의 계획을 어떻게 요약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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