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26, 2026

불확실성의 경제학

불확실성의 경제학

 

불확실성(不確實性)하의 의사결정

앞에서 언급했듯이, 경제학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사결정이 항상 확실성(certainty)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때로 불확실성(uncertainty)이나 위험(risk) 아래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경제학에서 위험은 어떤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어느 정도 측정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의미하는 반면, 진정한 의미의 불확실성은 그 발생 가능성을 측정하기 어려운 경우를 말한다.

사실 우리의 삶은 확실하고 안전하다기보다 불확실성과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며,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을 미리 알 수도 없다. 더욱이 사람이 죽은 후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인간의 지식과 경험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는다. 그리스도인은 죽은 후에는 영으로 낙원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부활한 영적인 몸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있게 될 것을 믿는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회개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으며(눅 23:43), 자신을 믿는 사람에게 영생이 있음을 약속하셨다(요 3:16; 5:24). 또한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고 다시 와서 자신이 있는 곳에 그들도 함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4:2–3).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불확실성과 위험은 존재하지만,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이 불확실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지만, 궁극적인 미래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고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은 불확실성과 위험 가운데서 경제적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중요한 삶의 토대가 된다.

성경에서의 불확실성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자신에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고 있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창 2:17). 따라서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과 죽음에 대한 경고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열매를 먹은 결과로 자신과 하와, 그리고 이후의 인류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될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하나님의 경고는 들었지만, 죄와 죽음이 실제로 자신의 삶과 인류에게 가져올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아담이 자신의 선택으로 인하여 자신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며, 그 결과가 이후의 인류에게까지 미치게 될 것을 미리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면 그의 선택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는 하와가 그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말렸을 것이며, 자신도 그것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을 때 그녀와 함께 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더욱 경계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담의 선택은 하나님의 명령과 경고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모든 결과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의사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아는 대홍수가 실제로 일어날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장차 홍수가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아직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이었다. 노아는 500세쯤 되었을 때 방주를 짓기 시작하여(창 5:32; 6:10), 600세에 홍수를 맞았으므로(창 7:11), 약 100년 동안 언제 홍수가 일어날지 알지 못한 채 인내하며 방주를 지었다고 볼 수 있다.

히브리서는 이러한 노아의 믿음에 대하여 히브리서 11장 7절에서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고 말한다.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약 한 세기에 걸쳐 인내하며 방주를 준비하였으며, 그 결과 자신과 가족을 구할 수 있었다.

노아의 이야기는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했을 때 믿음이 우리의 의사결정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 준다. 노아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알고 행동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 수 없는 미래를 하나님의 말씀에 맡기고 믿음으로 행동하였다. 이처럼 성경적 믿음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모두 제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끝까지 인내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과 민족과 복이라는 세 가지 약속을 주셨다(창 12:1-3).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후손에게 이 세 가지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처음부터 확실하게 알고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알지 못했으며 때로는 그 약속의 성취에 대하여 의문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5장 1절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는 아직 자식이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호소하였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5장 2절에서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어서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라고 말하였다(창 15:3). 여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데 대한 아브라함의 답답함과 의문이 나타나 있다.

아브라함의 위대함은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을 더 많이 알고 있었다거나 그의 행동이 언제나 완전했다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앞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믿고 따랐다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의 이러한 믿음을 잘 보여 준다. 히브리서 11장 8절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시험하셨을 때에는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고 말한다(히 11:17).

아브라함이 자신의 고향을 떠난 결정과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한 결정은 모두 미래의 결과를 미리 알고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그는 어디로 가게 될지 알지 못한 채 떠났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상태에서도 이삭을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중요한 의사결정들은 불확실성 아래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믿음은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믿음이었다.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갈렙, 라합, 사무엘, 다윗을 비롯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미래에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께 순종하였다. 그들의 믿음은 미래의 모든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불확실성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며 이 세상에서의 삶이 어떻게 끝날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고, 미래를 모두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불확실성이 없는 삶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이론

경제학에서 게임이론(game theory)은 한 개인이나 기업의 의사결정 결과가 다른 상대방의 행동이나 의사결정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 확실히 알지 못할 때 각 경제주체가 어떻게 전략적으로 행동하고 의사결정을 하는지를 설명하고 연구한다.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는 게임이론의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게임 가운데 하나이다. 이 게임에서는 두 명의 합리적인 경기자(player)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도록 각각 분리된 방에 놓인 상태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의사결정을 내린다. 다시 말하면, 두 경기자(players)는 상대방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각자의 선택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결과들을 고려하여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처럼 각 경기자가 서로 협의하거나 공동으로 전략을 결정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전략을 선택하는 게임을 비협조적 게임(noncooperative game)이라고 한다.

나는 대학원에서 게임이론을 공부하던 시절부터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의 불확실성하의 의사결정을 게임이론을 사용하여 해석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성경을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논의한 학자들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 나는 다음의 몇 가지 성경의 사례들을 내가 직접 작성한 보수표(payoff table)를 사용하여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1.    아담과 하나님

아담과 하나님 사이의 게임에 대한 보수표(payoff table)를 구성하기 위하여, 나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과 하나님의 약속이나 명령이 성취되는 경우와 성취되지 않는 경우를 선험적 가정(a priori assumption)으로 설정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약속이나 명령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를 가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자신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실 수 있다는 신학적 주장이 아니라, 게임이론의 분석을 위하여 아담의 의사결정 시점에서 가능한 경우들을 가정한 것이다.

 

하나님

성취

불성취

 

 

아담

순종

(+∞, +∞)

(-α1, +θ1)

불순종

(-∞, -∞)

(+α2, -θ2)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창세기 2장 16절 하반절–17절에 나타나 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아담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이 성취되는 경우,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계속 생명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아담의 보수(payoff)는 무한대(+∞), 또는 극히 큰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도 아담의 순종을 매우 기뻐하시므로, 하나님의 보수 역시 무한대(+∞), 또는 극히 큰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아담이 하나님께 순종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 즉 하나님께서 아담을 죽음으로 벌하지 않으시지만 아담에게 영원한 생명도 주어지지 않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아담은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므로, 그의 보수(payoff)를 -α₁으로 나타낼 수 있다. 이 값은 아담의 성향에 따라 어떤 음수에서부터 음의 무한대(-∞)까지 달라질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명령이나 약속을 성취할 의도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아담이 자신의 명령에 순종한 것 자체는 기뻐하신다. 따라서 이 경우 하나님의 보수는 +θ₁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이는 어떤 양의 값을 의미한다.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이 성취되는 경우, 아담은 반드시 죽게 되어 에덴동산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아담의 보수(payoff)는 매우 큰 음수 또는 음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불순종을 매우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하나님의 보수 역시 음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참조, 창 6:6–7).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 즉 하나님께서 아담을 벌하지 않으시지만 아담에게 영원한 생명도 주어지지 않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어느 정도의 지식을 얻게 되므로, 그의 보수(payoff) α₂는 어떤 양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명령이나 약속을 성취할 의도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아담의 불순종 자체는 기뻐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이 경우 하나님의 보수 -θ₂는 어떤 음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담은 어떤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위의 보수표에서 볼 수 있듯이, 아담에게는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이든 관계없이 항상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우월전략(dominant strategy)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결정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믿고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령하셨지만, 아담은 그 명령을 신뢰하고 따르는 대신 불순종하는 결정을 내렸다. 창세기 3장 6절에서 아담은 하와가 건네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 그 결과 아담은 그의 아내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으며(창 3:23–24), 생명나무에 접근하여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잃게 되었다(창 3:22–24).

이러한 아담의 선택은 불확실성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모든 결과를 미리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신뢰함으로써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단순히 자신에게 가장 큰 보수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선택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

2.  아브라함과 하나님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의 게임에서도 나의 선험적 가정(a priori assumption)은 앞의 경우와 동일하다. 즉,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될 수도 있고 성취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가정한다.

 

하나님

성취

불성취

 

 

아브라함

믿음

(+∞, +∞)

(-α1, +θ1)

불신

(-∞, -∞)

(+α2, -θ2)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창세기 12장 1–3절에 나타나 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경우,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은 가나안 땅을 얻게 되고 큰 민족을 이루며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보수(payoff)는 매우 큰 양수 또는 양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의 순종을 매우 기뻐하시므로, 하나님의 보수 역시 양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아브라함은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므로, 그의 보수(payoff) -α₁은 아브라함의 성향에 따라 어떤 음수에서부터 음의 무한대(-∞)까지 달라질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성취할 의도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아브라함이 자신의 말씀에 순종한 것 자체는 기뻐하신다. 따라서 이 경우 하나님의 보수 +θ₁은 어떤 양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경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과 큰 민족과 복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며, 그의 보수(payoff)는 매우 큰 음수 또는 음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불순종을 매우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하나님의 보수 역시 음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잃지 않게 된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날 필요가 없었으며, 고향에 그대로 머물면서 다른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아브라함의 보수(payoff) α₂는 어떤 양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성취할 의도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아브라함의 불순종 자체는 기뻐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이 경우 하나님의 보수 -θ₂는 어떤 음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어떤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앞에서 살펴본 아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어진 보수표에서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의도와 관계없이 항상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우월전략(dominant strategy)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결정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얼마나 믿고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향을 떠났으며(창 12:4; 히 11:8), 이후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믿음으로 행동하였다. 특히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에 관하여 약속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 15:6). 또한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고 순종하였다(히 11:17–19).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후손들을 큰 민족으로 이루셨으며,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고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풍성한 복을 베푸셨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미래의 결과를 모두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사결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고 불순종하는 결정을 내렸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대조를 이룬다.

3.  사람(Person)과 하나님

일반적인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게임에서는 앞에서 설정했던 선험적 가정(a priori assumption)을 제거할 수 있다. 즉,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와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예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게임이론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주장은 성립하지 않게 되며, 그 경우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위하여 바친 시간과 삶은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바울도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소망이 헛된 것이 된다고 말한다(고전 15:16–19).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분석의 대상에서 제외하고자 한다.

 

예수 그리스도/하나님

천국/지옥

천국/지옥 없음

 

 

사람

믿음

(+∞, +∞)

(-α1, +θ1)

불신

(-∞, -∞)

(+α2, -θ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또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경우, 그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그 사람의 보수(payoff)는 양의 무한대(+∞)이다.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의 믿음과 순종을 매우 기뻐하시므로, 하나님의 보수 역시 양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예수님(또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 즉 천국도 지옥도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 경우 그 사람은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므로, 그의 보수(payoff) -α₁은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 어떤 음수에서부터 음의 무한대(-∞)까지 달라질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성취할 의도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사람이 믿음을 가진 것 자체는 기뻐하신다. 따라서 이 경우 하나님의 보수 +θ₁은 어떤 양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예수님(또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경우, 그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가게 된다. 따라서 그 사람은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므로 그의 보수(payoff)는 음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불신을 매우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하나님의 보수 역시 음의 무한대(-∞)에 가까운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예수님(또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 그 사람은 아무것도 잃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세속적인 삶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으므로, 그의 보수(payoff) α₂는 어떤 양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성취할 의도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사람의 불신 자체는 기뻐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이 경우 하나님의 보수 -θ₂는 어떤 음의 값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은 어떤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앞에서 살펴본 아담과 아브라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어진 보수표에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의도와 관계없이 항상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우월전략(dominant strategy)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의 결정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믿고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불확실성 아래에서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믿음과 불신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 선택일까?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입게 되는 최악의 손실은 무엇일까? 그 손실에는 예배와 그 밖의 교회 활동에 사용한 시간과 교회에 드린 헌금 등을 포함할 수 있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예배와 헌금은 단순한 경제적 비용이나 손실로만 볼 수 없지만, 여기서는 불확실성 아래에서의 선택을 분석하기 위하여 이를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는데 실제로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이 입게 되는 최악의 손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물질적 손실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죽음과 그에 따른 고통일 것이다. 따라서 두 선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비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선택에서 감수해야 할 수 있는 손실은 제한적인 반면, 믿지 않는 선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불확실성 아래에서 최악의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의사결정의 원리를 적용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단순히 천국과 지옥의 가능성을 계산하여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제적 선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 있으며, 이러한 의사결정 분석은 불확실성 가운데 믿음과 불신의 선택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의 차이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과 연관하여 살펴본 불확실성의 경제학과 게임이론은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제시하는가?

첫째, 우리는 불확실성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완전히 알 수 없으며, 자신이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노아와 아브라함을 비롯한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도 미래의 결과를 모두 알고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의사결정을 하였다. 오늘날의 사람들도 직업, 사업, 투자, 결혼, 자녀교육, 건강 등 삶의 중요한 문제에서 미래를 완전히 알지 못한 채 결정을 내려야 한다.

둘째, 불확실성 아래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선택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뿐만 아니라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손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게임이론의 보수표가 보여 주듯이, 각각의 선택에는 서로 다른 결과와 보수(payoff)가 따를 수 있다. 따라서 합리적인 사람은 가장 좋은 결과만 기대하기보다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수 있는 여러 결과, 특히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손실도 고려해야 한다.

셋째, 인간의 의사결정은 다른 사람들의 선택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게임이론이 보여 주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가정과 직장, 기업과 시장, 교회와 사회에서 내가 내린 결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다른 사람들의 결정 또한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 자신의 선택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져올 결과도 고려해야 한다.

넷째, 성경은 불확실성 속에서 믿음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노아와 아브라함은 미래의 모든 결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한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미래를 앞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행동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믿음은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도 결정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마지막으로, 불확실성의 경제학과 게임이론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하나님의 존재와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 영생과 죽음 이후의 삶에 관한 문제는 경제학이나 게임이론만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문제가 참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면, 그것을 자신의 삶과 무관한 문제로 여기기보다는 각각의 선택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불확실성의 경제학은 미래를 모두 알 수 없는 인간에게 완전한 정보가 주어질 때까지 결정을 미루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도 가능한 결과와 위험을 신중하게 살펴보고,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며, 자신이 믿는 가치와 신앙에 따라 책임 있게 의사결정을 하며 살아갈 것을 제시한다.



[1] Bob Becking, “Biblical Games: Game Theory and the Hebrew Bible,” 『Ars Disputandi』, Vol. 3 (2003), 91–93. Becking은 이 논문에서 Steven J. Brams의 『Biblical Games: Game Theory and the Hebrew Bible』 (Cambridge, MA, 1982)을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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