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
저자는 목회자이자 교수이다. 미국에서 한인교회를 목회하면서 교회와 신학교에서 성경과 성서신학을 가르쳤으며, 여러 기독교 대학교에서 경제학, 금융학, 성경신학을 가르쳐 왔다. 한국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버지니아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프린스턴신학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학위를, 드루대학교(Drew University)에서 신약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는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로마서 강해』(1999),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에베소서·빌립보서 강해』(1999),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요나서 강해』(2000),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외에는: 고린도전서 강해』(2000), 『약할 때 곧 강함이라: 고린도후서 강해』(2001), 『다른 복음은 없나니: 갈라디아서 강해』(2005), 『바울의 생애, 서신들과 신학』(2013), 『Economics in the Bible』(2025), 『Paul’s Life, Epistles, and Theology』(2025) 등이 있다.
『성경에서 경제를 배운다』 책 소개
『성경에서 경제를 배운다』는 “성경에서 경제에 관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성경은 현대적인 의미의 경제학 교과서는 아니지만,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 관리하고, 무엇을 선택하며, 다른 사람들과 어떠한 경제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경제학이 인간과 여러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성경 역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의사결정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이 책의 중심 개념은 신약성경의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 oikonomia)이다. 이 말은 본래 가계 또는 집안을 관리하는 것을 의미하며 오늘날 ‘경제(economy)’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 저자는 이 개념을 바탕으로 성경의 경제를 하나님의 가계와 인간의 가계를 관리하는 활동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모든 것의 궁극적인 소유자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재산과 소득, 노동과 재능을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것이 이 책의 기본적인 관점이다.
이 책은 이러한 성경의 경제를 네 가지 관점에서 살펴본다. 먼저 ‘하나님의 경제’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계를 다스리고 관리하시는 활동을 거시경제학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이어 개인과 가계의 경제에서는 노동, 소득, 소비, 저축, 투자, 재산과 부채 등 일상적인 경제적 의사결정을 미시경제학적 관점에서 다룬다. ‘복음 전도의 경제’에서는 바울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위탁된 복음 전도를 하나님의 가계를 다른 민족과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이를 국제경제학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에서는 개인과 가정, 교회와 사회, 기업과 국가의 경제활동에서 정직과 공정, 겸손과 검소함, 근면과 신실함, 나눔과 이웃 사랑이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지를 논의한다.
따라서 『성경에서 경제를 배운다』는 단순히 성경 속에서 현대 경제학의 개념을 찾아내는 책이 아니다. 경제의 궁극적인 주인이 누구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누구의 것이고,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일하고 소유하고 소비하며 나누어야 하는가를 성경과 경제학의 관점에서 함께 묻는 책이다. 우리의 경제생활 역시 신앙생활의 한 부분이며, 모든 경제적 의사결정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경제에 참여하는 삶이라는 것이 이 책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이다.
목차
머리말 (PREFACE)
시작하는 장 (PROLOGUE)
제 1장 성경에서 경제는 무엇인가? (What is the Economy in the Bible?)
제 1부 하나님의 경제 (THE ECONOMY OF GOD)
제 2장 하나님의 경제란 무엇인가? (What is the Economy of God?)
제 3장 양식 (Food)
제 4장 토지 (Land)
제 5장 노동 (Labor)
제 6장 십일조와 세금 (Tithes and Taxes)
제 7장 대출, 이자와 부채 (Loans, Interest, and Debts)
제 8장 부, 빈곤과 소득 불평등 (Wealth, Poverty, and Income Inequality)
제 9장 공산주의와 공생주의 (Communism versus Commonism)
제 10장 평균의 경제학 (Economics of Equality)
제 2부 가계의 경제 (THE ECONOMY OF A HOUSEHOLD)
제 11장 가계의 경제란 무엇인가? (What is the Economy of a Household?)
제 12장 가계의 청지기 (A Steward of a Household)
제 13장 기업가 정신과 자원의 사용 (Entrepreneurship and the Use of Resources)
제 14장 효율성과 형평성 (Efficiency versus Equity)
제 15장 시장 (Markets)
제 16장 불확실성의 경제학 (Economics under Uncertainty)
제 17장 환경 경제학 (Environmental Economics)
제 3부 복음 전도의 경제 (THE ECONOMY OF EVANGELISM)
제 18장 복음 전도의 경제란 무엇인가? (What is the Economy of Evangelism?)
제 19장 복음 전도에서의 교회의 역할 (Role of the Church in Evangelism)
제 20장 하나님의 가계의 확장 (Expansion of God’s Household)
제 4부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 (CHRISTIAN ECONOMIC ETHICS)
제 21장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란 무엇인가? (What is Christian Economic Ethics?)
제 22장 다양한 관계에서의 경제윤리 (Economic Ethics in Different Relations)
제 23장 자본주의에서의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 (Christian Economic Ethics in Capitalism)
마치는 장
제 24장 실낙원(失樂園)의 회복 (Restoration of the Lost Paradise)
부록 (APPENDIX)
하나님의 이름과 특성 (Names/Characteristics of God)
참고문헌 (BIBLIOGRAPHY)
머리말
많은 사람은 경제학과 성경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그 관계가 매우 적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내가 경제학과 성서학을 공부했다고 말하면, 서로 상당히 다른 두 분야를 왜 함께 공부했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내가 이전에 공부했던 경제학을 그만두고 목회자가 되기 위해 성서학을 공부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성경이 경제에 관하여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경제학을 경제 주체들이 일상생활에서 내리는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경제 주체란 개인, 기업, 시장, 정부 등을 말한다.
미시경제학은 개인이 자신과 가계의 만족, 곧 효용(utility)을 최대한 높이기 위하여 어떤 의사결정을 하는지, 그리고 기업이 이윤을 최대한 높이기 위하여 어떤 의사결정을 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개인과 가계는 한정된 소득과 자원을 가지고 무엇을 얼마나 소비하고 저축할 것인지 결정하며, 기업은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고 어떤 가격에 판매할 것인지 등을 결정한다.
거시경제학은 국가 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적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정부는 고용과 실업, 인플레이션, 경기변동, 경제성장과 같은 여러 경제 상황에 직면하여 어떤 정책을 선택하고 시행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학은 개인과 가계에서부터 기업과 시장, 정부와 국가 전체에 이르기까지 여러 경제 주체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노미아 (영어로는 economy)는 집(=오이코스)과 관리 또는 경영(=노미아)의 복합어이다. 즉, 문자적 의미는 가계의 경영 또는 관리이다. 신약성경에서 오이코노미아는 세 가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첫째는 ‘가계 혹은 가사의 경영, 다른 사람의 소유에 대한 경영, 관리 및 감독’ 또는 ‘청지기의 직무’를 의미한다 (눅 16:1-4). 즉, 하나님께로부터 달란트를 부여받은 각 청지기의 달란트의 경영, 가계의 경영을 의미한다. 각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청지기(=오이코노모스: 가계 경영을 맡은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소유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고, 따라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에 따라 ‘나눔의 사역’을 감당할 것이다.
둘째로, 오이코노미아는 ‘복음 증거의 사명’ 혹은 ‘복음 증거를 위한 청지기의 직분’을 의미한다 (고전 9:17). 하나님께로부터 복음 증거란 최고의 사명을 맡은 크리스천이 개인으로 또는 공동으로 이루어나가야 할 일이다.
셋째로, 오이코노미아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예비된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경륜(經綸, dispensation, plan)’ 이란 뜻이다 (엡 1:9-10). 즉, ‘하나님의 경제 또는 경제계획’이다. ‘하나님의 경제계획’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구원이다. 이 시대 상황 가운데 존재하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교회의 경제계획’도 인간 구원을 목표로 함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때 영혼의 구원이 물론 일차적인 목표이지만, 육체적 경제적 빈곤으로 신음하는 이웃을 구원함도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신약성경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경제’를 그의 구원계획에 한정하고 있지만,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경제’는 그의 가계에 속한 그의 백성들을 위한 다스리심과 의사결정의 모든 행위들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경제’는 창세기 1장 28절에서 보는 바 대로, 그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으신 사람들에 대한 축복으로부터 시작한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나는 성경을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경제학 교과서’라고 본다. 성경은 ‘평균의 경제원리’를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 9절 이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9-15절)고 함으로써 ‘평균의 경제원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평균의 경제원리’는 이미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공급하신 하나님의 뜻에서 찾을 수 있다(출 16:18).
빈들에서 5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은 단순한 이적이 아니라, 교회가 감당해야 할 나눔의 사역을 보여주신 예이다. ‘평균의 경제원리’는, 바울의 예에서도 그러했듯이, 나눔의 사역을 통해서 실천될 수 있다. 예수님은 이 나눔의 경제사역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하기를 원하신다. 마태복음 14장 16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명하셨고, 19절에 보면, “…… (예수님이)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라고 함으로써 제자들을 나눔의 사역에 동참시키셨다. ‘평균의 경제원리’는 초대교회에서도 적용되었다. 믿는 사람들이 물건을 서로 나누고 통용할 때 그들 가운데 핍절한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행전 2:44-47, 4:32-35).
경제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나는 경제학에 대한 나의 지식과 성경에 대한 이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가르침을 서로 연결하고자 한다. 경제학과 성경은 서로 동떨어진 분야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공통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전한 ‘하나님의 경제’가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 원리들을 일상생활의 경제적 선택과 의사결정에 적용할 수 있는 길을 계속해서 찾아가고자 한다.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제 원리를 이해하고, 그 원리에 따라 자신의 가계와 경제생활을 더욱 지혜롭게 관리하며 살아가는 데 도움을 얻기를 바란다. 이 책에서는 별도로 다른 성경 번역본을 명시하지 않는 한 개역개정(改易改訂)을 사용한다.
시작하는 장
제 1장 성경에서 경제는 무엇인가?
경제의 일반적 의미
경제의 어원적 의미
경제(經濟)라는 단어는 ‘경세제민’(經世濟民), ‘경국제세’(經國濟世), 또는 ‘경국제민’(經國濟民)의 약칭이다. 이 용어는 중국 고전의 오경(五經) 가운데 하나인 『서경』(書經)이나 『장자』(莊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의미는 정부가 국가의 전반적인 업무와 문제들(정치·경제·사회적 영역을 포함)을 잘 관리하고 통치함으로써 백성을 구제하고 그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번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경제(經濟)라는 단어는 중국, 한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널리 사용되어 왔으며, 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와 행정의 영역까지도 포함한다. 즉, 이는 정부가 국가를 다스리고 국민을 번영하게 하기 위해 수행하는 전반적인 활동, 계획, 또는 통치 방식을 의미한다.
헬라어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는 영어 ‘economy’에 해당하는 말이다. ‘오이코노미아’는 ‘오이코스’(οἶκος, 집·가정)’와 ‘노미아’(νομία, 관리)가 결합된 합성어로, 본래 ‘가정이나 가계를 관리하는 일’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제(economy)라는 개념은 원래 가정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또한 ‘오이코노모스(οἰκονόμος)’는 가정이나 가계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람, 곧 청지기 또는 가정 관리자를 가리킨다.
‘오이코노미아(oikonomia, οἰκονομία)’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총 아홉 번 등장한다. 누가복음에 세 번(16:2, 3, 4), 고린도전서에 한 번(9:17), 에베소서에 세 번(1:9; 3:2, 9), 골로새서에 한 번(1:25), 그리고 디모데전서에 한 번(1:4) 사용되었다.
예수니께서 누가복음 16장 2–4절에서 “주인이 그(청지기)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오이코노미아)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청지기의) 직분(오이코노미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오이코노미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였더라”고 말씀하신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9–10절에서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오이코노미아)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한다. 에베소서 3장 2절과 9절에서는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오이코노미아)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오이코노미아)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한다. 또한 골로새서 1장 25절에서 바울은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오이코노미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디모데전서 1장 4절에서는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오이코노미아)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라고 말씀한다.
‘오이코노미아’의 신약성경에서의 의미들
첫째, 신약성경에서 ‘오이코노미아’는 청지기직(stewardship) 또는 가계를 관리하는 직분을 의미한다(눅 16:1–4).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한 사람씩 불러 그들의 빚을 장부에서 줄여 주었다. 후에 주인은 불의한 청지기가 한 일을 알고 그의 영리함을 칭찬하였다(눅 16:8). 그러나 이것은 불의한 청지기가 옳은 일을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냈다는 의미이다. 우리 각 사람은 하나님의 청지기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하는 일은 하나님을 위한 청지기직이다.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우리는 정직하고 신실해야 한다.
둘째, ‘오이코노미아’는 복음을 전파하거나 선포하는 사명 또는 경륜(dispensation)을 의미한다(고전 9:17; 엡 3:2; 골 1:25).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7–18절에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 또는 위탁받은 직분을 ‘오이코노미아’라고 부른다. 또한 에베소서 3장 2절에서 ‘오이코노미아’는 에베소 사람들을 포함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 자신의 사명을, 이방인들을 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청지기직 또는 위탁받은 직분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자신의 사명 또는 청지기직을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로 받아들였다. 그는 골로새서 1장 25절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자신의 사도직에 관하여 말하면서, 그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직분 또는 경륜(the divine office or commission)이라고 했다. 사도(apostle)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사람”을 의미하며,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언급할 때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할 자신의 의무와 사명을 상기한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자신의 사명 또는 위탁받은 직분을 규정하면서 ‘오이코노미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는 자신의 사명이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셋째,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오이코노미아’는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plan) 또는 경륜(dispensation)을 의미한다(엡 1:9–10; 3:2, 9; 딤전 1:4). 바울은 에베소서 1장 9–10절과 3장 9절에서 ‘오이코노미아’를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하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또는 경륜이라고 말한다. 이 계획은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었으나, 정한 때가 이르자 이제 계시되었다. 에베소서 3장 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은 바울이 선포하도록 위탁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 계획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3–4절에서도 ‘오이코노미아’를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하며, 이는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훈련(divine training), 곧 하나님의 계획, 경륜 또는 질서를 의미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를 하나님의 정한 때에 그의 백성, 곧 믿음의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 또는 계획(혹은 경륜)으로 해석하거나 이해하고 있다.
경제학의 일반적 정의
경제(economy)와 마찬가지로 경제학(economics)도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경제학은 “가계, 기업, 시장이나 산업, 정부, 그리고 국가 전체와 같은 여러 경제 주체들이 어떻게 경제활동을 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의 욕구는 무한하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가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여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나누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좀 더 간단히 말하면, 경제학은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사람들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가 경제학을 공부할 때에는 먼저 가계의 경제를 다룬다. 가계가 소득을 어떻게 사용하고 무엇을 소비하는지를 분석하여, 한정된 소득과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를 연구한다. 또한 기업의 경제를 연구한다. 기업이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고 어떻게 비용을 관리하는지를 분석하여, 기업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이윤을 높일 수 있는지를 알아본다. 그리고 국가 전체의 경제도 연구한다. 총수요와 총공급, 경제성장, 정부의 경제정책 등을 분석하여, 정부가 인플레이션과 실업 같은 경제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지를 연구한다.
결국 경제학은 가계에서부터 기업과 정부, 그리고 국가 전체에 이르기까지,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현명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원하는 목표를 이룰 것인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학은 일반적으로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으로 나뉜다.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은 가계와 기업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시장에서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그리고 정부가 그들의 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분야이다. 다시 말하면, 개인이나 가계, 기업, 산업, 또는 정부의 각 부문이 어떤 경제적 결정을 내리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거시경제학(Macroeconomics)은 국가 경제 전체를 연구하는 분야로서, 인플레이션, 실업, 경제성장과 같은 문제들을 주로 다룬다. 다시 말하면, 개별 가계나 기업이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적 결정과 그 결과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경제학을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즉, 가계, 기업, 시장이나 산업, 그리고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미시경제학이라면, 국가 전체의 경제와 관련하여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거시경제학이다.
성경 속에서의 경제학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제’를 뜻하는 헬라어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 oikonomia)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 가계를 관리하는 일, 곧 관리 또는 청지기직을 의미한다. 둘째, 사도 바울에게 맡겨진 복음을 전하고 널리 알리는 사명, 위탁받은 임무, 직무 또는 직분을 의미한다. 셋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또는 경륜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이코노미아(oikonomia)의 문자적인 뜻인 “가계를 관리하는 일”은 이처럼 서로 다르게 번역되는 의미들을 모두 포괄할 수 있다.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자신에게 맡겨진” 청지기의 직분를 수행했다(엡 3:2; 골 1:25). 다시 말하면,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널리 알림으로써(고전 9:17; 엡 3:2; 골 1:25) 하나님의 가계를 관리하며, 하나님의 가계가 이방인들, 곧 다른 민족과 사람들에게까지 확장되도록 하는 일을 맡았다. 한편, 하나님은 때가 차면 이루실 자신의 계획, 곧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자신의 백성에게 알려 주심으로써(엡 1:9; 3:2, 9; 딤전 1:4) 자신의 가계를 친히 관리하신다.
성경에서 경제에 관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경제학이란 무엇인가? 신약성경에서 경제를 의미하는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 oikonomia)의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성경에서의 경제학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개인이 자신에게 맡겨진 가계를 관리하는 청지기직이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계, 곧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고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경제이며, 셋째는 바울과 모든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가계를 다른 민족과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하는 청지기직이다.
이러한 세 가지 차원은 현대 경제학의 여러 관점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다. 먼저 개인이 자신의 가계를 어떻게 관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며 의사결정을 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미시경제학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계, 곧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고 관리하시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하나님의 가계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거시경제학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울과 모든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가계를 다른 민족과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하나님의 가계가 민족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확장된다는 점에서 국제경제학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관점에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의사결정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이 개인, 가계, 기업, 정부와 같은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성경에서의 경제학 역시 하나님과 인간의 가계를 둘러싼 의사결정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께서 그의 가계 전체를 다스리시고 관리하시는 것은 거시경제학적 측면에서, 개인이 자신의 가계를 관리하기 위하여 내리는 의사결정은 미시경제학적 측면에서, 그리고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가계를 다른 민족과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하는 것은 국제경제학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 관점이 더 필요하다. 개인과 가계, 기업과 교회, 그리고 사회와 국가가 실제 경제생활에서 어떠한 원리와 기준에 따라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경제윤리학적 관점에 해당한다. 경제적 의사결정은 단순히 효용이나 이윤을 극대화하는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성경의 관점에서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어떻게 관리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성경의 경제학은 오이코노미아, 곧 가계의 관리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가계와 인간의 가계에 관한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가계 전체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거시경제학적 관점, 개인의 가계를 관리하는 미시경제학적 관점,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가계를 다른 민족과 사람들에게까지 확장하는 국제경제학적 관점, 그리고 이 모든 경제활동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른 의사결정을 추구하는 경제윤리학적 관점이 서로 연결되어 이 책의 전체적인 틀을 이룬다.
이 책의 구성과 계획
이 책의 제1부에서는 ‘하나님의 경제’를 다룬다. 이는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경제를 이해하고, 그와 관련된 여러 거시경제적 주제들을 다루는 것이다. 바울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경제”(ἡ οἰκονομία τοῦ Θεοῦ)를 말할 때 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 또는 구원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야 할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제’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나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구약성경과 복음서, 특히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선포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경제에는 자신의 백성을 다스리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여러 활동도 포함된다. 따라서 제1부에서는 하나님의 다양한 통치 활동과 가르침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연구한다. 여기에는 일용할 양식, 토지, 대출, 십일조와 세금, 부, 가난을 비롯한 여러 거시경제적 주제들이 포함된다.
이 책의 제2부에서는 개인의 가계 경제를 다룬다. 이는 미시경제적 관점에서 가계의 경제를 이해하고, 그와 관련된 여러 미시경제적 주제들을 다루는 것이다. 개인의 가계는 하나님의 가계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이다. 가계를 구성하는 각 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가계를 관리하는 관리자이자 청지기로서, 가계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결정을 내린다. 따라서 제2부에서는 각 개인이 자신의 가계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여러 활동과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적 의사결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에는 달란트 또는 돈, 노동,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고 관리할 것인가와 같은 미시경제적 주제들이 포함된다.
이 책의 제3부에서는 복음 전도의 경제 또는 교회 전체의 경제를 다룬다. 복음 전도의 경제란 하나님의 경제를 여러 나라와 민족에게까지 확장하는 우리 모두의 사명을 의미한다. 이는 국제경제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난 경험을 세 차례 기록하고 있다(행 9:3–19; 22:6–16; 26:9–23). 사도행전 26장 15–18절에서 예수님은 바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 26:15–18). 바울 자신은 갈라디아서 1장 15–16절에서 이 경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것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특히 그의 사도직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의문을 받거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사도’라는 말은 헬라어 동사 아포스텔로(ἀποστέλλω), 곧 ‘보내다’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말의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울에게 사도직은 권위를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의무이자 사명이었다. 그 사명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바울에게 맡겨진 경제, 곧 사명과 위탁받은 임무, 의무 또는 직무는 바울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맡겨진 경제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부름받았기 때문이다(행 1:8). 바울의 경제는 또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전체의 경제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때가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우리에게 온전히 알려 주셨다. 따라서 교회의 목적이자 사명은 복음을 여러 민족에게 전하고 널리 알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경제는 여러 나라와 민족에게까지 확장되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그들에게 알려지게 된다(마 28:19–20).
이 책의 제4부에서는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를 다룬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한 가정이나 가계의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교회, 기업,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여러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경제생활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따라서 제4부에서는 가정과 교회, 기업과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경제생활에서 지켜야 할 윤리와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성경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연구한다.
제1부
하나님의 경제:
거시경제학적 관점
하나님의 경제
바울은 ‘하나님의 경제’를 때가 이르렀을 때 자신의 백성, 곧 믿는 사람들과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행위 또는 계획(경륜)으로 이해하고 있다(엡 1:9–10; 3:2, 9). 하나님의 경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영적인 구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필요한 물질적인 삶과 관련된 하나님의 계획과 활동도 포함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경제에는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행위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다스리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여러 활동도 포함된다. 이러한 모습은 구약성경과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선포, 특히 요한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개인과 국가 전체가 자신의 만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어떤 의사결정을 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가계 안에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족과 행복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어떤 의사결정을 하는지를 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가계를 축복하신다
‘하나님의 경제’는 창세기 1장 26–28절에서 처음으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6–28).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26–27절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는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의 외적인 모습을 닮게 창조되었다는 뜻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반영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각하고 느끼며, 의지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인격을 주셨다. 또한 양심과 도덕적·윤리적 판단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과 의로우심도 인간이 본받고 실천해야 할 성품으로 주어졌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적인 능력을 주셔서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인간, 곧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기를 원하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 번성하고 그 수가 늘어나 온 땅에 충만하여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세상을 다스리기를 원하셨다.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땅의 동물과 식물 등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세계는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스리고 관리하도록 맡겨졌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가운데 하나는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 가축과 온 땅, 그리고 땅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그리고 땅의 동물과 식물을 다스리는 능력도 상당 부분 잃게 되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창조되었던 인간의 수명은 천 년 미만으로 줄어들었다(창 5장). 그 후 인간의 죄와 허물이 땅에 널리 퍼지면서 인간의 수명은 다시 120년으로 제한되었다(창 6장).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에도 ‘하나님의 경제’, 곧 하나님의 가계를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은 계속되었다. 하나님은 대홍수에서 노아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셨다(창 6–8장). 그리고 창세기 1장 28절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복의 약속을 창세기 9장 1–3, 7절에서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다시 주셨다. 창세기 9장 1–3절은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창세기 9장 7절에서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이 복에 대해서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고 다시 한 번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제’가 처음부터 지향했던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경제가 지향하는 이러한 목적은 달라졌는가?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자신의 가계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충만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장 1–3절에서 아브람을 부르시며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선택하여 자신의 가계에 속한 사람으로 삼으셨을까? 하나님은 아마도 그의 진실한 마음과 믿음을 미리 아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세 가지를 약속하셨다. 곧 땅(가나안), 큰 민족, 그리고 복이었다. 그 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기 시작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에게 계속 나타나셔서, 자신이 하신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도 복을 주셨으며,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요셉과 유다에게도 복을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고, 모세와 그 후 여호수아를 통하여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출 3:8, 17; 13:5; 33:3; 레 20:24; 신 6:3; 11:9; 26:9, 15; 27:3; 31:20; 수 5:6). 이 땅은 하나님께서 처음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셨던 바로 그 땅이었다.
하나님의 복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계속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에도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그들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하나님의 복도 다시 회복되었다. 이처럼 자신의 가계를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을 때 그 절정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그의 가계를 위하여 준비하신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시며 모든 것을 현명하게 행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가계, 곧 자신의 백성을 가장 잘 돌보고 다스리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 주시는 것을 아끼지 않으신다. 인간의 부모가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기꺼이 마련해 주는 것처럼, 하나님도 자신의 가계에 필요한 것을 언제나 기꺼이 준비해 주신다.
아브라함은 ‘준비하시는 하나님’, 곧 여호와 이레(Jehovah-Jireh)를 경험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가는 길에 이삭이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묻자,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하였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신뢰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그가 아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고백한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말처럼, 그는 뒤를 돌아보다가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아브라함은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다.
그 후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 곧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라고 불렀다(창 22:14). 이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은 자신의 가계에 필요한 것을 친히 준비하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였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5–34절에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고 마실지,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 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신다(마 6:31–32).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계에 속한 백성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브라함이 ‘여호와 이레’, 곧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공급하시는 하늘 아버지로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그의 가계를 먹이신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광야에서 먹을 것 때문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16장 4–5절에서 모세에게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어 먹이셨다.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양식을 친히 준비하고 공급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계를 돌보시고 그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경제’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에서도 계속되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다. 잠언 30장 7–8절에서 아굴은 하나님께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라고 간구한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도록 말씀하셨다(마 6:11; 참조 눅 11:3). 우리가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매일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선포하신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33절에서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시고, 35절에서는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요한복음 6장 48–51절에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선포하신다.
“나는 … 이다”(Ἐγώ εἰμι, egō eimi)라고 자신을 밝히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셨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주어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셨다면, 이제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주심으로써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하나님은 그의 가계를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와 함께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도 그들과 동행하며 그들을 인도하셨다. 특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보다 앞서 가시며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이끄셨다. 출애굽기 13장 21–22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모습을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한다. 시편 기자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분임을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라고 고백한다(시 48:14).
예수님도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Immanuel),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약속을 이루신 분이시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걸으시며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의 가계를 보호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가계에 속한 사람들을 보호하신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써 그들을 보호하셨다(창 3:21). 하나님은 또한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보호하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 곳을 이동하는 동안에도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셨다.
시편 기자는 시편 18편 2절에서 하나님을 자신을 보호하고 구원하시는 분으로 고백하며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말한다. 또한 시편 46편 1–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환난 가운데 자신의 백성이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심을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고백한다. 시편 144편 2절에서도 하나님을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분으로 고백하며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가계에 속한 백성을 돌보실 뿐만 아니라, 위험과 환난 가운데서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신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것은 그들을 공급하시고 인도하시는 것과 함께 자신의 가계를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경제’의 중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이다.
다윗과 다른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을 מָגֵן(māgēn, 마겐), 곧 ‘방패’로 묘사한다(시 3:3; 7:10; 18:2, 30, 35; 28:7; 33:20; 89:18; 115:9–11; 119:114; 144:2). 마겐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사람을 지켜 주는 도구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방패’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험과 공격으로부터 지키고 보호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1] 시편 기자들은 또한 하나님을 מַחֲסֶה(maḥăseh, 마하세), 곧 ‘피난처, 은신처, 보호처’로 묘사한다(시 14:6; 46:1; 61:3; 62:7, 8; 71:7; 73:28; 91:2, 9; 94:22; 104:18; 142:5). 마하세는 위험이나 어려움을 피하여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피난처’라고 부르는 것은 위험과 환난이 닥칠 때 하나님의 백성이 그에게 피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2]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을 מָצוּד(māṣûḏ, 마추드), 곧 ‘요새, 산성’으로도 묘사한다(시 18:2; 31:2–3; 71:3; 91:2; 144:2). 마추드는 적의 공격을 피하고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견고한 요새나 산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요새’ 또는 ‘산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이 위험할 때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 되시며, 그들을 적의 공격과 위험으로부터 굳건히 지키고 보호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3]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을 מִשְׂגָּב(miśgāḇ, 미스갑), 곧 ‘높은 망대, 산성, 피난처’로도 묘사한다(시 9:9; 18:2; 46:7, 11; 48:3; 59:9, 16, 17; 62:2, 6; 94:22; 144:2). 미스갑은 높은 곳에 있어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장소, 곧 높은 요새나 산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미스갑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이 위험할 때 피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가 되시며, 그들을 높은 곳에서 굳건히 지키고 보호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4]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이시며 피난처이시고 요새와 산성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며, 위험에 처할 때 우리가 그에게 피하여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게 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깃으로 우리를 덮으시고, 우리는 그의 날개 아래에서 안전하게 보호받는다(시 17:8; 91:4).
하나님은 그의 가계를 도우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가계에 속한 백성이 도움을 구할 때마다 그들을 도우신다. 사무엘상 7장 12절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념하여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고 말씀한다. ‘에벤에셀’(אֶבֶן הָעֵזֶר, ʾeḇen hāʿēzer)은 ‘도움의 돌’이라는 뜻이다. 사무엘은 이 돌을 세움으로써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고백하였다.
하나님은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가는 길에서 그들을 도우셨으며, 그들이 넘어지거나 길을 잃지 않도록 인도하셨다.
시편 기자도 시편 46편 4–5절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라고 노래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도움을 구할 때 언제나 그들을 도우실 준비가 되어 계신다. 에스겔 48장 35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함께 계심을 나타내는 ‘여호와 삼마’(יְהוָה שָׁמָּה, YHWH šāmmâ), 곧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라는 이름과 관련하여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고 말씀한다. ‘여호와 삼마’라는 이름이 보여 주듯이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멀리 떠나 계시는 분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계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우리 가까이에 계시며, 우리가 도움을 구할 때 기꺼이 우리를 도우신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도움을 구하며 자신에게 나아올 때 언제나 기꺼이 그들을 도와주셨다. 병을 고침받고 위로와 도움을 얻기 위해 자신에게 찾아온 사람들을 외면하거나 거절하지 않으셨다. 이사야 9장 6절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기묘자라, 모사라”라고 묘사한다. 예수님 자신도 제자들을 돕는 분으로서, 자신이 떠난 후에는 그들을 도울 또 다른 보혜사(Another Helper)를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는 이 보혜사가 성령이심을 분명히 밝히시며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성령께서는 ‘또 다른 보혜사’로 우리에게 오셨다.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가르치고 도우시며, 우리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가계를 치료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상처를 입고 그에게 나아올 때 그 상처를 치료해 주신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15장 26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곧 여호와 로페카(יְהוָה רֹפְאֶךָ, YHWH rōp̄eʾḵā)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치료하고 회복시키시는 분임을 보여 준다.
시편 기자도 시편 103편 2–3절에서 죄를 용서하시고 질병을 고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노래한다. 또한 시편 147편 3절은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라고 묘사한다.
호세아 6장 1절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권면하며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의 육체적인 질병과 상처만을 치료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상한 마음을 고치시고 상처를 싸매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영적으로도 회복시키시는 분이다. 따라서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에는 육체적인 치유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치유와 회복도 포함된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특별히 강조한다. 의사였던 누가가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을 고치신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눅 6:6–11; 7:1–17, 21; 8:26–56; 9:37–43; 13:10–17; 14:1–6; 17:11–19; 18:35–43).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여호와 라파’(יְהוָה רֹפֵא, YHWH rōp̄ēʾ), 곧 ‘치유하시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치유 사역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자신의 백성을 치료하고 회복시키셨듯이, 예수님도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치시고 회복시키셨다. 따라서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자신의 백성을 세심하게 돌보시는 ‘하나님의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의 경제는 인간의 영적인 구원에만 국한되지 않고,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그들의 삶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활동도 포함한다.
예수님의 이러한 치유 사역은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도 계속되었다. 사도행전은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있던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친 사건(행 3:1–10), 베드로가 애니아를 고치고 죽은 다비다를 살린 사건(행 9:32–43), 그리고 바울이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다시 살린 사건(행 20:7–12)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신 치유와 회복의 사역은 제자들을 통해서도 계속되었다.
하나님은 그의 가계를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각자가 자신의 가계를 성공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4장12절에서 모세에게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사야 54장 13절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그의 백성에 대하여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라고 말한다. 시편 기자도 시편 71편 17절에서 자신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 왔음을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한다.
‘가르치다, 교훈하다, 지도하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동사 יָרָה(yārâ, 야라)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5] 이 동사와 관련된 명사가 토라(תּוֹרָה, tôrâ)이다. 토라는 문자적으로 ‘가르침’ 또는 ‘교훈’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모세오경(Pentateuch), 곧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다섯 권을 가리키며 흔히 ‘율법’으로 번역된다. 또한 토라는 율법에 관한 구전 전통을 가리키기도 하며, 더 넓은 의미에서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가르침과 교훈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토라는 단순히 지켜야 할 법이나 규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교훈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가계에 속한 백성이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자신의 가계를 지혜롭게 관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인도하시는 분이다.
가르치는 일은 치유하는 일과 함께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부활하신 후에도 승천하시기 전까지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일을 말씀하시며 그들을 가르치셨다(행 1:3). 예수님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예수님의 가르치는 사역은 그의 제자들에게도 이어졌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가계에 들어오도록 인도하는 사명을 계속 수행한다. 이처럼 가르치는 일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가계로 인도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돕는 ‘하나님의 경제’의 중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은 그의 가계에 승리를 주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삶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가계에 속한 각 사람은 삶에서 마주하는 여러 싸움과 어려움을 이겨 냄으로써 더 큰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행진할 때에도,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도 하나님은 그들이 여러 전쟁과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도우셨다. 출애굽기 17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 싸웠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놀라운 승리를 주셨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아말렉과 싸우는 동안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모세의 손이 피곤해지자 아론과 훌이 그의 양쪽에서 손을 붙들어 올렸고, 마침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아말렉을 물리쳤다(출 17:8–13). 이 승리 후에 모세는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יְהוָה נִסִּי, YHWH nissî), 곧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시다’라고 불렀다. 출애굽기 17장 1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여호와 닛시’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의 승리가 그들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고 승리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자신의 가계에 속한 백성이 삶에서 마주하는 어려움과 싸움을 이겨 내도록 도우시며, 그들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다.
바울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다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15장 56–57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여기에서 바울이 말하는 궁극적인 승리는 죄와 사망에 대한 승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믿는 사람들에게 죄와 사망을 이기는 승리를 주신다.
바울은 또한 하나님께서 주실 승리를 믿으며 우리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도록 권면한다. 그는 자신의 삶과 사역을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바울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은 끝까지 싸워야 할 선한 싸움이며, 끝까지 달려야 할 경주이다. 그러나 그 싸움의 궁극적인 승리는 인간의 힘만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가계에 속한 사람들은 믿음을 지키며 자신의 달려갈 길을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에게 마침내 승리와 의의 면류관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가계를 다스리시는 활동들
성경, 곧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계를 다스리고 관리하시는 여러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계를 창조하여 세우시고, 그 안에 속한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먹이시며,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인도하시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시며, 그들을 가르치고 교훈하시고, 악한 세력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도우시는 활동 등이 포함된다.
이 장의 처음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경제가 지향하는 목적은 자신의 백성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가계를 세우신 후 그 안에 속한 백성을 돌보고 다스리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충만하도록 이끌어 가신다.
이상에서 논의한 하나님의 경제는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과 정부에도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개인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 소득과 재능을 자신의 절대적인 소유로 여기기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관리자이자 청지기로서 이를 책임 있게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적 의사결정에서도 자신의 필요와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이웃의 필요를 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하시고, 도우시며, 치료하시고, 가르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그분을 의지해야 한다.
정부 역시 국가의 자원과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절대적인 소유자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경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정부의 권한과 자원도 국민의 삶을 보호하고 공동체의 필요를 충족시키며 정의와 공평을 실현하기 위하여 책임 있게 사용되어야 한다.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호하고, 국민이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환경을 조성하고, 공공의 자원을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책임이다. 결국 개인과 정부 모두 자신에게 맡겨진 자원과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경제 주체이며, 하나님의 경제라는 관점에서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 앞에서 져야 한다.
[1] 『Strong’s Hebrew Concordance』, “4043. magen 또는 meginnah,” 『BibleHub』.
[2] 같은 자료, “4268. machaseh 또는 machseh,” 『BibleHub』.
[3] 같은 자료, “4686. matsuwd,” 『BibleHub』.
[4] 같은 자료, “4869. misgab,” 『BibleHub』.
[5] 같은 자료, “3384. yarah 또는 yara,” 『BibleHub』.
제3장 양식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
사람들은 왜 돈을 버는가? 먹을 것을 사고, 옷을 입으며, 살아갈 집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번다. 사람은 누구도 먹을 것 없이 살아갈 수 없다. 따라서 양식은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이다. 하나님은 창조의 시작부터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생물에게도 먹을 것을 주셨다. 처음 하나님께서 인간과 모든 생물에게 주신 먹을 것은 고기가 아니라 푸른 식물이었다.
하나님은 창세기 1장 29–30절에서 인간과 모든 생명체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시는 분으로서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창조의 처음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먹을 것으로 주셨으며, 다른 생물에게도 푸른 풀을 먹을 것으로 주셨다.
그러나 대홍수 이후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하심으로써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범위를 넓혀 주셨다. 창세기 9장 3–4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하셨지만, 생명 되는 피와 함께 고기를 먹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성경에서 피는 생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기를 피째 먹지 말라는 명령은 인간이 생명의 주인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그 주인이심을 인정하도록 하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광야를 행진할 때 먹을 것이 떨어지자,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불평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를 그들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16장 12절에서 모세에게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도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셨다.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어 고기를 먹게 하시고,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 그들을 배부르게 하셨다. 이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은 레위기 11장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음식에 관한 규례를 주시고, 무엇을 먹을 수 있으며 무엇을 먹어서는 안 되는지를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은 정결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을 구별하시고, 자신의 백성이 정결한 것으로 구별된 음식만을 먹도록 하셨다. 이러한 음식 규례 가운데 일부는 오늘날의 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위생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스콧 멍거(Scott Munger)는 양식(糧食)이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임을 보여 주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고 지적한다.[1] 신명기 8장 3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먹이신 목적을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주리게 하신 후 만나를 먹이신 것은 그들에게 육신의 양식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은 먹을 것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지만, 육신의 양식만으로 살아가는 존재도 아니다. 인간의 생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의지하여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신을 위한 양식을 공급하실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우리의 영을 위한 영적인 양식, 곧 하나님의 말씀도 공급하신다. 육신이 살아가기 위해 매일 양식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삶도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로 한다.
생명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사야 55장 1–2절에서 모든 목마른 사람을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로 초청하시며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오는 사람은 돈이 없어도,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과 마실 것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며, 자신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기꺼이 공급해 주시는 분이다. 이사야의 말씀은 단순히 육신을 위한 음식과 음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돈으로 살 수 없고 인간의 수고만으로 얻을 수 없는 참된 만족과 생명을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사람들은 자신을 진정으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돈과 수고를 사용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참된 양식과 생명을 값없이 베풀어 주신다.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하나님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도록 하셨다(마 6:11; 참조 눅 11:3). 우리가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매일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신의 양식보다 더 중요한 영원한 생명을 위한 양식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생명의 떡”이라고 선포하신다. 요한복음 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이어 35절에서는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밝히시며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48–51절에서도 자신이 생명의 떡이며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임을 선포하시며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주어 그들의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셨다면, 이제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주심으로써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일 필요한 육신의 양식을 공급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위한 참된 양식도 주시는 분이다.
마태복음 14장 13–21절, 마가복음 6장 30–44절, 누가복음 9장 10–17절과 요한복음 6장 1–13절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들과 어린이들 외에 오천 명을 먹이셨다.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은 후 제자들이 남은 조각을 거두었더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 마태복음 15장 32-39절과 마가복음 8장 1-10절에 기록된 것 같이, 또 다른 때에는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마가복음 8장 1-10절에는 떡 일곱 개만으로) 여자들과 어린이들 외에 사천 명을 먹이셨다.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은 후 제자들이 남은 조각을 거두었더니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찼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자신에게 나아온 사람들을 먹이셨다. 이 세상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희소하지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양식을 충분히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오병이어(五餠二魚)와 칠병이어(七餅二魚) 사건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의 필요를 아시고 그들을 풍성하게 먹이시는 ‘하나님의 경제’를 잘 보여 준다.
양식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것이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31절에서 다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계에 속한 백성이 될 때, 하나님은 그 가계의 주인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신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미 알고 계신다(마 6:32).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고 먹이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계를 다스리시는 매우 중요한 통치 활동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경제’를 이루는 중요한 활동이다. 창조 때부터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에게 먹을 것을 주셨고, 광야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셨으며, 예수님은 자신에게 나아온 사람들을 먹이셨다. 이처럼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시는 일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계속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경제’의 중요한 모습이다.
음식 규례에 관한 논쟁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이방인들이 교회 공동체에 들어오면서,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유대인의 음식 규례(레 11장)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은 서로 다른 생활 방식과 음식 규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하나의 신앙 공동체를 이루는 데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유대인의 음식 규례를 지키지 않았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결정이 필요하였다.
예루살렘 회의에서 예수님의 형제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권고할 것을 제안하였다(행 15:20). 예루살렘 회의는 야고보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방인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고 결정하였다(행 15:29). 이 결정에 따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의 모든 음식 규례를 그대로 지킬 의무를 지지는 않았지만, 우상에게 바친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하도록 요구받았다. 이러한 결정은 서로 다른 음식 전통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하나의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부정(不淨)한 음식과 이방인들
베드로는 사도행전 10장에서 기도하던 중 비몽사몽간에 세 번에 걸쳐 같은 환상을 보았다. 그는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안에는 여러 종류의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들이 들어 있었다. 그때 한 음성이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라고 말씀하였다(행 10:13). 그러자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행 10:14). 그때 다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이 들려왔다(행 10:15).
이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보자기는 곧 하늘로 올려졌다(행 10:16). 베드로가 환상에서 본 보자기 속의 부정(不淨)한 음식은 단순히 음식에 관한 문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사도행전 10장의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환상은 이방인들, 특히 고넬료와 그의 가족을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신다는 사실을 베드로에게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베드로 자신도 그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행 10:28)라고 말한다. 이 사건은 베드로와 다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방인들과 교제하고 그들을 기독교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사람을 더 이상 부정하다고 여겨서는 안 되었다. 이로써 복음은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 이방인들에게까지 더욱 널리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祭物)
예루살렘 회의에서 내린 결정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지 말도록 요구하였다. 그러나 당시 시장에서 판매되는 고기 가운데 어떤 것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이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았다. 따라서 일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시장에서 구입한 음식이 혹시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 죄책감을 가지고 먹기도 하였다(롬 14:23; 고전 8:7). 특히 우상 숭배의 배경을 가지고 있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을 먹는 문제에 대하여 여전히 양심의 거리낌을 느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 7절에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고 말한다(개역개정). 따라서 음식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의 믿음과 양심도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바울은 음식 문제로 양심의 어려움을 겪는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이 문제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한다. 바울은 로마서 14장 17절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을 먹고 마시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시장에서 구입한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먹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음식을 먹는 것이 믿음이 약한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그 사람을 배려하여 자신의 자유를 절제해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14장 21절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에 대하여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 13절에서 음식 문제에 관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에게 어떤 음식을 먹을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유의 행사가 믿음이 약한 형제자매를 실족하게 한다면 사랑으로 그 자유를 기꺼이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받아 주신 형제자매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다.
성찬(聖餐)의 음식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하신 마지막 만찬에서 떡을 가지사 감사 기도를 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눅 22:19; 고전 11:24). 또한 식사 후에 잔을 가지시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 22:20; 고전 11:25).
그리스도인들은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시고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성찬의 떡과 포도주는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몸과 흘리신 피를 가리키며,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기억하게 한다. 따라서 성찬은 단순히 함께 음식을 먹고 마시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를 통하여 주어진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신앙의 행위이다.
이상에서 논의한 양식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는 양식은 단순히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먹을 것을 주셨고, 광야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고기를 공급하셨으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도록 가르치셨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의 양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보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감사하며,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되 물질에 대한 지나친 염려와 탐욕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양식은 육체를 위한 음식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며,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육체적 필요뿐 아니라 영적인 필요도 있으며, 물질적인 풍요만으로 인간의 삶이 온전해질 수 없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음식에 관한 자신의 자유를 행사할 때에도 다른 사람의 믿음과 양심을 배려해야 한다. 결국 성경이 가르치는 양식의 경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임을 인정하고, 주어진 양식에 감사하며, 이웃과 나누고, 물질적인 양식을 넘어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