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20, 2026

실낙원(失樂園)의 회복

 실낙원(失樂園)의 회복  

 

경제학에서는 경제가 완전고용 수준에서 벗어나 있을 때, 일부 경제학자들, 곧 고전학파 경제학자들(classical economists)과 그 추종자들은 경제에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는 자기조정 능력(self-correcting ability)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다른 경제학자들, 곧 케인스학파 경제학자들(Keynesian economists)과 그 추종자들은 정부가 재정정책 및 통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 경제가 완전고용 수준에 더욱 가까이 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덴동산

그렇다면 하나님의 개입 없이 인간이나 정부의 힘만으로 실낙원(失樂園)을 회복할 수 있을까? 또는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는 아모스 5 24절의 말씀처럼 정의와 공의가 넘치는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낙원이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인간을 거주하게 하시기 위하여 에덴동산을 세우셨다. 에덴동산은 왜 그렇게 중요했는가? 그것은 에덴동산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거주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인간은 자원의 희소성(scarcity)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가나안 땅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에녹, 노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선택하여 그들과 동행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또 하나의 낙원을 세우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12:7; 13:15; 15:7, 18; 17:8; 24:7).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3:8; 31:20).

그렇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낙원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낙원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하나님의 통치 또는 주권이다.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다스리고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통치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어야 한다.

가나안 땅 자체가 본래부터 비옥한 땅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하실 때 그 땅은 비옥하고 복된 땅이 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자신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의 주민들을 몰아내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거주하며 어울려 살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떠나지 않으시고 기드온, 사무엘, 다윗, 젊은 시절의 솔로몬, 그리고 솔로몬 이후 남유다의 일부 왕들과 계속 함께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 땅에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셨으며,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자신의 백성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을 세우고자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경험한 후에도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때가 이르면 또 다른 낙원의 표현인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실 것을 예언하셨다( 65:17–25). 하나님께서는 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의 백성을 다스리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65 17–19절에서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말씀하신다.

베드로도 베드로후서 3 13절에서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말한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회복된 낙원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베드로는 이러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주의 날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요한은 요한계시록 21 1–2절에서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한다. 또한 요한계시록 22 1–2절에서는 새 땅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두셨던 낙원, 곧 에덴동산의 모습과 유사하다. 에덴동산에는 생명나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함께 동산 가운데 있었다( 2:9). 창세기 2 9절 하반절은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고 말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면 영원히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영원히 사는 것을 막으셨다( 3:22–24).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타락으로 접근할 수 없게 되었던 생명나무가 새 예루살렘에는 다시 나타난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는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흐르고, 그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끊임없이 열매를 맺는다. 따라서 성경의 역사는 인간이 잃어버린 에덴동산에서 시작하여 생명나무가 다시 나타나는 새 예루살렘으로 나아간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하시며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인간이 타락으로 잃어버렸던 낙원이 완전히 회복된 모습이다.

요한은 요한계시록 22 17절에서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말한다. 생명수로 오라는 이 초청은 이사야 55 1절에서 하나님께서 물로 초청하시는 말씀과 유사하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구약시대부터 시작된 생명수로의 하나님의 초청, 곧 사람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때 완성될 것이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온전히 다스리시며, 생명수를 값없이 베푸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부족함이나 죽음의 지배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생명을 온전히 누리게 될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경제도 완전하게 실현될 것이다.

이 땅에서의 낙원은 가능한가?

인간은 오랫동안 이 땅에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려고 노력해 왔다. 경제성장을 통하여 빈곤을 줄이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하여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며, 정부의 정책을 통하여 소득 불평등과 실업을 줄이고 사회복지를 향상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 땅에 완전한 낙원을 건설할 수 있을까?

경제학의 관점에서도 완전한 경제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사유재산권과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고 경쟁과 이윤 동기를 통하여 경제성장과 기술혁신을 촉진할 수 있지만, 지나친 탐욕, 소득과 부의 불평등, 근로자의 착취와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반면에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소득을 재분배하고 경제적 평균을 추구하더라도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정부의 개입은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동기를 약화시키고 비효율성을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어떤 경제체제도 그 자체로 이 땅을 낙원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제도 자체보다 그것을 운영하는 인간에게 있다. 인간에게 탐욕과 이기심, 질투와 불의가 존재하는 한 아무리 훌륭한 경제제도와 정부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정의와 공평을 이루기는 어렵다. 제도가 인간의 행동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개선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마음 자체를 완전히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노력이나 정부의 정책만으로 아모스가 말한 것처럼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하는 완전한 사회를 이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5:24).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은 가난한 사람을 돌보고, 억압받는 사람을 보호하며, 정직하고 공정하게 경제활동을 하고, 자신의 재산을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며, 사회에서 정의와 공의를 실천해야 한다. 정부 역시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면서 가난한 사람과 경제적 약자를 돌보고, 불공정한 경제행위를 방지하며, 사회의 정의와 공평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인간의 힘으로 완전한 낙원을 건설하려는 시도라기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경에서 낙원의 본질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부족함이 없는 장소에 있지 않다. 에덴동산이 낙원이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다스리셨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 역시 땅 자체가 낙원이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다스리실 때 복된 땅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땅에서 낙원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결국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하시며 다스리시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인간의 노력만으로 완전한 낙원을 회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그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경험하고 나타낼 수 있다. 완전한 낙원의 회복은 인간의 경제제도나 정부의 정책에 의하여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통치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장차 이루어질 완전한 낙원을 소망하면서도 현재의 삶 속에서 정의와 공의, 사랑과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날 실낙원의 회복

우리는 회복된 낙원을 보기까지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가? 잃어버린 낙원은 주의 날, 곧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다시 오실 때 완전하게 회복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나라, 곧 낙원은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7 20–21절에서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NLT(New Living Translation) 21절 하반절을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 가운데 있다”(For the Kingdom of God is already among you)라고 번역한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장차 실제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그들 가운데 임하여 있다는 사실과 그 나라가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지는 말씀에서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17:22).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며 그의 주권과 다스림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나라, 곧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낙원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부분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완전한 낙원에 살고 있지는 않으며, 모든 피조물과 함께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주님의 재림과 완전한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8:18–25). 그러나 그날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뜻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회복될 낙원의 모습을 현재의 삶 속에서 미리 경험하고 나타낼 수 있다.

바울에 따르면 하나님의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도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하게 임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피조물도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허무한 데 굴복하게 되었지만,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될 소망을 가지고 있다( 8:19–21).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간절한 소망과 기도로 마무리한다. 요한계시록 22 20–21절은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말한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에르쿠 퀴리에 예수, ρχου κύριε ησο, erchou kyrie Iēsou)라는 기도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아람어 기도인 마라나 타”(מָרַנָא תָא, marana tha),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간구와 같은 종말론적 소망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하게 임할 때 하나님의 경제, 곧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통치 활동도 완전하게 실현될 것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잃어버렸던 낙원은 회복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온전히 다스리실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단순히 더 나은 경제체제나 더 풍요로운 세상을 이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데 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실낙원의 회복은 단순히 인간이 에덴동산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났던 인간이 다시 하나님의 가계로 돌아오고, 하나님의 통치와 축복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간은 에덴동산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도 잃어버렸다. 따라서 실낙원의 회복은 장소의 회복에 앞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회복이며, 하나님의 가계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의 가계를 다시 세우고 확장해 오셨다. 에녹과 노아를 통하여,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통하여,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한 민족에만 머물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문을 모든 사람에게 열어 주셨으며, 복음 전도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님의 가계로 불러들이셨다. 이러한 의미에서 복음 전도는 단순히 교회의 구성원을 증가시키는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계를 확장하는 하나님의 경제의 중요한 과정이다.

하나님의 가계가 확장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가계의 구성원이 되면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욕망과 이익만을 삶의 최고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는다. 그가 정직하고 공정하게 경제활동을 하고, 탐욕을 절제하며, 가난한 사람을 돌보고, 자신에게 위탁된 것을 이웃과 나누며,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가정과 교회뿐만 아니라 직장과 기업, 시장과 사회에서도 하나님의 경제윤리가 더욱 넓게 실천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가계의 확장은 오늘날 이 땅에서 실낙원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나님의 가계가 확장되고 그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때, 불의와 착취 대신 정의와 공의가, 속임수와 탐욕 대신 정직과 절제가, 이기적인 축적 대신 사랑과 나눔이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노력만으로 완전한 낙원을 건설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그 통치를 자신의 삶과 경제적 관계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이 땅에서 미리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계가 이 세상에 아무리 넓게 확장된다 하더라도 인간의 노력만으로 실낙원을 완전하게 회복할 수는 없다. 죄와 죽음, 그리고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모든 피조물을 완전히 해방시키는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가계를 확장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그 회복에 참여하지만, 그 회복을 완성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의 가계의 현재적 확장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질 미래의 완성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동일한 구원 계획 안에 있다.

마침내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가계는 그 완성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영원히 함께하시며 온전히 다스리시고,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가 있는 새 예루살렘에서 인간이 잃어버렸던 낙원은 완전하게 회복될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가계의 확장은 그 목적에 도달하고, 하나님의 경제, 곧 하나님께서 그의 가계를 다스리고 구원하며 확장해 오신 모든 활동도 완전하게 실현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분명하다. 복음을 전하여 더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가계로 초청하고,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며,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시장과 사회에서 하나님의 경제윤리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장차 완전히 회복될 낙원을 오늘의 세상 속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계가 온전히 완성되고 실낙원이 완전히 회복될 그날을 바라보며 요한과 함께 기도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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